정용섭목사 설교중 로마서 11;32 절 모든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히게 했다? 쉽게 설명부탁.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런 불순종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셔서 모두에게 긍휼을 베푸셨다는 게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바울의 해석입니다. 상당히 까다로운 논리니까 좀더 자세하게 봐야겠습니다. 우선 32절 말씀을 보십시오.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히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불순종의 책임이 사람에게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출애굽 과정에서도 성서기자는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책임이 파라오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아담과 이브를 뱀이 유혹하지 못하게 하셨어야만 했고, 아담과 이브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셨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뱀의 유혹도 역시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냐 하는 반론이 성립됩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고 계셨다면 그걸 막았어야 했는데, 그냥 허락하셨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이 체포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결국 유다의 배신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니까 유다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 생각은 성서를 오해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불순종에 사로잡히게 했다는 말은 그 불순종이 훈계나 계몽이나 지적 훈련을 통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천 년이나 5백 년 전에 비해서 지금 모든 면에서 여유가 있고 공부도 많이 했지만 현대인들이 당시보다 더 순종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인류라는 거창한 차원까지 갈 필요 없이 개인에게서도 이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학력이 올라가고 교양이 많아진다고 해서 사람이 순종적이던가요? 정의롭던가요? 평화롭던가요?
성서가 말하는 불순종은 단순히 겉으로 교회와 사회질서를 잘 지켰느냐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합니다. 마틴 루터는 본문의 불순종을 불신앙(Unglaube)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자기를 성취하려면 욕망이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이게 이상하게 들리시지요? 오늘의 시대는 늘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완성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불순종과 불신앙은 이런 자기 집중에서, 자기를 높이는 교만에서 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세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히게 했다는 말은 이런 인간의 실존적 깊이를 정확하게 뚫어본 이야기입니다. 저는 바울의 이런 통찰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예 저도 까다롭다고 느꼈지요.
아마, 인간의 [불순종]은 훈계가 부족해서, 계몽을 받지 못해서, 지적 훈련을 받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다]라고 표현한 듯 합니다.
[불순종]이 존재론적 차원의 일이라는 말은, 인간은 하나님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아담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말인듯 합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은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역사의 (섭리) 큰흐름을 인간의 불신앙으로 거스리려해도 밀고 나가신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아담 하와도 애급의 파라오도 가롯유다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의미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