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 씁니다. 거친 표현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하고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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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남아공월드컵 B그룹 두 번째 경기 결과, 6월 17일 요하네스버그 사커 시티
★ 한국 1-4 아르헨티나 [이청용(45+1분) / 박주영(17분-자책골), 이과인(32분,도움-부르디소), 이과인(76분), 이과인(80분,도움-아게로)]
◎ 한국 선수들
FW : 박주영(81분↔이동국)
MF : 염기훈(9분-경고), 박지성, 기성용(46분↔김남일), 김정우, 이청용(34분-경고)
DF : 이영표, 이정수, 조용형, 오범석
GK : 정성룡
◎ 아르헨티나 선수들
FW : 테베스(74분↔아게로), 이과인(81분↔볼라티)
MF : 디 마리아, 메시, 마스체라노(55분-경고), 막시 로드리게스
DF : 에인세(74분-경고), 사무엘(23분↔부르디소), 데미첼리스, 구티에레스(54분-경고)
GK : 로메로
그리스와의 첫 경기 완승이 좋은 영향을 미친 것만은 아니었다. 2004년 유럽 챔피언을 2-0으로 물리친 허정무호는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내다가 예상을 넘어선 참패를 당했다. 상대 미드필더와 골잡이들의 출중한 기술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 플레이만 고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가 예상하지 못한 연속 실점에 크게 당황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좋은 팀이라면 전반전에 두 골 이상의 점수차가 벌어지더라도 전체적인 팀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을텐데 우리 팀은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실토한 일이라지만 오프사이드라고 지적받았던 이과인의 세 번째 득점(76분) 말고도 80분에 우리 측면 오른쪽이 완벽하게 무너져버린 쐐기골 장면이 무너져버린 팀 밸런스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허정무 감독의 경우, 지금(1-4패)보다 오히려 선수 시절의 기록(1986년 멕시코월드컵 1-3패)이 더 나은 것처럼 보였다. 경기 종료 직후 인터뷰를 통해서도 그 아쉬움을 짙게 드러냈던 염기훈의 결정적인 왼발 슛이 아르헨티나 골문 오른쪽 옆 그물에 걸리는 순간은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축구의 흐름을 고려할 때, 58분에 나온 염기훈(이청용 명품 찔러주기)의 그 슛이 아르헨티나 골문 안쪽으로 날아갔다면 이번 대회를 통해 나온 축구 사건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경기가 펼쳐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승패 자체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고 마라도나 감독을 앞에 둔 허정무 감독의 위상도 더 높아졌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사람은 염기훈 본인이 아닐까? 유럽 구단들이 염기훈의 왼발을 탐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언 긱스의 발놀림을 수없이 봤을 텐데도 그 부드러운 마무리를 흉내내지 못했던 것이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실상 자기 발 앞에 빠르게 공이 구르고 있으며, 상대 문지기 로메로가 각도를 줄이며 겁나게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임팩트 순간에 그 미세한 차이는 공의 최종 목적지를 다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전북 시절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까지 있는 그였지만 월드컵 본선과는 그야말로 레벨이 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었나보다.
한국 팀의 밸런스 변화를 통해 패인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본다.
킥 오프 순간의 양 팀 포메이션.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마스체라노 덕분에 '4-1-3-2'에 가까울 정도로 공격적 포메이션을 아르헨티나가 들고 나왔으며, 한국은 변함없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김정우, 기성용)를 내세웠다.
인테르 밀란을 이끌고 유럽 클럽 축구를 평정한 주제 무리뉴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상대할 때 어떤 방법을 썼는가는 많은 이들이 연구했고 앞으로도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특히, 무리뉴 감독의 판단은 초특급 요주의 인물 메시를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팀 플레이를 통해 이기는 길을 택했다. 수비조직력을 최우선 고려한 토털 사커라고 명명하면 될까? 어차피 축구의 골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터지기 쉬운 법이기 때문에 수비조직력 강화, 곧 수비 밸런스 유지를 가장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마치, 공격 상황에서 여러 선수가 함께 공간을 점유해가며 상대 수비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듯 인테르 밀란 선수들은 수비시에 그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한 선수가 상대 미드필더나 공격수에게 뚫리면 가장 가까운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동료가 곧바로 커버플레이에 나서는 것, 보통 체력이나 공간 이해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무리뉴와 그 선수들은 해내고 말았다.
어쩌면 내일(7월 12일) 새벽에 벌어지는 '네덜란드 vs 에스파냐'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 선수들이 에스파냐 선수들의 패스 줄기를 이렇게 대응하지 않을까? 별로 재미없다고 욕 좀 먹어도 그렇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을까? 공격적 토털 사커의 발상지 네덜란드에서 신 개념의 토털 사커가 만들어지는 흥미로운 결승전이 되지 않을까?
반면에 이 경기에서 한국의 수비 방법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할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발 기술이 뛰어난 상대의 핵심 선수 몇명만 그저 우격다짐으로 따라붙으면 된다는 생각만으로 수비를 하려고 했던 점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본다.
전반전 15분까지의 포메이션. 마스체라노 한 선수의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잘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며 우리 가운데 미드필더 셋(박지성-기성용-김정우)이 메시를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시간대에 더 중요한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메시보다는 디 마리아나 테베스의 움직임을 통해 공격을 풀어나갔다. 메시만큼은 아니어도 왼발을 잘 쓰는 디 마리아가 요주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우리 팀이 간과한 듯하다.
대회 직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캐나다의 싱거운 평가전(아르헨티나 5-0 완승)을 유심히 지켜봤다면 마라도나 감독의 의중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고 본다. 과연 어떤 팀을 염두에 두고 캐나다를 불러왔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평가전이었고 거기서 특히, 디 마리아의 실력이 출중하게 드러났다. 과연, 오범석을 비롯하여 우리 코칭 스태프가 5-0으로 끝난 이 평가전을 얼마나 분석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오범석은 디 마리아를 몰라도 너무 모른 상태에서 함부로 덤벼들었다고 본다.
월드컵이 개막하기 직전에 매우 중요한 뉴스 하나가 우리 축구팬들에게까지도 전달된 바 있다. 바로 '리오넬 메시'가 너무 피곤한 상태로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것. 연막 전술이라고 하는 말도 있었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피지컬 코치의 이 발언은 결과가 말해주듯 100%에 가까운 사실이었다고 믿는다. 메시의 감아차기가 어떤 수준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것이며 특히, 그는 발목 힘을 이용하여 강하게 킥을 하는 능력도 있는 선수다. 그런데 이번 대회 메시의 강한 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뒷심이 모자란 듯, 공을 가볍게 차 넘기는 정도에 그친 장면이 우리와의 이 경기에서도 여러 차례 보였다. 거의 그의 발끝에서 나온 공이 모두 골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피지컬 코치의 말처럼 지친 기색은 역력했다.
16~30분의 포메이션. 마스체라노 바로 옆에 한국의 양박(박주영, 박지성) 유니폼이 겹쳐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꿔서 바라보면 마스체라노에게 우선 이들의 움직임이 막히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 팀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김정우, 기성용)는 계속 메시 곁에만 머물고 있다. 둘이서 상대 팀 플레이메이커를 제대로 지웠는가? 정답은 No! 아무 소용 없는 생각이었지만 저 장면을 보면서 신형민을 데려가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전반전 끝무렵(31~45분)의 달라진 양상. 0-2로 밀리자 양쪽 미드필더인 이청용과 염기훈에게 공격적 주문이 특별하게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마스체라노가 버틴 저 자리를 계속 고집해야 했는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측면을 털어버리는 능력도 뛰어난 두 명(이청용, 염기훈)에게 너무 무리한 주문을 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이 결정이 후반전 초반에 '이청용 찔러주기-염기훈 왼발 슛'의 결정적인 장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1-2가 된 상태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된 그 무렵 포메이션 변화. 라커룸에 들어가서 이청용과 오범석이 맡았던 오른쪽 측면의 구멍에 대해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몰라도 후반전 초반에는 좌경화라는 단어(허정무 감독은 이 말을 무척 싫어하겠지만)를 붙여야 할 정도로 왼쪽이 선수들이 몰렸다.
박지성이 왼쪽 측면으로 빠지며 아무래도 공간이 좀 더 넓게 열리기 시작했으며 수비 라인도 중앙선에 가까워질 정도로 끌어올려 공격적 전술 변화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점골이냐 상대의 빈 틈을 노린 아르헨티나의 효율적인 역습이냐였다. 물론,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저렇게 지고 있는 팀이 수비 라인을 끌어 올리면 상대가 어디를 노리는지 뻔한 일이다. 야구에서 말하는 핫 코너가 어디인지 생각해보면 우리 측면 수비수들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렇게 변함 없이 우직하게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스체라노를 보면 왜 그에게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61~75분의 포메이션. 그림난 놓고 봐도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 더 많을 정도다. 그만큼 양팀의 전술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 있는 것이다. 중원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역습을 효율적으로 구사한 아르헨티나. 이에 비해 미드필더들이 그 역할을 효율적으로 해내지 못했던 한국. 김정우도 그렇지만 바꿔 들어온 김남일(5번)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팀 밸런스가 흐트러지지 않을텐데 결국 우리는 골을 뽑아내기는커녕 뒷심만 낭비하는 결과를 보였다.
사실, 75분까지만 놓고 보면 1-2의 스코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경과였다. 팀 밸런스의 유지가 가장 중요했던 바로 그 시간대였는데 이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나중에 오프사이드로 판명이 나기는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실질적인 결승골이 혼자 놀던 이과인의 발끝에서 나온 시각은 76분.
이 경기의 마지막 15분(76~90분) 그림. 아무래도 맏형들이 뛰는 왼쪽에 더 치우치다보니 상대적으로 반대편에서 연거푸 카운터를 얻어맞은 꼴이 된 셈이었다. 많이 늦은감이 있었지만 81분에 바꿔 들어온 이동국도 왼쪽에 조금 더 치우쳤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아르헨티나의 남아메리카 예선 경기 테이프를 제대로 분석하면서 봤다면 바꿔 들어온 아게로가 역시 왼쪽 측면을 잘 털어버리는 인물임을 알텐데 우리 선수들은 아게로의 몸놀림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오범석의 뒷공간이 너무나 크게 열린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경기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조직적인 커버 플레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우리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그렇게 도와주지 못했다.
염기훈의 빗나간 왼발이나 오범석의 위험한 수비 장면 등을 아무리 떠올려도 변명의 여지를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완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