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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단일통화를 만들기로 한 후 통화명이 바로 ‘유로’로 지어진 것은 아니다. 앞서 소개한, 마스트리히트조약 당시 독일 재무장관이었던 Waigel은 ECU, Franken 등 여러 후보명 중에서 EU 정상들의 논의를 거쳐 자신이 제안한‘유로’가 채택되었다고 밝혔다. 사실 전후 독일의 자부심이었으며 경제기적의 상징이었던 독일의 DM, 프랑스가 14세기 중반부터 사용하던 프랑화, 네덜란드가 중세부터 사용하던 길더화와 작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DM은 통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1989. 11월, 베를린장벽 붕괴후 통독 전인 1990. 2.11 동독지역 데모에서 “DM이 오면 여기 머물러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간다”는 문구(Wenn die D-Mark nicht zu uns kommt, dann kommen wir zu ihr! : When the D-Mark does not come to us, we shall come to it!”)가 보여주듯 DM화는 동독인들에게 자유와 부, 일등시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유로화라는 이름의 결정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에 Waigel 전 장관이 밝힌 일화를 소개한다. 이 내용은 독일의 일요판 신문 Welt am Sonntag(2011. 12.5)에 실린 인터뷰내용 중에서 옮겨온 것이다.
(「유로」화 작명 과정 인터뷰 기사)
Q: 당신이 ‘Euro’라는 이름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름이 지어졌나? A: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였다. 그전에 유럽통화단위인 ECU라는 이름이 있었고 헬무트 슈미트 독일총리와 지스카르 데스텡 프랑스대통령은 이를 그대로 썼으면 했다. 프랑스에 이미 같은 이름의 동전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그 이름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한 ECU는 프랑스의 동전명이 아닌 European Currency Unit였다. 그런데 독일 고향에 가서 이웃들에게 “이제 우리는 ECU라는 돈을 가지게 될거요”라고 하자 그들은 “그것 들고 지옥에나 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 그 이름으로 독일에서는 안되겠구나”라고 깨달았다.
Q: 다른 나라에서는? A: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모두가 소중하게 여겼던 DM에 대신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우선은 부르기가 좋아야 했다. 그래서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고 머리를 쥐어짰다. 처음에는 ‘Franken’을 생각했다. 이는 프랑스인들에게도 괜찮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쓰던 Taler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파운드나 실링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리고 Mark도 안되었다. 여기에는 덴마크와 Finnmark를 쓰던 핀란드만 동의했다.
Q: Franken 또는 Franc이 왜 채택되지 않았나?
A: 스페인총리(F. Gonzalez)의 반대 때문이었다. 그는 그 이름이 과거 독재자 Franco총통을 떠올리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Q: 만약 스페인의 독재자가 Franco가 아니고 Rodriguez였다면 지금 유로 대신 Franken이 될 수도 있었겠나? A: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다시 머리를 쥐어짰다. 문득 Eurocard, Eurocopter 등 Euro가 들어간 많은 단어들을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Euro’는 어떨까. 그래서 티트마이어(H. Tietmeyer) 분데스방크 총재에게 “우리끼리 이야긴데 새 화폐 이름을 ‘Euro’라고 하면 어떻겠소”라고 물었다. 그는 바로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고 대답했다. 그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화폐의 이름을 제안하는 편지를 받았지만 유로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래서 그 제안을 가지고 Kohl총리에게 갔다. 그는 걱정했던 대로 “쉽지는 않을 거요. 프랑스가 반대할 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한번 부딛혀 봅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우선 매우 합리적인 인물인 J. Arthuis 프랑스재무장관에게 갔다. 그는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지만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설명을 했다. ECU로는 독일에서는 안된다. 그는 Euro라는 이름으로는 프랑스에서 간단치는 않겠지만 ‘한번 해보자’라고 이야기했다.
Q: 결론은? A: 1995년 EU정상회의 개막시에 제안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타협안도 생각해놓고 있었다. 즉 Eurofranken, Euromark 등으로 불러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앙은행 총재들은 ‘맙소사, 돈은 이름이 같아야 하는 거요“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이체를 하면 500유로마르크가 500유로프랑이 된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Q: 그래서? A: 아주 흥미로운 토론이 있었다. 시라크 대통령이 “아마 국민투표에 붙여야 할 것 같소”라고 말하자 콜총리는 “잘 생각해보시오. 만약 8천만명이 Mark를 지지하고 4천만명이 Franc이나 Ecu를 지지한다면 어떻게 되겠소”라고 답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곧 국민투표 의견을 접었다. 회의를 주재한 스페인 대통령은 처음부터 나를 지지했고 몇몇 나라가 동참했으며 결국 시라크대통령도 동의하면서 만장일치로 ‘유로’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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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협상과 토론을 통해서 국가간 난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부럽습니다.
마스트리히트가 어디있는지도 이번에 알게 되었네요. 돈을 발행하는 장소는 한 군데인가요? 가령 동전의 경우는 각각 다른나라에서 제조를 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룰이 있나요?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금수강산님의 질문에 답이 너무 늦었습니다. 지폐는 ECB의 결정으로 각국 중앙은행 관할하에 제조합니다. 물론 이는 제조한다는 것이지 화폐의 공급과는 다릅니다.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각국이 제조하며 100유로권 이상은 그간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 핀란드 중앙은행에서만 제조했습니다. 제조국별로 일련번호 시작글자가 독일은 X, 이탈리아는 S, 그리스는 Y 등으로 되어 있어서, 위기가 한창일 때 위기국에서 제조한 지폐는 화폐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괴담'도 돌았습니다만 이는 그야말로 괴담입니다. 주화는 ECB가 발행량을 결정하며 각국 정부가 제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