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焉間 흘러 흘러 60回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어언간 이번으로 60회(만 5년)째를 맞는다.
다른 글에서 등산에 관한 글로 바꿔 쓰기 시작한 것이 1992년 5월부터인데. 세월은 유수(流水)같다고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오늘에 이르렀다.
앞으로 100회까지는 40개월, 필자의 나이를 생각해 볼 때 100회까지 채울 수 있을는지 의문이 앞서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길뿐이며, 그동안 필자의 글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여러 악우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을 기대하는 바이다. 그러면서 여기서 이 기회에 필자개인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 것은, 그 동안 전에는 “각종산악월간지”나 “전문서적”에 의해서 막연하나마 이론을 바탕으로한 등산에 관해서 좀더 알려고 노력하는 한편, 등산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 자문을 구해보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실지로 실력있는 등산가란 차분하고 조용해 눈에 띠지않아서인지 만나기가 어려웠었고, 만나는 사람마다의 말을 들어보면 거기서 거기까지로, 왠지 신빙성에도 문제가 되어 등산가임을 과시하는 말 같이만 들려지기도 할 뿐더러, 전문서적의 이론과도 차이가 있는 등, 혼돈만 가져오게돼 실지 등산을 하는데 이해부족으로, 등산 따로 이론 따로로 등산다운 등산이 될 수 없었다.
이론을 바탕으로 한 등산의 진미를 느끼면서 오를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전에도 언급한바 있지만 1973년 1월초 대산련 부산연맹에서의 8박 9일간의 “지리산 동계훈련”에 참가했던 것이 값지고 좋은 계기가 되었었으며, 필자의 등산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주기도해, 그 후부터의 등산에 큰 도움이 되어, 이나마 오늘의 필자를 있게 한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새삼 거슬러 올라 생각해보아도 산을 오르기 시작했던 필자의 나이 겨우 20대초반인 일제시(日帝時)의 일로서 물론, 그 시대는 우선 우리나라의 대학교라고해야 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가 고작이였었던 때였었는데, 그것도 일본인우선으로 입학을 시켰으니, 우리 한국인들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나 연희전문학교 또는 세부란스의전이나 이화여자전문학교 정도였으므로, 등산계도 거의 황무지였던 때로서 원칙없는, 그저 명목상의 등산을 하면서 단지 산을 오르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생각하였던, 지난 과거를 다시 돌이켜 보면서,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너무나 초라했던 옛 추억이다.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그때 서울근교소재 “북한산 인수봉”에서 공교롭게도 우연히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어느 등산가를 만나, 그분의 배려로 난생처음으로 Rock Climbing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등산이 대중화되질 안았던 시대에 Rock Climbing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선 정말 상상도 못했던 그야말로 꿈같은 시절이였었다.
졸지에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암벽등반” 공포에 쌓여 장쾌함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후 다시 그분을 만나 한번인가 두번을 더 인수봉을 오를 수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분의 친절이 오히려 조심스러웠고, 또한 존경함이 지나쳐 수줍음으로 변해, 그분이 왠지 일반 우리 사회인과는 다른, 어울릴 수 없는 계층에 있는 분으로 생각되는 등, 부지중 거리감이 느껴져서 어리석게도 그분의 이름조차도 물어보지 못하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결국 그후 등산가다운 등산으로의 길을 상당기간 늦춘 요인이 되었던 것이며, 심지어 그분을 피해 도봉산으로 등산Course을 바꾸어 오르기도 했었는데, 그 당시 그 좋은 절호의 기회를 살려서 그분에게 좀더 적극적이었었다면 오늘의 필자의 등산경력은 좀더 달러졌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때를 살든 사람들은 왠지 누구나 모두가 다들 그러했듯이 “양반의 품위를 잃지 않는 행동”이라고해서 순박하기도 했었지만, 어떻게 보면 세련되지 못한, 어리석기도하고, 두뇌회전(頭腦回轉)이 매우 무딘 것이 그 당시의 일반적인 추세이고, 또한 사회의 흐름이기도 했었는데, 결국 필자의 등산다운 등산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한 동기가 전술(前述)한 1973년 1월초 대산련 부산연맹에서의 “지리산 동계훈련”까지의 기나긴 공간을 만들게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일생에 세번의 운이 있다”고 하던가?
현재의 사람들의 인성과 사고방식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상상을 초월한, 이해키 어려운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지금을 사는 현대인에 비해 자기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자기 억제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였으며, 그야말로 공생공존의 사회, 상부상조의 사회, 믿음의 사회로서 이웃사촌이란 말이 실감나는 사회, 새삼 이 글을 쓰면서 필자의 과거사를 회고하다보니 왠지 지난날들이 한없이 그리워져 이런 글로 흐르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의 악조건(惡條件)과 등산이 아직 미개척분야였던 그 시절,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지금을 사는 신세대들은 실지로 그 시대를 몸소 체험한 기성세대들보다는, 지난 옛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이며, 알고있다 하더라도 실지로 체험한 것만큼은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오늘을 사는 신세대 여러분에 몫이다.
서로 조화를 이루려고 가일층 노력하여 다함께 힘을 모아 우리 등산계를 정예화(精銳化)시키는데 노력하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서 우선해야할 과제는 “우리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화(人和)와 Manner에, 힘써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에서의 몸에 배인 습관과 행동이 자연적으로 등산을 할 때 그대로 이어져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우리 나라야말로 “산불”이 많이 나기로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으뜸일 것이며, 이는 거의가 다 담뱃불에 의한 것임을 부인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입산금지기간”이라는 제도가 있는 나라다.
이는 어디까지나 위헌(違憲)이라고 생각되며, 이의 해결책을 엉뚱하게도 단순히 산에서부터 찾으려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데, 이는 온 국민이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초질서를 지켜 몸에 익히는데서부터 찾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즉, 평상시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가장 기초적인 습관이 몸에 배어져 있는, 습관화된 생활이었다면 산에서도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릴 리 만무일 것이다. 재론해서 일상생활에서의 무심코 행하는 몸에 배인 버릇이 등산에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이 전보다는 매우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환경속에서 거침없는 자기표현을 얻은 것까지는 좋지만, 너무나 개인일변도인 것을 넘어, 기초질서를 지킨다는 그 자체를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은 물론, 거추장스럽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문제인 것이며, 이러한 사고방식이 산에까지 이어지니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나라를 되찾은지도 어언 50여년이 지났다.” 곳곳에서의 “시행착오의 연속,” 아직 확실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Vision이 보이질 안는다.
당장만 있고 내일이 없는 것은 Vision이 아니다. “긴급성”과 “중요성의 판별능력의 결여”에서 오는 “오류의 연속,” 즉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곳곳에 파헤쳐지고 있는 자연파괴 행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우리가 삶을 누리고 있는 이 “지구” 또한 살아 있는 “유기체”다. 우리 인간이 오로지 성장위주로만 밀고 나가기만 한다면 1세기내에 파멸하고 말 것이란 신문기사가 필자 앞에 놓여있다. 또한 이 기사는 “전세계 140만종의 생물”중 매년 27,000종이 사라지고, 포유류의 25%가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고도 되어 있다.
전세계 인구중 11억명이 병든 공기를 마시며, 매일 25,000명이 공해병으로 죽어간다고도 기술하고 있으며, 이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는 선포(宣布)이며 경고(警告)라고도 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연”에 대한 “폭군”이며, “배신자”로 변해 있다.
긴급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부지중 중요성의 판별능력을 등한시하는 시행착오를 범하고 있다.
삶의 Pattern 역시 정신적, 도덕적인 위험수위에 와 있는지 이미 오래며, TV 등 언론매체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 할아버지부터 며느리, 손자까지 온 가족이 다 함께 보는 TV방송의 Program부터가 Drama 등, 온통 선정적(煽情的)이고 불륜, 폭력적이며, 오락물 일색으로, 사치가 난무하는 퇴폐경연장(頹廢競演場), 사치풍조의 선전장이 돼, 이의 끝이 보이질 않고 더욱 심해만 가고 있고, 신문(新聞) 역시 온통 치고 받는 Sports신문이 더 잘 팔리고 있는 실정으로서, 우리의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평온한 가족제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뭉게버리고 말려는,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통제불능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온통 “날나리판”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나없이 “경제발전”만 추구하며,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가치의 척도”도 “경제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림”도 “돈”으로, “글”도 “돈”으로 평가되곤 했다. “문화”으로의 돌파구를 등산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더 중하게 여기는 생활신조 확립에 정면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실정이어서 아무리 등산게를 정신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체질로 유지(維持)케 하려고해도 사회의 분위기가 뒤따라주지 않아, “선량한 대다수”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시 돼야 하는데,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라는 개념,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개성(個性)”은 “과잉(過剩)”으로 넘쳐나지만 “함께 사는 능력”은 심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현실로서,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자연적으로 등산계에도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어, 심히 우려가 된다.
인간다움의 기본은 “사랑”이며, 이렇게 될 때 우리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며, 희망찬 미래도 보이는 것이다.
1997,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