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율객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고 자연의 혜택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한 해 시작과 끝은 겨울이다. 입동(立冬 11월 8일)부터 시작하는 겨울의 절기들, 소설(小雪 11월 22일), 대설(大雪 12월 7일), 동지(冬至 12월 22일), 소한(小寒 1월 6일), 대한(大寒 1월 20일)이 모두 이 기간에 들어있다. 추위의 절정인 대한이 끝난 지 10여 일이 지나서 입춘(立春 2월 4일)을 맞이하는데 사실 봄을 이야기하기엔 어쩐지 어색한 시기다. 온 누리에는 소설과 대설에 내린 눈이 소한과 대한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 눈꽃 잔치를 벌이고 온 자연을 그 얼음 속에 가두고 있는 때 입춘을 말한다니 그저 가상(嘉尙)할 따름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굴하지 않고 그 누구 하나 느끼지 못하는 그만의 촉감으로 창조주의 섭리를 확신하지 못하면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봄의 선언이다. 이 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춘의 바통을 받은 우수(雨水 2월 19일)는 동장군의 포로가 되었던 눈(雪)을 녹여 빗물(雨水)로 만들어 대동강 물까지 풀어놓는다. 심산계곡 빙설(氷雪)에 갇혔다 풀려난 계곡청수(溪谷淸水)의 물소리는 겨우내 적막했던 산중초야(山中草野)로 봄을 싣고 청아하게 퍼져 간다. 경칩(驚蟄 3월 6일)은 긴 동면에 빠져 있던 개구리나 벌레들을 깨움으로써 동장군의 손아귀에서 진정 해방을 맞이하는 증거를 보여준다. 봄기운에 떠밀려 난 동장군은 꽃을 시샘하여 그 잔존 세력들을 규합하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이 땅에 한두 차례 추위를 몰고 오지만 최후 발악하나 싶더니 삼일천하가 되고 만다. 이제 춘분(春分 3월 21일)은 봄의 콘서트 개최를 알리는 방문(榜文)을 동네방네 내걸고 고운 목소리로 새 시대의 개막을 힘차게 외친다. 태양의 황경(黃經)에 맞춰서 한해를 24 등분해서 만들어진 이 절기상의 춘분은 진정 봄과 겨울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구분 짓는 기준이다. 이때 태양은 적도(赤道) 위를 똑바로 비추기 때문에 이 땅에는 낮과 밤이 길이가 비로소 평행선을 달린다. 곧바로 천지는 상쾌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한 시대를 맞이한다. 청명(淸明 4월 5일)은 이제 완전한 봄이 되었으니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완전하게 채비(差備)하라고 만물에게 콧바람을 불어준다. 겨우내 굳었던 땅을 기경(起耕)하고 소중하게 보존했던 씨앗을 파종하라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이 씨앗을 품은 땅에 보약 한 첩 조제하여 부어주니 온갖 곡식은 그 봄비에 기름진 열매를 꿈꾼다. 곡우(穀雨 4월 20일)는 창조주가 생명을 위하여 시의적절 준비하신 은혜의 단비요,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 주실 이른 비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4).
이 비에 메말랐던 겨울 나목(裸木)에는 물이 오른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가지 끝까지 차오르면 이내 파릇하니 새싹이 겸연쩍게 고개를 내밀고 수줍은 듯 꽃망울이 터진다. 화사한 춘화(春花)들의 훤화(喧譁) 소리가 온 산에 사무친다. 연분홍색 옷을 입고 노래하는 남산(南山)의 진달래, 진노랑 때때옷을 갈아입고 춤을 추는 북산(北山)의 개나리, 앞뜰에서 백색과 자색으로 뽐내는 봄의 가인(歌人) 목련화, 뒤뜰에다 한겨울의 눈꽃 잔치라도 벌여놓은 벚꽃들의 재잘거림, 이 모든 것이 마치 할아비 앞에서 춤추는 손주들의 재롱 같다. 이 놀이에 빠진 상춘객(賞春客)은 온 산하를 쏘다니며 만개한 봄꽃들의 진상(眞相)에 넋이 나간다. 갑옷처럼 무거웠던 겨울옷을 훌훌 벗고 나니 그 무게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던 손놀림이 자유롭다.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며 답답했던 빙판에서 들 노루처럼 뛰놀며 이 율객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고고도 아니고 탱고도 아닌 춤, 그저 몸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흥이 되살아나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막춤인데도 굳은 몸은 유연해지고 답답했던 가슴은 구멍이 뚫린 듯이 시원하다. 곡조도 없고 박자도 맞지 않으나 샘처럼 흥이 솟는다. 생명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니 풍요로운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창조주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행복의 물결은 일상의 바다에 출렁인다. 불가능한 일로 인해 절망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힘조차 없던 몸을 일으키고 드디어 이 웅덩이 탈출에 성공한다.
살기등등했던 동장군의 위협 아래에서도 봄을 노래했던 그 율객들처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창조주의 약속을 믿고 아직도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일상의 동장군을 향하여 힘차게 외친다. 홍해가 길을 막고 수없는 원수들이 방해해도,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벅찬 무거운 질고가 어깨에 얹혀있고 자물쇠로 겹겹이 잠겨있어 도저히 열 길 없는 폐문 앞에 서 있을지라도 봄의 율객처럼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하늘 하나님을 노래할 가객이 되어 환한 시대를 열어야 한다.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치던 그 길에서 춤을 추는 봄꽃들과 함께 믿음의 동토에서 춤꾼들과 율객들이 어우러져 화사하게 한마당 잔치를 벌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추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화로(火爐)요, 어둔 세상을 밝혀줄 광명한 횃불이다. 절망의 나락에서 소망의 끄나풀을 잡고 희망의 새끼줄을 꼬는 역사의 로퍼(roper)다. 창조주의 섭리를 믿는 봄의 율객에게 이루어질 약속이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해내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아가 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