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실수를 한다.
아니, 평범한 인간이기에 어쩌면 자주 하는 편인지도 모르겠다.
때론, 약속을 예사로 생각해서 상대가 짜증나게 하는가 하면, 또, 말을 잘못해서 상대를 화나게 하기
도 하고.....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는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나도 실수를 할 때가 있긴 하지만, 정말 하지말아야 하고 비밀을 지켜 주어야 할 말을 해 버리는 사람
도 가끔 본다.
이런 친구도 있다.
한참이나 연락이 없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속에 소주가 한 잔 들어가자, 오랜만에 만났으면서도 "다른 친구들도 많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친
한 친구가 니다."라고 말을 해 주기도 한다.
얘길 들어보면, 그 친구는 정말 다른 친구들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누구는 요새 뭘 하고, 누구는 또 뭘 하다가 손해를 봤고.....또, 누구는 부부 사이가 안 좋고, 또 누구는
별거 중이고, 누구는 이미 이혼을 했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친구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혼을 했
다카데! 그 친구 어릴 때부터 그런 기질이 좀 있더라 아이가? 나는 정말 그 친구한테 실망했다. 이 말은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건너가면 안 된다? 니는 내캉 둘도 없는 친구이끼네 말해 주는 기다? 이 비밀은
꼭 니만 알아야 된데이?" 등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친구.
그러면서 그는 또 "절대 말하면 안 된다"던 그 '다른 친구'에게도, 나에 대한 험담을 똑같이 하더란 말을
들었다.
그래놓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알고있는 자신이, 무슨 특별한 존재인듯한 착각에, 속으로는 '친구들
의 모든 비밀은 내 손안에 있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만일,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분명 '둘도 없는 친구'가 수시로 바뀌는 친구일 것이다.
"니는 어떻게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한테는 말을 다 해 주더라고. 몰라, 내가 입이 무거워서 그런지, 주위에서 나한
테 그런 의논을 많이 해 오더라고."
요런 무식함도 내뱉을 줄 안다.
그 험담에는, 원래 전해 들었던 말에다가 자신의 짧고 둔한 생각으로, 요리 칼질하고, 조리 덧붙여서,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그 진의도 모를 거란, 큰 착각에 사는 단순 천박함도 묻어난다.
험담은 강한 중독성을 지녔는 지도 모른다.
한 번 내뱉기 시작하면, 자꾸 하고픈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진짜? 설마? 아~,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다."
믿기지 않는 말을 듣고는 실망을 토해놓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친구랑 입을 맞춰서 다른 사람을 찧고
까불었다는 내 어리석음에 대한 죄의식과 함께, 다른 친구의 험담을 전해주던 그 친구가 조심스러워
진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도 그렇게 하는 건 아닐까? 오늘 나랑 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각색을 해서 전하는 건 아닐까?'
그 때부터는 자꾸 그와의 만남을 피하고 싶어진다.
'혹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자꾸 나를 돌아 보게도 된다.
나 자신도 모르 내뱉은 내 말속에 혹시 다른 사람의 험담이 담기지는 않았는 지......
또, 이런 친구들도 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쓴 글에다가 살아온 방식이 다른 자신만의 잣대로 무식한 평가를 해 놓고는,
자신의 유식함을 뽐냈다는 듯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무식해 빠진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써라!
아무 글이나 써 보자!
처음부터 잘 쓸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무식한 비평가의 혀 짧은 그 비평을 아예 무시하고 '나'를 한 번 표현해 보자.
방정식을 모르고, 부등식을 모르면 어떤가?
코 큰 놈들의 혀 꼬부라진 '전치사'나 '관계대명사'를 모르면 어떻겠는가?
'과거 분사'를 모르면 어떻고, '현재 진행형'을 모른다고 누가 뭐라겠는가?
우리가 영어를 모르면 부끄럽고, 미국인이 우리말을 모르는 건 왜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미국인이 우리말을 몰라도 부끄럽지 않듯이, 우리가 영어를 몰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고향 앞집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께, 아직 젊은 뒷집 아재들한테 인사할 수 있는 그 따사롭고 인정많은
우리말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 따사로움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끼리 나누는 정담에 맞춤법이 맞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우리 시골 할머니들이 꼭 문법을 따져가며
이야길 하고, 엄마 아버지께 얘기할 때 문법을 따져가며 얘길 했던가!
문법을 따져서 뭐 하겠다는 건가?
문법을 요리 따지고 조리 따지다 보면, 말이 어려워지고,잘 하던 말도 가슴이 답답해 질 때가 있다.
문법 따지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은 머리에 든 지식은 많을 진 몰라도, 인정은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밖에 나가서 똑똑하다는 소리는 들을 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집에서 같이 사는 마누라마져도 싫어하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다.
겁낼 필요가 없다.
맞춤법 틀리고, 문법 몰라도,듣고 이해할 사람은 다 하고, 읽고 이해할 사람들은 다 한다.
우리가 느꼈던 정서가 가슴속에 그대로 있는데, 왜 모른단 말인가?
우리 마음을 표현하면 되는 거지, 무슨 받아쓰기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슴에 감추고 살다가도, 고향 사람만 만나면 자연스레 넘쳐 흐르는 사투리 섞인 그 구수한 인정을 표
현해 보자.
그러면 우리 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요, 아름다운 시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 혀가 너무 발달해서 고향의 따뜻함을 모르는 그들의 말은 무시하고 우가 숨겨놓은 마음들
을 한 번 써 보자.
글 재주를 뽐내서 장원급제하는 자리도 아닌데 무슨 걱정인가!
잊고 살던 고향의 순희, 숙자가 보고 싶고, 객지 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고향 냄새를 맡고 싶고, 또, 형
님에게, 친구에게, 어쩔 수 없이 직장 상사에게 쓴 보증 땜에 집을 날리고도, 아무에게도 말을 못해 얻
은 울화증도 풀어보고, 별난 시동생 뒤치닥거리하고, 또 미운 시누이들의 싼 입놀림에 지쳤거든, 맘 놓
고 푸념도 늘어놔 보고,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욕도 한 번 써보자.
고향?
엄마품처럼 그저 따뜻하고 포근하다 아이가!
그저 '옛날에에~, 내 몇 살 땐 데에~'로 시작해서 잊고 살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보자.
얼마나 따뜻하고 편한 글이 되겠노, 그쟈!
선배님들 맞지예?
그리고 친구들아, 후배들아, 우리 자주 보자.
가슴에 묻어둔 이바구들 풀 수 있는 그런 자리 한 번 만들어 보자.
바빠서 못 나오겠거든, 우리가 만든 카페에다가 앞에 앉은 친구랑 술마시며 말하듯이 그렇게 글도 한
번 써 보고.
으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