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걸인농부 |
女 : 불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경문이 금강경이라며 매일 독송했다는 石泉(석천)은 어떻게 인연이 되어 아버지를 따르게 되셨습니까? 도통하려면 다 버려야 하는 택일법이 무슨 의미일까 해서요. |
父 : 삼생의 인연법이다. 불교TV를 틀다 보니까 외국인 스님이 설법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더구나. 설법 내용 중에 금강경으로 한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옛 중국의 동산스님이 있었단다. 헌데 중국의 남부지방에서는 그 좋은 금강경은 아는지 모르는지 면벽수행으로만 불법을 깨우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금강경해설로써 그들을 바르게 불법세계로 인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게지. 그래서 몇 날 며칠을 걸어 남쪽으로 가는 중에 배고프고 잠자리가 필요하여 허술한 식당을 겸한 여인숙에 들었는데 노파보살이 동산스님을 보고는 큰스님 같다며 환영하여 맞으며 묻기를 어디서 어디로 가시는 어디의 스님이시냐고 물음에 당신의 그 뜻을 말하니 그럼 제가 질문 하나 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동산스님은 자신만만하게 얼마든지 질문하라고 했더란다. |
女 : 그 노파 식당주인이 도의 격을 시험하는 관음보살이 아니었을까요? |
父 : 글쎄다. 어쨌든 그리하여 질문하게 되었는데 조건이 있다면서 질문에 대답을 잘하시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드리고 답을 못하시면 돈을 내어도 식사제공은 못한다고 하더란다. 그러나 동산스님은 자신이 있었겠지. |
女 : 그래서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대답은 또 어찌 했고요? |
父 : 그래.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네 말대로 도력을 시험하려고 나타난 분이니 말이다. 얼굴이 붉어졌다 푸르러졌다 하다가 잿빛으로 얼굴이 변했더란다. |
女 : 밥도 못 얻어먹고 도망치듯 그 여인숙을 빠져나갔겠군요? |
父 : 그랬겠지. 그리고 간 곳이 가까운 불가의 선방이었고 그곳 스님과 밤늦게까지 도담을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 시각이 되어 정해준 방으로 가려는데 낯선 곳 야밤중에 보이지 않자, 갈 수가 없게 되어 난처해 하니 선방스님이 등불을 내줌에 이제는 갈 수가 있겠다고 하자 선방스님은 그 불을 꺼버렸단다. 그 순간에 금강경의 대가인 동산스님이 번뜩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女 :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금강경이 불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경문인데 그 경문에 달한 스님도 실상은 선방에서 도를 깨닫지 못했으니 참선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금강경에만 매달려 자만에 찬 스님이 화엄경 선재동자와 같이 구도노상에서 고행으로부터 깨달았다는 뜻인지요? |
父 : 둘 다이다. 교와 선은 음양으로 둘이지만 실제는 하나이고 두 가지를 다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야기이다.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이 그것이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가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인 찻잔이 책상보다 위에 있다 하여 책상은 천한 것이고 찻잔이 귀한 것이 아니요, 상이 있기에 찻잔을 놓을 수 있다 해서 책상이 더 귀한 것도 아니라 모두 다 중요한 것이고 시비로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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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 금강경에 대해서 언뜻 말씀하신 것 같기는 한데 금강경의 뜻은 무엇입니까? |
父 : 한마디로 어찌 말하겠느냐만 金剛石(금강석) 같이 영구불변한 광채 있는 보물이 다름 아닌 금강경이란 말로써 깨달아 도심을 상징하는 경문이 금강경이라 하겠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만 년 전이나 현재나 같다 하면 그것이 천지의 정기라 하겠지. 사람의 몸은 그렇지 않지만 정신은 그와 같이 될 수 있으며 그 길을 안내하는 글이 금강경이라는 뜻일 것이다. |
女 : 헌데 금강경은 첫머리 내용의 뜻도 모르는데 제목만으로 어찌 그 속뜻을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매일 40여분간 경독하여 다 외우는 실력인데도 그 뜻을 잘 모르겠다고 하다잖습니까? 금강경 해석설법을 듣기도 했다는데 말입니다. |
父 : 머리만 보면 꼬리도 보인다. 금강경은 워낙 중요시하다보니 불가에서 고승대덕 수백여 명의 스님들이 해석했다는구나. 그중에서 五家解(오가해)라고 하여 다섯 고승대덕의 해설서가 유명한데 중국의 소명태자가 십만 번의 경독 끝에 32분단으로 나누어 해석한 것이 유명하단다. 어쨌든 금강경의 머리를 보면 “乞食”(걸식)이 나온다. 빌어먹는다는 말이다. 첫머리에 먹는 문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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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 산다는 것은 금강산도 食後景(식후경)이라 했으니 제일 우선한다는 뜻이겠지요? |
父 : 그렇다. 육신은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공부도 가능하니 삶에서 첫째 요건이다. 그런데 乞食이 무엇이냐! 석가부처는 성인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두타승 구도의 방도를 언젠가 말한 바가 있듯이 일곱 집을 다니며 밥 한술씩을 얻어서는 本處(본처)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먹었으니 석가불은 이 행실로써 구도의 제자들에게 戒(계)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걸식은 하지만 반드시 밥때가 되어서는 가사를 제대로 갖추었으니 의식주가 다 성경신으로 갖추어야 공부가 됨을 가르친 것이다. “본처”로 돌아옴이란 수도장을 뜻한다. “기수급고독원”이 불가의 두 번째 지어진 절이라고 하는데 定하는 자리가 住(주)로써 두 번째 필요하다는 뜻이다. 洗足己(세족기) 敷座而坐(부좌이좌)라 발을 씻고 정좌를 하였다는 말이니 정제로써 참선을 가르침이다. 석가불은 설법하기 전에 반드시 선정의 삼매에 들었다고 하니 그래야 천지의 참도를 설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금강경 첫 구절은 戒定慧(계정혜)를 가르치는 머리글이라 하겠다. 農君(농군)이 인간농사 짓는 기초를 가르친 대목이다. “農”(농)자는 용의 용틀임(曲, 辰)이며 천지조화를 상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