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청헌 김세필 선생 친필 詩 발견
농암 이현보 선생의 <애일당구경첩>에 수록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 중인 상촌공 후손 문간공 김세필 선생 친필 시 확인
안동 시내에서 약 20여킬로 떨어진 안동시 도산면, 안동댐 수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한국국학진흥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일행은 김선종(국학진흥원 교육연구부 근무) 행정요원의 소개로 국학진흥원 전임연구원 이성원박사를 만났고, 십청헌 김세필 선생의 친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십청헌 김세필은 조선조 중종 때의 대석학으로서 조정의 경연청에서 논어와 주역을 강연하시며 임금을 가르치시던 대학자이며, ‘열가지 깨끗한 마음을 지닌 자’라는 뜻의 ‘십청헌’이란 호가 붙여졌다. 이번에 발견된 십청헌 선생의 친필 시는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손가에서 소장해 오다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애일당구경첩>(보물 제1202호)에 수록되어 있었다.
<애일당구경첩>은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이중 십청헌 선생의 시가 수록된 하책은 중종 21년(1519) 가을에 안동부사로 재직하던 이현보가 관내 노인을 관정에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지은 ‘화산양로연시’와 ‘애일당시’에 당시 경향의 명사들이 보내온 친필 축하시를 첨부하여 첩장한 것이다. 이 책에는 김세필을 비롯하여 황필, 황여헌, 김안국, 이장곤 등 40인의 송축시가 있으며, 김안로의 자필시도 들어있는데 조선 전기 명사들의 친필시고란 점에서 시문은 말할 것도 없고 서예적인 가치도 높은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농암 선생이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했을 때 김세필 선생은 홍문관 정자 벼슬에 있었고, 이때부터 두분의 교우 관계가 시작된다. 농암은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 춘추관기사, 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 38세 때 시간원정언이 되었으나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에 유배된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되고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를 하사받았으며, 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에까지 이른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지낸다.
농암은 연산조 때 명신으로 성격이 강직하여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으며,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십청헌 선생은 생원시에 합격한 바로 이듬해인 1496년 대과인 문과에 당당히 급제하여 수찬 벼슬에 제수되었고, 2년 후 1498년 농암 선생도 대과에 합격한다. 생원시 합격자 100명 중 대과에 합격한 이는 불과 20명에 불과했으며 이들간에는 돈독한 학연이 이루어진다. 십청헌 선생이 농암 선생보다 2년 앞서 대과에 급제한 이유로 십청헌 선생은 요직으로의 진출이 빨랐으며, 십청헌 선생이 지금의 함경도 지역을 순행할 때, 이 지방 외직으로 근무하던 농암 선생과 재회, 요직으로 발탁하였고 농암은 이를 계기로 급속히 중앙 관료로 성장하게 된다. 둘의 막역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농암 이현보는 후일 1519년(중종 14) 가을 안동부사로 봉직하였는데, 관내의 남녀귀천을 막론하고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청사마당으로 초청하여 성대한 양로연을 베풀었다. 이 행사가 ‘화산양로연’인데 화산은 지금의 안동을 말한다. 농암 선생은 이 자리에서 고을 원의 신분으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출 정도로 효의 실천가였다. 이는 효절공이란 시호에서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를 통틀어 효절이란 시호를 받은 분은 농암이 유일하다. 화산양로연에서 주목할 부분은 농암이 여자와 천민까지도 함께 초청했다는 점이다. 당시의 사회가 엄격한 신분사회였음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농암의 화산양로연을 축하하여 시를 선물한 이가 모두 서른 아홉 분이다. 여기에는 당대의 명현, 거유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는데, 하나의 사건에 이렇게 대규모의 집단 증시가 이루어진 것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며, 이들의 친필시가 고스란히 시집으로 남아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애일당구경첩>이 바로 그 책이다. 여기서 애일당은 농암이 지은 경로당 이름이며 구경은 부모가 생존하여 경사스럽다는 뜻이다.
높은 학덕과 올곧은 기개로 왕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던 십청헌 김세필 선생, 그리고 효의 실천가이자 강호시조의 대가인 농암 이현보 선생. 조선전기 한시대를 풍미했던 이 두 분의 정신세계와 체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취재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취재에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한국국학진흥원 이성원, 김선종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십청헌 선생 친필시
농암의‘화산양로연’을 축하하는 七言律詩
風樹人人怨彼天 풍수인인원피천
一家龜鶴獨彌年 일가귀학독미년
名都政在推恩日 명도정재추은일
庶老歡從戱綵邊 서노환종희채변
感發民彛增盛美 감발민이증성미
扶携壽域更留連 부휴수역갱유연
如今勝事多前觀 여금승사다전관
聳聽中丞設慶筵 용청중승설경연
부모 여읜 사람마다 하늘을 원망커늘
한집안에 귀수학수(龜鶴) 오랜수를 독점했네
도성의 그 명성은 추은일(推恩)에 있었는데
여러노인 희채자리(戱彩) 즐거히 모였다오
민심이 감격하여 어지신 임금님의 아름다움 더해지고
수역(壽域)으로 모셨으니 오래도록 머므시리
이같이 성대한 일 전에도 보았건만
중승(中丞)의 경사 잔치 모두들 놀라워하네
註 : 귀학(龜鶴) = 거북이와 학, 모두 오래 살음
추은(推恩) = 고령의 사대부에게 벼슬을 내리는 일
(현관의 부조에게 벼슬을 내리는 것)
희채(戱彩) = 노부모 앞에 아롱진 옷으로 희롱하는 것
수역(壽域) = 장수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곳 (太平盛代)
중승(中丞) = 고려 벼슬, 어사대의 종 4품
(농암의 벼슬, 여기서는 좌의정인 듯)
농암의 애일당 정자에 대한 七言絶句
忠信曾聞禮有鄕 충신증문예유향
分川新築慶還長 분천신축경환장
世萱不到聾岩上 세훤불도롱암상
翠色椿萱蔭北堂 취색춘훤음북당
충신(忠信)하는 예향(禮鄕)이라 일찍이 들었는데
분천(分川)에 정자지어 경사 또한 장구하리
시끄러운 세상소리 농암(聾岩)에는 안들리고
춘수 훤초(椿萱) 푸른색깔 북당(北堂)을 드리웠네
小白山南聚德鄕 소백산남취덕향
掛繩西日意偏長 괘승서일의편장
蟠桃未結三千子 반도미결삼천자
奉水斑衣更上堂 봉수반의갱상당
소백산의 남쪽에는 덕향(德鄕)이 모여있고
서일(西日)같은 잔명이나 뜻만은 장대하오
반도(蟠桃)는 삼천열매 달리지 안나니
아롱옷에 물 받들고 부모님전 찾아드네
註 : 충신(忠信) = 충성심과 신의
예향(禮鄕) = 예절바른 고을
분천(分川) = 땅 이름
농암(聾岩) = 이현보 선생의 호. 여기서는 지명
춘훤(椿萱) = 춘나무와 훤추리. 모두 오래살음, 여기서는 부모 비유
북당(北堂) = 부모님이 거처하는 곳
덕향(德鄕) = 덕스러운 고을
서일(西日) = 석양, 전하여 노경을 이름
반도(蟠桃) = 천도복숭아, 이것을 먹으면 삼천년을 산다 함
시 해설 : 정양원(사단법인 한국한시협회 상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