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4
류인혜
* 메디치가와 우피치Uffizi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에는 14~16세기 이딸리아 르네상스 작품과 17~18세기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화가, 독일, 플랑드르의 북방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중요한 작품으로는 조토의 <성모자>, 마르티니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마논나> 등이다.
한 가문이 대대로 이어서 모아 놓은 예술품에 대한 안목과 많은 조각가나 화가의 후견인이 되어 예술적 작업을 가능하도록 했던 부(富)의 결과를 보며 놀라웠다. 그곳에서 알게 모르게 집안 곳곳에 그려 넣었다는 그 가문의 문장을 보았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관람한다. 들어갈 때 검문이 심하다. 제복을 입은 예쁜 여자가 꼼꼼히 따진다. 김병권 선생이 검색문을 통과하려다가 여러 번 다시 나왔다. 뒤로 길게 줄을 서 있는 다른 관광객들이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엘리베이터를 쓰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두 번에 나누어 2층까지 편하게 올라갔다. 지금도 시의회의 회의 장소로 쓰고 있는 넓은 강당에는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의자가 너무 현대적이라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넓은 실내 곳곳에 모니터가 있어서 직접 미술품을 검색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전화기처럼 귀에 대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들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1300년대에 건설했다는 건물에는 벽화와 천장화가 아름답다. 어느 방에는 불을 상징하는 대장간, 물의 상징인 비너스의 탄생, 흙을 비유하는 그림, 공기는 천장화로 그려져 있다. 가장 구석방이고 창문이 있어 햇살이 많이 들어오는 작은 방 천장에는 물레를 잦고 있는 여인들이 그려져 있다. 공작부인의 바느질 방이라고 한다.
마키아벨리의 집무실과 의원들의 사물함이 있는 방이 나란히 있다. 사물함 표면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 당시의 도시들이다. 중앙에 지구의가 놓여 있다. 규모가 작은 기도실도 있다. 의원들이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그곳에서 기도했단다. 건물 안에 성당이 있고, 의회가 함께 있어 민주 정치의 시발점이 된 것인가 보다.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반질거리도록 닳아져 있는 돌층계의 사이가 아주 낮고 넓다. 긴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다니기 편하여지라고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니 말이 된다는 반응들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메디치가에서는 도시를 계획하여 건설하였다.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29)’였다. 밀라노에서 이곳으로 와서 건축물을 보고 그를 데리고 갔다. 밀라노도 새롭게 건설을 했다. 밀라노에서 가까운 파리에서 밀라노를 보고 가서 파리도 도시를 계획하여 건설했다. 그래서 중세도시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밀라노의 스칼라 광장에 서 있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다빈치 동상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네 귀퉁이에 각자 이름을 달고 네 사람이 서 있다. 그를 추종하던 제자들인가? 앞에서 왼쪽부터 뒤로 돌아 시계방향으로 이름을 적어둔다.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 1477~1523), 안드레아 살라이노(Andrea Salaino), 지오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Cioantonio Boltraffio), 마르코 도기오노(Marco Pocciono) 그러니 첫 번째 사람과 마지막 사람이 정면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와 시뇨리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왼편에 큰 다비드상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1501년 피렌체의 시청으로부터 <다비드> 대리석상을 부탁받아 1504년에 완성한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 시청 앞에 놓여 피렌체를 지키는 상징이 되었다.
미켈란젤로가 메디치가의 고대 조각을 연구하러 ‘로렌초 일 마니코프’의 집에서 체류할 때 브란카치(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 브란카치 예배당) 성당에 있는 ‘마사치오’의 벽화 앞에서 ‘토레지아니’와 논쟁으로 하다가 코뼈가 부러졌다. 그는 로렌초가 죽자 그곳을 떠났다. 1520년 메디치가 묘묘의 제작을 의뢰받아 24년에 착수했다. 10년간이나 걸렸으나 미완성이다. <아침> <저녁> <낮> <밤>의 네 우의(寓意)상 중 <저녁> <낮>의 두 남성상(미완성)과 <성모자상>(미완성)은 르네상스 조각품 중의 걸작이다.
우피치 미술관을 나와서부터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며 중요한 부분만 나뭇잎으로 가리고 나체로 서 있는 다비드상 앞에서 설명을 들었다.
실내에 있는 수많은 나체 조각들은 무심히 지나쳤는데, 넓은 광장 한편에 벗고 서 있는 다비드에게는 연민이 간다. 바라보는 사람이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비가 거세지니 사방에 세워진 조각이 많았지만 다른 것은 볼 엄두도 못 내고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광장을 지날 때 종소리가 들린다. 귀를 크게 열어서 맑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들었다. 젊은 흑인이 우산을 가지고 달려간다. 그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 사느라고 열심인 불법 체류자를 심하게 단속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조심하도록 만든다. 구속을 당하는 것보다 더 자유로움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오후 5시에 플로렌스(피렌체)를 출발하였다. 이곳에서 로마까지는 직선거리 230km이다. 비 온 뒤의 하늘이 장엄하다.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른 하늘 풍경이다. 버스가 달리는 좌우가 180도로 훤하게 뚫려있는 느낌으로 광활하다. 그림에서 보는 하늘의 풍경이 자연을 묘사해서 그런 것인가 보다. 해가 지는 서쪽 하늘 구름의 색감도 다르다.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운 맛은 없어도 노을마저 시원스럽다.
밤길을 달리는 버스에 올라앉으니 피곤하여 꾸벅꾸벅 졸았다. 밤중에 로마로 입성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수들의 마음이 이렇게 설레었을까? 창밖으로 어두워진 거리를 내다보니 보이는 모든 것이 유적지나 문화재로 여겨진다. 도시 입구에 묘지가 있다. 작은 건물에 불빛이 반짝인다. 봉안당이다. 불후의 명작을 남긴 작가들을 만날 수 없으니 그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참배하면서 생전의 그들과 만나듯이 감격해서 쓴 글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감상이 사라진다.
우리를 기다리며 식탁을 마련해둔 한식집 비원에서 해물탕을 먹었다. 서울에서의 해물탕을 연상했던 사람들이 참치가 들어간 해물탕에 실망한다. 김치 맛도 별로라고 수군거린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식으로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도시 외곽에 있는 호텔(Duca D'Este Hotel)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로마 시내는 물론 변두리까지도 유물이 발견될지 몰라서 제약이 엄격하다. 건축하다가 작은 유물이 한 가지라도 나오면 중단을 해야 하기에 건축자는 망한다. 그래서 대도시답지 않게 초지가 많다. 양을 치는 목동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