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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생명윤리협회 주최 탈핵에너지전환 담소회 2014. 03. 14.
여의도 담소회
지방선거에서의 탈핵에너지전환을 위한 공약, 그리고 교육부문에서의 공약은?
2014년 3월 14일 서울 여의도
좌담자 : 김광철 (신은초 교사,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김은형 (인헌고 교사, 태양의학교 공동대표),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저탄소대안경제론’저자)
사회자 : 이원영 (수원대 교수, 국토미래연구소장)
다루는 주제들
- 후쿠시마 이후 우리는 탈핵운동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
- 방사능급식 예방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 정부 에너지기본계획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
- 앞으로 탈핵 로드맵을 짠다면 무엇부터 해야 한다고 보는가? 시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시책은 무엇일까?
-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공약이 나오면 좋겠는가? 특히 교육분야 공약은?
후쿠시마 이후 우리는 탈핵운동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탈핵교육은?
이원영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오늘 좌담회를 위해 부산에서 오신 김해창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난 직후, 아는 교수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당연히 원전사고가 화제로 떠올랐죠. 제가 그랬습니다. 핵발전소 지으면 안 되겠다고. 그랬더니 이분들이 정색하면서 무슨 소리냐, 대안이 없지 않으냐, 일본에서 터진 원전은 구닥다리라서 그렇다, 한국은 괜찮다 하시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앞서 원전사고의 확률 이야기를 들으셨을 텐데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만 4개의 원자로가 터졌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체르노빌, 스리마일 섬 원전을 더하면 전부 6개가 돼요. 그러면 앞으로 천년 동안 몇 개가 터질까요? 50년 동안 6개 터졌으니까 천년이면 20배인 120이라는 수치가 나옵니다. 그 가능성을 반, 아니 반의반으로 줄여도 그게 현실이 된다면 지구는 살 수 없는 곳이 돼요.
간단한 계산인데요. 사람들이 전혀 생각을 못 합니다. 가까운 교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하면서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녀야할 대학교수까지 원전을 찬성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나기 전까지 원전 문제는 저와 관계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후 모든 게 달라졌어요. 4대강반대운동을 하던 저에게 바로 코앞에서 큰 사고가 난듯한 기분이랄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사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지요. 그러던 중 독일에서 탈핵 선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저거다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독일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탈핵운동이 시작된 셈입니다.
독일에 가보니 오랫동안 전개된 강력한 풀뿌리운동들이 있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새로운 싱크탱크들, 학자들, 핵산업체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은 독일국민에게 세 가지 점을 설득력 있게 전파했다고 합니다. 핵에너지는 고도로 위험한 기술이고, 자연에너지라는 대안이 충분한데 비해, 방사능폐기물을 처리하는 안전한 방법은 없다는 점을 말입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때 각자 유사한 충격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후쿠시마 이후 탈핵운동을 3년이나 해온 셈인데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서 말씀들을 나누어볼까요? 우선 김광철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광철 :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나서 일본뿐만 아니라 김은형 선생님께서도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로 큰 충격이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고 나서 대통령이 직접 계약 체결을 하러 가 있는 상황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이 일어났던 거죠.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기후변화’ 문제는 전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과제로 떠올라있었습니다.
포스트 교토의정서를 내다보면서 각국마다 탄소를 저감하기 위한 목표치를 내놓고 그걸 구체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것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교토의정서 체제 내에서는 한국이 규제 대상국에서 제외되어 있었지만 교토의정서 효력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 한국은 세계 탄소 발생 9위의 국가로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요구에 대응도 하면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하여 당시까지만 해도 원전은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평가받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걸고, 그 핵심적인 2개의 사업으로 4대강과 원전수출 사업을 내세웠는데, 후쿠시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국민들 사이에선 원전에 대한 인식도 나쁘진 않았죠. ‘핵발전’이라는 용어도 안 쓰고, 정부가 원전을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것을 좋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죠. 또 환경운동권도 부안사태, 안면도 핵 폐기장 건설과 관련된 사건이 있을 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막아낸 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희망하는 지자체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하니, 천년 고도 경주는 주민 투표에서 89% 찬성으로 방폐장 유치를 결정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보면, 부안지역이 그렇게 싸우면서도 아직까지 전반적으로 국민정서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에서 기후변화 원전 물질인 탄소 배출을 하지 않고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대체적인 논리 앞에서 당시 상황은 반대 논리를 내세우지도 못하고 지지부진해졌고, 결국은 박근혜 정부의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 계획은 탈핵이 아닌 원전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내거는 새누리당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후쿠시마 사건의 충격도 ‘잠깐’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은 국민들의 생각을 바꿔내지 않고는 국가에너지 계획을 탈핵 쪽으로 방향을 잡고, 안전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환경 운동권이나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아이디어와 방법들을 개발하는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의 충격은 ‘잠깐’인가?
김해창 : 저는 결국 우리가 탈핵이라는 것의 사회적 가치나 삶에 대한 철학이 보수화, 나쁜 의미에서 속물화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70, 80년대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2000년대 이후로는 국가 자체가 막대한 자본이나 권력을 통해 국민들을 쇠뇌 시키는 구조가 되다보니 국민들이 탈핵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이용해서 지자체에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가지고 주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구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부산이나 영광 같은 곳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내에서도 특히 5km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매년 수백억씩 퍼주는 반면, 방사능 비상계획구역 안에 들어야 할 30km 반경에 있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대책이 없지요. 그래서 원전입지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와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도 있고, 어찌됐든 지금까지는 원전이 자리 잡은 기초나 광역지자체가 지방자치의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부산으로 치자면 1978년도에 고리원전 1호기가 들어선 게 박정희 정부 시절아닙니까?
원전이 그때 그 시절부터 계속 들어왔고, 게다가 새누리당이 지방정권을 20여 년이나 잡아왔는데도 그 동안 광역단체장인 부산시장이, 350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되는 사람이, 이런 원전안전이나 탈핵 에너지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공약 하나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탈핵운동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나 시민단체 활동가와 일반 시민들 간 이해의 간극이 큽니다. 전문가나 활동가는 핵발전소 안전문제가 중요하기에 핵발전소를 폐쇄해가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시민들은 원전의 안전은 두렵지만 원전을 폐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죠. 즉 원인과 대책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원전은 정부 차원의 물량공세를 통해 국민들을 ‘안전신화’로 세뇌시켜왔고, 게다가 우리 국민들도 어느새 소시민이 되어가면서 편리성과 인센티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돼 버린 것 같고, 시민단체 또한 생활에 밀착해서 시민들에게 호소해야 하는데 운동권 논리로 자칫 탈핵운동이 이념화돼버리는 극단적인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후쿠시마사고로 인해 원전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뒤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겠습니다만 이번 6.4 지방선거에선 지자체 단체장 선거공약에 새로운 탈핵문제, 에너지전환문제가 상당히 이슈가 될 수 있도록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것 같습니다. 어려운 국면이지만 후쿠시마 참사를 통해 새로운 계기가 왔고, 후쿠시마 참사 후에 처음 맞이하는 지방선거인 만큼 이번이야말로 시민들 가슴에 다가갈 수 있는 탈핵운동을 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은형 :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제가 85년부터 교육운동을 했으니까 30년이 되어갑니다. 운동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운동이란 사람의 의식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삶을 바꾸는 일입니다. 의식과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일은 100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일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운동은 어렵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교육을 바꿔보겠다고 쉬지 않고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최근 탈핵운동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체르노빌 등 큰 사건이 있었지만 우리는 백지 상태에 있었는데, 후쿠시마 사건 후에 문제의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저는 교육운동을 하며 얼마나 많은 싸움을 했는지 모릅니다. 교실은 물론 거리에서, 집회는 물론 단식투쟁도 무수히 했지요. 그래도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후쿠시마를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을 보고나서는,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요. 후쿠시마 사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아무 관심도 없고, 위험에 대한 의식조차 없이 그냥 살아가고 있었을 거예요. 핵발전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의식이 달라지겠어요? 누군가가 교육을 시켜주거나, 방송이나 언론에서 끝없이 진실을 폭로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알 길이 있겠어요? 어쩌면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소중한 계기가 되어, 이제 드디어 제대로 된 탈핵 운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예전에도 탈핵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탈핵운동은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을 거예요. 작은 소모임 하나 만들어도 자리를 잡는데 3년이 걸려요. 저희가 5년마다 학교를 옮기는데 1년은 낯설어서 힘들어요. 2년 차도 조금 힘들어요. 3년은 되어야 조금 익숙해지죠. 이제 후쿠시마 3주기가 되었는데 다른 분야의 운동(교육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에 비하면 탈핵 운동은 이제 시민운동으로서 자리를 잡는 중이며, 위험이 노출된 만큼 운동의 조건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이 운동의 절박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인 거지요. 예컨대 ‘방사능 괴담’이 돌고나서 여든셋 되신 저의 어머니가 ‘젓갈도 먹지 말라’는 문자를 받고 충격을 받으셨더군요. 이제는 동네 할머니들까지도 ‘생선 먹지 말라, 암 걸린다’고 하시거든요. 나이와 세대를 뛰어넘어 ‘위험’에 공감했다는 것은 엄청난 상황인 거죠. 다만, 지금 언론이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정부는 은폐하는 나쁜 조건이지만, 암암리에 불안감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탈핵 운동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후쿠시마 후 핵발전에 대한 찬반 토론 수업을 하고, 논술 시험을 보고, 탈핵 시창작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학생들이 탈핵도보순례에 참여하고 여러 차례 탈핵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반발하거나 이견을 달지 않더군요.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 교장선생님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어요. 탈핵을 주장하는 일이 별로 이상하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문제는 확신을 갖고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아요. 사람들이 탈핵운동에 못 나서는 것은 아직 진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이원영 교수님 덕분에 독일에 가서 탈핵 현실을 보고나서야 이렇게 바뀐 거 아니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독일에 한 번씩 다녀오면 다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교육의 효과죠. 물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실천 에너지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기다려주면 바뀔 거라고 믿어요. 우리들이 앞장서서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태양의 학교’를 만들어 탈핵교육운동에 나선 것은 독일에서 탈핵이 이루어졌고, 독일 교사들이 탈핵교육을 잘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탈핵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저는 수십 년 전부터 독일 환경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 일반 환경운동 분야에서도 독일은 철저한 환경교육을 하고 있다고들 하시더군요. 실천적이며 섬세한 환경교육 사례를 들을 때마다 참 부러웠어요. 체르노빌 사건도 교훈이 되었겠지만 결국 탈핵운동도 일반적인 환경교육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잘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환경교육도 그렇게 잘 되고 있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탈핵 교육도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전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10년 20년, 일본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한국인들이 결코 방관만 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의 준비가 지금 철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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