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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음에 대한 특별한 준비
오! 이제 명상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이리 저리 흩어지는 산만함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놓지도 않고 통제하지도 않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초점을 맞추리라. 그리하여 창조 단계와 완성 단계를 확고하게 성취하리라. 이제 잡다한 생각과 행위를 포기하고, 한 점에 집중하는 명상 상태에 들리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탐착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여섯 중음계에 관한 기도[眞言], 쪽)
죽음과 삶의 영적인 목표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짐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앞에서 설명한 가정이나 직장을 비롯한 현실 생활에 초점을 맞춘 일반적인 준비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 전체를 바꾸기를 원한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삶 역시 중간계 과정이라고 여기고, 삶 전체를 바쳐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를 가속시키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불교 사회에서는 출가 수행자들인 비구와 비구니가 그들이다. 그들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일에 인생 전체를 바친 사람들이다.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집을 나왔으며, 음식과 의복도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에도 관심이 없다. 쉽게 말해 깨달음을 위해 이 세상 즐거움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서구 사회에는 그런 출가 수행자들을 받아들일 만한 시설이나 지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생 전체를 바쳐 깨달음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개인적으로 조성해야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티벳에는 수행을 4단계로 구분하는 전통이 있다. 1단계는 준비 단계로서, 깨달음에 대한 외적인 가르침을 받는다. 2단계에서는 스승과 깊은 관계를 맺고, 개인적으로 비밀스러운 수행법을 전수 받는다. 3단계는 창조 단계로서, 창조적인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능력을 키운다. 마지막 4단계는 완성 단계인데, 이 단계에서부터 실제적인 변형이 시작된다. 4단계에 이른 요가 수행자들은 죽음 과정을 미리 체험하는 수행을 한다.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에는 1단계와 2단계 수행에 대해서는 암시만 되어 있을 뿐 자세한 언급이 없다. 티벳 사람들이 그 두 단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전개시켰기 때문이다. 정교한 만다라를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훈련은 3단계 수행에 속한다. <명상을 통한 해탈>에 포함되어 있는 <본능의 해탈을 위한 다르마 수행>은 3단계(창조 단계) 수행에 대한 가르침이다(본서 7장에 완역해서 실었다. 지금까지는 이 문헌이 외국어로 번역된 일이 없다).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에는 4단계(완성 단계) 수행에 관한 자세한 언급도 없다.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에 포함된 중간계 과정에 대한 가르침 속에 간간이 삽입되어 있을 뿐이다( 쪽을 보라).
<명상을 통한 해탈> 문헌의 사정은 이렇지만, 티벳의 다른 밀교 전통 속에는 4가지 수행 단계에 대한 방대한 가르침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붓다의 비밀스러운 가르침에서 직접 유래되었다는 요가 탄트라 전통에 속하는 가르침이 제일 중요하다. 요가 탄트라는 죽음을 초월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 수행법은 파드마 삼바바 같은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이 발전시켰고, 그들이 티벳에 전해 주었다. 그들 탄트라 수행자들은 붓다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뭇 중생을 해탈로 인도하기 위해 계속 인간의 몸 속에 머물러 있던 성자들이었다. 이 책에서는 각 단계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단 중간계 여행을 위해 준비 가능한 항목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전체적인 얼거리를 잡도록 돕고자 한다.
1) 준비 단계 [예비 수행]
이 과정은 내적 차원의 요가 탄트라 수행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써, 불교의 외적인 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대부분의 티벳 불교는 준비 단계에서, 4종류의 예비 수행을 10만 번씩 도합 '40만번' 행할 것을 요구한다. 예비 수행에는 의례에 따라 행하는 부복[五體投地], 정화 기능이 있는 100음절로 된 바즈라사트바 만트라의 반복(바즈라사트바는 남성 형상으로 나타난 자애로운 붓다의 원형으로 탄트라를 전수할 때 이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존재 요소인 오대[地, 水, 火, 風, 空]를 상징하는 제물을 바치며 깨달은 존재들께 경배하는 제사, 3가지 보물[붓다, 진리, 공동체]에 대한 명상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예비 수행은 자신에게 맞는 특별한 수행법을 전수 받기 전에 행한다. 겔룩파의 경우에는 9종류의 예비 수행을 10만 번씩 행해야 한다는 규율이 있다. 그 안에는 은거, 부복, 정화수 바치기, 만다라 그리기, 진흙 불상 만들기, 바즈라사트바 만트라 반복하기, 서원 만트라 반복하기, 불을 바치는 제사, 3가지 보물에 대한 명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준비 단계에서 지켜야 하는 여러 가지 규범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小乘] 수행자의 자세와 중생을 구하겠다는[大乘] 자비심을 굳건히 하는 일이다. 티벳에서는 내적인 수행을 위한 준비 단계를 크게 3과정으로 분류해서 가르친다. 제 1과정은 세속의 포기, 제 2과정은 사랑과 자비의 정신 함양, 제 3과정은 '자기-없음'을 깨닫는 지혜 획득이다.
제 1과정은 개인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승 불교에서 강조하는 내용이고, 제 2과정은 보편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제 3과정은 소승과 대승을 막론하고,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문이며 열쇠다.
제 1과정의 포기는 자신의 존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 저절로 성취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냉혹하게 반복되는 윤회, 무지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을 직시하면서 인생 전체를 무한한 진화 가능성 측면에서 바라보는 명상은 포기하는 힘을 키워 준다. 자신의 존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 되면, 감정과 혼란에 휩쓸리는 습관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체계적인 포기 수행을 시작한 사람은 몸과 마음 전체를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기를 열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고, 위험한 중간계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수행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를 알고 추구하는 것의 방향을 바꾼다. 추구하는 것의 방향이 바뀌면, 그 동안 짓눌려 오던 허접 쓰레기 같은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제 2과정에서 추구하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이란, 삶이 이기적인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염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때 발산되는 활기찬 기운을 말한다.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길을 가는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생명력 넘치는 분위기가 곧 사랑이요 자비다.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편안하고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포기를 통해 참 자유와 평안한 쉼을 경험한 사람만이 이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과정의 시작 단계에서는 모든 중생들과 자신의 연관성에 대해 명상한다. 모든 중생을 차별 없이 대하고, 그들에 대한 친밀감을 키운다. 어머니가 젖먹이를 껴안는 심정으로 그들을 껴안고 애정을 듬뿍 쏟는다. 그들과 시작도 끝도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진화의 길을 함께 가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중생이 피붙이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수없는 생을 반복하면서 경험하는 괴로움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게 된다. 그대는 이미 포기를 통해 자유로움을 얻었다. 그들은 고통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신음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이때 발산되는 기운이 곧 사랑이요 자비다.
사랑과 자비의 힘을 키우는 명상은, 모든 중생을 자유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영웅적인 맹세로 끝맺는다.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열망이 확고한 결단으로 바뀌면,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우주적인 사랑과 자비의 힘이 분출한다. 그리하여 그대는 메시아적인 영웅 즉 보디사트바[菩薩]가 된다. 깨달음, 사랑, 자비는 오직 방향 설정과 결단에 달려 있다.
제 3과정에서 추구하는 지혜는 자유를 실제로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지혜는 주관과 객관의 '비어-있음'에 대한 체계적인 명상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주관의 '비어-있음'에 대한 명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나'라고 하는 어떤 고정 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에고다. 에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탐구해 보라. 에고에서 충동과 생각과 행위가 나온다. 그대는 그런 것들을 의심도 하지 않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당연한 일로 여긴다. 에고의 뿌리는 이렇게 깊다.
그러나 깊게 파고 들어가 근원을 찾아 보라. '나'라고 생각하는 그대가 진정으로 누구이며 또 무엇인지 탐구해 보라. 자아 탐구를 체계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수행법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그런 수행법의 도움을 받아 그대를 구성하고 있는 내적인 요소들을 분석해 보라. 몸과 마음과 감각을 낱낱이 조사해 보라. 감정과 사고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보라. 복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의식 그 자체를 조사해 보라. 이 일을 위해서는 먼저 집중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 보다 앞서서 자아 탐구의 길을 간 수많은 선배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남겨 놓은 단서와 방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아를 탐구하기 위해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는 강렬한 염원만 있으면 된다.
깊이 파고들어 가면 갈수록, '나'라고 하는 실체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실히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라는 존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런 느낌조차도 그대의 실체가 아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나 존재하지 않는 다는 느낌을 '나'라고 하는 에고의 생각이나 느낌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오류를 피하려면 지혜에 대한 가르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본능적인 그릇된 자기 동일시 철저하게 규명할 수 있다.
이 과정에 들어 선 수행자는 뭐가 뭔지 모르는 막연한 상태에서 한 동안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절대에 대한 느낌은 점차 침식하고 상대적인 연관성에 대한 감각이 살아난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인 구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객관적으로도 '비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더불어 다른 사람이나 외적인 대상 역시 객관적인 실체가 없는, 상대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관계의 그물은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다. 상대적이다. 따라서 유동적이며, 창조적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 모든 것이 상호 연관 속에서 조립된 일시적인 구조물이라면,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도록 애써야 한다. 상대성에 대한 깨달음은 수행자를 이런 결단의 자리로 인도한다. 모든 것이 변화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변형 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부정적인 환경으로 퇴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기쁨이 넘치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부정적인 가능성이 끼여들 자리가 없다.
이 과정의 명상은 깨달음이 현실 생활에 적용될 수 있을 때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이 단계는 중간계를 건너가는 특별한 탄트라 기법을 익히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자성(自性)을 갖고 있는 절대적인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임을 추론을 통해 인식한다. 다음에는 '비어-있다'는 말과 '상대적'이라는 말이 같은 뜻임을 알게 되고, 그러면 이 세계를 초월한 어떤 절대적인 공(空)을 찾지 않게 된다. 상대적인 세상을 무가치한 것으로 앝잡아 보는 태도도 사라진다.
그대는 이런 깨달음을 일상 생활에 이중적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첫째, 그대의 모든 주관적인 경험이 자성이나 실체가 없는 상대적인 것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확실한 경지로 들어가야 한다. 둘째, 그대가 경험하는 객관적인 대상 역시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인식이 확고해진 다음에는 점점 깊게 내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라고 하는 에고를 습관적으로 부각시키는 본능적인 무지를 '비어-있음'에 대한 인식으로 완전히 뒤집어 씌워야 한다. 에고와의 동일시를 제압하면 하는 만큼 더 자유로워진다.
명상은 실제로 '비어-있다'는 인식과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꼭 필요하다. 에고 의식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면, 깨달음을 심화시키고 자유를 확장하는 더 높은 차원의 수행법을 익히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다. 여러 생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이 생에서 끝내고야 말겠다. 이런 열정이 솟아오르면, 자연히 요가 탄트라에 입문하는 길을 찾게 된다. 그리하여 이승에서의 삶을 유동적인 중간계의 삶으로 여기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된 자신과 환경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창조 단계 수행에 들어간다. 또 내면 세계를 여행하는, 숙련된 정신세계 비행사가 되는 법을 배우는 완성 단계 수행에 들어간다.
요가 탄트라 수행자들은 변하지 않는 지혜를 추구한다. 이 지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일종의 선동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비어-있음'은 외적인 수행 단계에서 보나 내적인 수행 단계에서 보나 똑 같이 '비어-있음'이다. 다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적 단계의 수행에서는 깨달음에 가속이 붙는다. 수행법도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내적 단계의 수행자는 의식적으로 수없이 여러 번 죽고 다시 태어난다. 이런 수행을 통해 진화 과정이 압축된다. 그래서 한 생, 아니면 단 몇 생으로 완전한 해탈에 도달하고자 한다. 한 생에 여러 생을 압축하는 것, 한 번의 죽음에 여러 번의 죽음을 압축하는 것, 한 번의 중간계에 여러 번의 중간계 체험을 압축하는 것, 이것이 비밀스러운 탄트라 수행의 기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