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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의 티 펄프공장
루에스타에서 잠을 설치게 했던 코골이들이 얄궂게도 또 내 주변에 진을 쳤다.
미안해 할 줄 모르는 무례한 이탈리아노들.
전날 밤이 새벽까지 재연되었기 때문에 일찍 나섰다.
상게사를 벗어나려면 아라곤 강을 건너야 한다.
아라곤 강을 건너려면 4각철구조물(arches)이 육중한 철교 위를 걸어야 한다.
팜프로나와 아라곤 두 왕국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는 아라곤 강에 다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11c말에 다리를 놓았으나 대홍수 때마다 유실과 재건을 거듭하다가 19c말에
견고한 철교를 건설했단다.
현재의 다리다.
1889년에 국립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다는 산타 마리아 라 레알 교회
(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를 지나 철다리로 아라곤 강을 건넜다.
아라곤 강을 건넌 아라곤 길은 잠시 240번 도로를 따르다가 2개의 길로 갈린다.
상게사에서 2km 남짓 되며 오리지날 상게사인 야산마루의 로카포르테를 지나는 길과
리에데나(Liedena), 포스 데 룸비에르(foz de Lumbier)를 거쳐가는 북쪽 대체도로.
나는, 대다수가 선호한다는 전자를 택했다.
이 길을 택한 순례자는 로카포르테 마을에 오를 때 매캐한 냄새를 맡아야 한다.
마을 맞은 편에 있는 펄프공장이 퍼뜨리는 냄새다.
아라곤 길뿐 아니라 일부 공단지역 외의 야고보의 길에서 처음 보는 중형급 공장이다.
내가 꼽는 사도 야고보 길의 매력은 제일인 무차(無車) 다음으로 무공장(無工場)이다.
그러므로, 이 펄프공장이야 말로 옥의 티다.
신선한 공기 오염의 주범인 공장에 대해 민원이 있을 법 한데 왜 그런 흔적이 없을까.
이 지역민은 이 큰 공장의 공해를 대승적 아량으로 수용하고 있는가.
궁금했으나 늦잠꾸러기 나라의 이른 아침에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1960년까지도 200명 내외의 주민이 거주하던 마을이 지금(2011년INE) 43명으로 격감
되었다는데 공해와 관계된 것은 아닌지?
로카포르테 오르는 자갈길에 달팽이들이 몰려나와 진행을 불편하게 했다.
이즈음 가물어 굶주리고 있나.
마른 땅에 무슨 먹거리가 있다고 새벽같이 나와 혀를 내밀고 있을까.
우리나라 라면 약효가 뛰어나다는 저놈들을 길 한복판에서 어정거리게 놓아두겠는가.
하긴, 고라니도 경계심을 갖지 않고 고양이 마을에서 토끼가 활개치는 땅이니까.
요란떨지 않고 얌전히 떠오르는 아침해의 인사를 등에 받으며 로카포르테를 지났다.
다음은 로카포르테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며 마을의 휴식처라는 '산 프란시스코
샘'(Fuente de San Francisco)이다.
스페인 최초의 성 프란시스코회 수도원이었다는 곳이다.
애완동물의 출입까지 막으며 가꾼다면 이름에 알맞게 마실물도 관리해야지 '아구아 노
포타브레'(Agua no potable/음료 부적합)라니?
물을 많이 마시는 도보자들은 물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구간이다.
수도꼭지 마다 '부적합' 딱지가 붙어있으니까.
지루함을 주지 않는 농로와 목장길
멀리 일렬 횡대의 풍력발전기들을 바라보며 가는 아라곤 길은 신설 고속도로 지하도를
통해 알토 데 아이바르(Alto de Aibar)에 오른다.
정상(alto) 답게 시야에 거침이 없다.
피레네 산맥의 웅위에 압도당하며 걸어온 길을 어림해 보았다.
지도에 컴퍼스를 대고 이스코 산맥(Sierra de Izco)과 통과할 우라울 바호 계곡(Valle
de Urraul Bajo), 이바르고이티 계곡(Valle de Ibargoiti)도 살펴보았다.
한데, 신설 지하통로 벽이 왜 말짱할까.
지하도 뿐 아니라, 많지는 않으나 이 구간의 모든 벽들에는 낙서가 없다.
설마, 페인트가 없기 때문이겠는가.
낙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마을이 없으니 사람이 없나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을이 없는가.
아무튼, 모든 벽이 빈틈 없이 낙서로 도배돼 있는 것이 정상이고 정갈한 상태가 비정상
으로 인식된다면 적응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산 허리를 돌고 도는 농로와 목장길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최고봉인 해발784m 알토 데 로이티(Alto de Loiti)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도로와 합류한 아라곤 길은 종점인 오바노스까지 40여km.
한눈 팔아도 하루 반이면 족하여 마음이 여유로워졌나.
스페인 농사 걱정하며 걷고 있으니.
걷는데 지장이 있더라도 비가 와야겠다고.
그러나, 관개시설이 잘 돼 있는데 오지랖이 왜 그리 넓으냐고 비웃는 듯 알차게 영글고
있는 이바르고이티 계곡의 드넓은 밀밭은 거대한 골프장으로 착각될 만큼 장관이다.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라곤 지방에서는 누렇게 변해가던 들판이 나바라에
이르러 여전히 푸르름 그대로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북에서 남서로,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이동중인데도.
이바르고이티 지자체의 한 마을, 인구49명의 이스코 마을까지 18km에는 마을이 없다.
N-240도로와 평행하고 있지만 산(山)길이기 때문에 탈출도 용이하지 않은 구간이다.
이스코(Izco) 알베르게 앞마당 탁자에서 어제 만든 도시락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스탬프를 받는데 한 중년이 뒤를 이었다.
상게사에서 함께 묵었던 프랑스인 솔로(solo) 순례자다.
내 대학인 순례자여권의 셀 수 없는 스탬프를 본 그는 몇개 찍힌 자기의 여권 보이기가
민망한 듯 선망의 눈초리처럼 보였다.
프랑스 길에서 피스테라-묵시아 길, 포르투 길을 거쳐 왔다니까 절레절레 기겁을 했다.
마드리드 까지 걸어가 귀국 비행기를 탈 것이라는 말에 그가 친 손사레는 무슨 뜻일까.
눈에 선하게 다가오는 살리나스 데 이바르고이티의 두 꼬마
계속되는 넓은 직선 농로의 끝은 아빈사노(Abinzano).
주민 15명이 거주하는 이바르고이티 지자체의 작은 산간마을이다.
평균 경사도 20%가 넘는 양(羊) 목장 마을이다.
이동하던 무리에서 한 마리가 낙오되는데도 모른 척 그냥 가는 목부(?)가 괴이쩍었다.
무지한 나그네가 전문가의 속내를 어찌 알겠는가.
처진 양은 곧 해산했고 새끼는 어미의 핥음을 받는 듯 했는데 바로 비틀비틀 일어섰다.
이런 과정의 반복으로 금방 세식구 한가족이 되었다.
목부는 아마도 그러라고 내버려 둔 것이리라.
가축이라 해도 새끼는 비교적 좋은 환경의 우리 안에서 낳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늘 없는 농로가 완만한 내리막 길로 계속된다.
700m대에서 500m대로 떨어진 저지대의 깔끔하고 안정감을 주는 마을까지.
나바라 주의 지자체 이바르고이티에 속한 살리나스 데 이바르고이티(Salinas de Ibar
goiti)마을이다.
나바라의 팜프로나와 아라곤의 하카 사이 고속도로를 비롯해 여러 도로가 통과해 교통
요지라는 이점 덕인지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란다.
91명이었던 200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123명(2011년INE)이라니까.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무슨 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두 꼬마가 오디 한줌을 내보이며 걸음을 멈추게 했다.
먹으라는 줄로 생각되어 너희 먹으라고 했더니 황당하게도 1유로를 내고 사란다.
어데서 땄는지 먹고 싶으련만 먹지 않고 팔려는 아이들.
1유로가 왜 필요했을까.
유럽연합은 단일화폐 유로를 만들때 왜 5유로 미만은 동전으로 주조했을까.
지폐와 동전은 가치개념이 전혀 다르다.
5유로 지폐 1장의 무게에 비해 1유로 동전 5개는 매우 가볍다.
지폐는 지갑속에 고이 모시지만 동전은 하찮은 푼돈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2유로짜리 동전 밖에 없어서 2유로와 오디를 함께 주었으나 돈은 1유로만 받고 오디는
받지 않겠다는(팔았으니까) 아이들.
경우 바른 애어른인가 동심이 박제된 맹랑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인가.
아무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게 느껴졌다.
혹, 이베리아 반도인의 기질일까?
이런 아이들이 고이 자라 구성원이 되는 사회의 건전성이야 말로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카미노에서 뿐 아니라 문득문득 이 아이들이 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는 지금(2012년 9월) 지진상태다.
경제에 맹목인 영감이지만 길 걸으며 염려되었던 것은 나사풀린(느슨한) 그들의 일상
(日常)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였다.
견고한 둑이 해일 같은 거대한 힘에 의해서만 무너지는가.
쥐구멍이 붕괴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우산이 필요없는 가랑비에도 옷이 젖지 않는가.
귀한 시간과 돈을 헤프게 써온 결과 아닌가.
INF를 체험한 나라의 영감이기에 그들의 절제되지 않은 일상이 걱정되었을 텐데 결국
올 것이 왔는가.
아라고네스의 마지막 밤 몬레알
몬레알 까지 2km는 원시림 길에 다름 아니다.
남설악 점봉산의 진동계곡 ~ 곰배령 간의 원시림과 흡사하며 아라곤 길의 다른 구간을
포함해 어떤 사도 야고보 길과의 비교도 될 수 없는 최고의 길이다.
5리 길이 단숨에 없어졌다.
2km가 이처럼 짧게 느껴진 것도 이베리아 반도에서 최초인 길이다.
중세 다리를 통해 엘로르스 강(rio Elorz)을 건너면 몬레알(Monreal)이다.
엘로르스 강가와 이스코에서 아스라하게 보였던 1.288m 이가 산(Monte Higa) 자락에
위치한 인구 490명 안팎의 마을이며 나바라 주의 지자체중 하나다.
강가 저지대와 산밑 고지대에 분포된 마을이라 가파른 계단들을 오르내려야 한다.
초입부터 공동체 프로그램이 활성적인 마을이라는 인상이었는데 알베르게가 들어있는
고지대의 마을회관(?)에 주민의 내왕이 분주했다.
아뿔싸, 오늘(5월 22일)이 스페인 전역에서 시행되는 지방선거일이구나.
오후 3시쯤인데 벌써 10여명이 입실해 있는 알베르게.
상게사에서 28km쯤 되는 이 구간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1남 2녀다.
그중 앞서 간 이는 이스코 알베르게에서 만난 프랑스인 뿐인데 어찌된 일일까.
N-240도로가 상게사에서 이스코, 아빈사노, 살리나스 데 이바르고이티, 몬레알을 지나
간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답이 나온다.
카미노는 일품 산간길이지만 마을마다 대중버스와 택시 이용이 용이한 구간이다.
포르투 길에서 처럼 아라곤 길에서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다.
따라서 정신적으로는 연대적 부담감이 없어서 참 편했다.
한데, 놀랍게도 한국인의 지혜로운(?) 순례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니.
(피스테라 길 네그레이라 알베르게에서 만난 두 한국여인은 힘들 때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순례방식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메뉴'카미노 이야기' 토말
길 1회글 참조)
실은, 한국인의 지혜를 답습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구간종주자들처럼 2~
3일 단위로 구간순례하는 스페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착한 것이다.
저지대 바르에서 바가지 쓰고(페레그리노 메뉴,즉 순례자를 위한 저가식단이라는 이름
으로 골탕먹이는 악덕 상인들이 간혹 있다) 돌아왔을 때 알베르게가 거의 만원이었다.
침대(21)와 메트리스(7) 합해서 정원28명인 알베르게에는 낮에 만난 2녀와 이탈리아노
코골이들도 뒤늦게 도착했다.
연 3일째 그들과의 합숙이지만 아라곤 길 마지막 밤인데 시달린들 대미지(damage)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고백컨대 서양인들이 자꾸 거슬리기 시작한다.
카미노는 프랑스 길과 피스테라-묵시아 길, 포르투 길 등에 비하여 월등한데 반해 인근
유럽인 일색인 아라곤 길 위의 사람들은 무지한 촌뜨기가 대부분이라는 느낌이다.
남을 배려하기는 커녕 의식하지도 않고 제멋대로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고도 미안해 할 줄 모른다.
"이 무식한 촌놈들아"
이렇게 우리 말로 내뱉고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다니.
그들이 알아들었을 리 없는데도.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