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가보셨는지, 전남 보성에 위치한 '대한다업'이라는 차밭 말입니
다.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그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길이 나오
는 아름다운 농장이죠. 고개 하나 넘으면 율포 바다가 펼쳐져 있어 새벽
엔 해풍과 안개가 사람 넋을 빼놓을 지경의 아름다운 곳인데 지금 제 마
음은 온통 세작 채취가 한창일 차밭에 닿아 그 곳 창 넓은 찻집 근처를
하릴없이 배회합니다. 장정 서넛이 들어가도 공간이 헐렁하게 남아돌 거
대한 몸뚱이를 훌렁 뒤집고 물구나무 선 항아리 위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을 사월의 피폐한 흔적이 눈에 선하네요. 이 집안 대물림이었을 비대
한 장독과 젖몸살 앓다 서둘러 절명한 백목련 꽃 진자리라. 언젠가 보았
던 익숙한 광경이 퍽 쓸쓸하게 그려지는군요. 살면서 이러저러한 상념들
로 복잡하고 가라앉을 때면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사철 푸르기만 한 이
곳에 습관처럼 숨어들곤 하는데 올 봄엔 여기 머무는 횟수가 부쩍 잦았으
니 아무래도 이 봄이 제겐 무척 심란한 한철이었나 봅니다.
흔치 않은 봄 장마가 사월 내내 이어졌고 거실 모니터에선 뿌연 포연 속
에 갇혀 절규하는 이라크 아이들의 비명이 마치 테트리스 게임의 효과음
처럼 지속되었습니다. 꽃은 피는데, 나무마다 부르튼 목피 사이로 젖니
만한 연둣빛 새순을 곰실곰실 허공으로 밀어내고 있는데, 봄이라는데,
난데없이 출현한 전쟁이 이 모든 것들을 욕심 사납게 통째로 꿀꺽 삼켜버
린 것이죠.
사담 후세인 체포과 인명살상용 대량 파괴 무기를 반드시 찾아내 이라크
에 평화정부를 수립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부시는 이 둘 중 어느 하나도 이
루지 못한 채 결국 43일간의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이라크戰
에 미국 손을 들어준 나라와 끝까지 반전입장을 고수했던 나라와의 국가
간 갈등의 폭이 깊어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하튼 '다행' 히 전
쟁은 막을 내렸고 우리 상록수 부대원들은 파괴된 시설의 전후복구와 의
료팀에 투입되어져 이라크에 캠프를 설치했다는 소식입니다.
제가 방금 '다행'이라 했던가요? 내 아우나 조카, 혹은 아들이 포연 가
득한 이라크 전장에서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
겨 인명을 살상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만 생각하고 가슴 쓸어
내린 모양이로군요. 남이야 어찌되었든 우리만 무사하게 피할 수 있었으
니 '다행'이라는 식의 편협하고 옹졸한 소갈머리에 대해 깊이 반성합니
다. 저렇게 무수한 군인과 시민들이 봄꽃처럼 화르르 져버렸는데 '다
행'이라니, 그러고도 감히 詩를 쓴다니. 쯧쯧
파병을 반대하는 외침이 광화문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더니 급기야 여의
도 국회의사당 앞까지 확산되어지던, 여중생 추모와 반미의 촛불이 거대
한 반전 횃불로 불붙던 바로 그날, 저 또한 종묘공원의 반전시위에 가담
하고 녹초가 되어 귀가하던 길이었습니다. 심야버스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는 나 자신을 향해 무심코 이런 물음을 던져보았지요. '넌 왜 이 전쟁
을 반대하니?' 줄을 잇는 사상자와 복구 불가능한 문화재 파괴 그리고 세
계평화와 안녕 따위가 떠올랐지만 그건 너무 추상적이고 무책임한 대답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전쟁을 그토록 혐오하고 반대하게 만
드는 저항의 명분은 과연 무엇일까?
바스라港에 이어 바그다드 시내가 함락되어 성조기가 내걸렸다는 타이틀
로 조간신문이 수다스러워지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습관적으
로 TV 채널을 뉴스에 고정시키더군요. 거기 마침 전날 일간지에서 만난
적 있는 낯익은 소년이 화면에 누워 있었어요. 아, 저 녀석 알리. 열 네
살, 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가족과 함께 잠들었다가 미군 전투기의 무차별 미사일 폭격에 부모와
두 팔을 영영 잃어버린 소년, 의료진을 향해 "내 팔을 돌려주세요" 라고
사정하며 매달렸던 바로 그 아이의 겁에 질린 눈과 내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숨이 한동안 탁! 멎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해
답은 멀리 있지 않더군요. 한 소년이 꿈꿔오던 미래의 희망을 한 마디 예
고 없이 포악하게 빼앗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 아닐까요?
시위 마치고 갈비탕 국물에 소줏잔 비우며 그 어떤 '나쁜 평화'라도 가
장 '좋은 전쟁'보다 항상 옳았노라고 말하며 물수건으로 주름진 눈가의
물기를 황급히 찍어내던 시인이 떠오르네요.
학교와 집을 오가며 입시지옥에 눈자위 꺼져가는 내 아이도, 화면 속에
서 하염없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전생에 내 피붙이였을지도 모를
저 소년 알리도, 꽃 그늘 아래 기어들어 철없이 웃고 까부는 사월의 천진
한 연인들도 결국 저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예외
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사월 내내 나는 마음고생이 심했나봅니다.
저기 봄이 오고 있는데, 꽃이 피고 있는데, 햇살은 풀먹인 옥양목처럼
빳빳해져 다사로운데 정작 나는 가혹하게 내 안의 꽃들을, 태양을, 웃음
을, 계절을 지우며 살았다니. 茶園 입구 삼나무 숲길을 아직 서성이고 있
을 내 안의 나를 이제 그만 불러내 혹독한 전쟁의 후유증을 해독시킬 잘
우러난 우전 한잔 건넬 작정입니다. 전쟁이 끝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