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범] 복건성 보전현에는 임씨 집안이 있었다. 그들 조상 중에는 선을 행하기를 아주 좋아하는 할머니가 한분 계셨는데, 그 할머니는 항상 쌀가루를 반죽하여 경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누구든지 와서 달라고 하면 곧바로 내주면서, 조금도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한 신선이 도사의 모습을 하고서 날마다 아침이면 찾아와서 경단을 예닐곱 개씩 구걸 하였는데, 할머니는 날마다 같은 수로 주길 마침내 3년을 하루같이하자 신선은 그녀가 성심성의껏 선행을 하였음을 깨닫고 감동하여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의 경단을 3년 동안 먹었다. 그대에게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는가? 그대의 집 뒤에 한 자락의 땅이 있으니 죽은 후 이 땅에 묻히면 장차 관리가 되어 작위를 받는 자손이 한 됫박의 참깨처럼 많을것이다.
[요범]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녀의 아들은 신선이 점지해 준 곳에 어머니를 안장하였다. 안장한 후 임씨집안의 제1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아홉 명이나 되었고, 그 후로도 대대손손 높은 관직에 올라 유명한 자손이 대단히 많았다. 그래서 복건 지방에는 "임씨집안 사람들이 없으면 과거 합격자 발표도 할 수 없다."라는 풍문(한 고을에 널리 알려진 말)이 있다.
[풍태사의 부친은 경단을 한결같이 보시하였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부도(浮屠; 불탑)를 조성하는 것보다 낫다." 한기는 북송 인조 때 현명한 재상으로 범중范과 함께서북 국경의 요새를 지켜 「한范」이라 불렀다. 한기는 평생 선한행동, 선한 말을 많이 하여 자신의 전생이 스님이라고 기억하였다.
[요범] 풍탁암태사 역사 편찬기구인 국사관國史館일이 많아 한림원의 관리가 맡은 까닭에 한림원의 관리를 태사라부름)의 부친이 수재秀시험에 합격하여 현의 학교에 진학하였을 때의 일이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학교로 가던 길에 한 사람이 눈이 덮인 곳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손으로 짚어보니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풍 선생은 자신이 입고 있던 피포袍 안쪽에 모피를 댄 중국식 두루마기)를 벗어서 그 사람에게 입혀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와 생기가 돌아오도록 도왔다. 어느 날 저녁에 풍 선생의 꿈에서 신령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신령] 그대가 지성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였으니, 송나라 명신 한기를 그대의 집에 보내어 그대의 아들이 되도록 하겠다.
[요범] 마침내 탁암이 태어나니, 풍기馮라 이름지었다. (그는 송나라 때 문무를 두루 갖추어 어질고 재능이 있는 재상으로 한기韓琦라는 사람이 환생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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