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大力 友 會 84학번
84년은 激動의 時期였다.
우리사회 전체 변혁을 가져왔던 80년대 봄 이후 정말 다른 世代들이 학교에 들어오면서 民主化란 사회문화적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학내 외 분위기는 역도부에도 그대로 미쳐 1학년 신입부원은 불과 10명 내외로 출발하였으며 그것도 중도 탈락자들이 생기면서 현재 6-7명만이 꾸준히 모임을 가지며 그 命脈을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기수보다 끈끈한 동지애로 뭉쳐 서로를 위하고 역우회를 위해 힘껏 달려 왔다고 감히 자부해 본다.
84학번이 모든 입시, 교육 제도의 마지막 주자이자 항상 실험의 대상인 세대였던 것 같다
정권에 의해 總長이 강제로 바뀌고, 敎授들의 民主化 署名이 파장을 일으키고 마지막 學徒 護國團 世代, 바야흐로 總學生會가 새롭게 復活하면서1973년 폐지되었던 학생의 날을 1985년 11월 3일 다시 찾아오면서 80년 서울의 봄에 이어 실질적인 캠퍼스의 봄이 시작된 해였다
84학번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한 해에도 몇 차례씩 修業 拒否, 試險 拒否 등으로 點綴되었고 학교에는 그야말로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다행한 것은 당시 道場이 학교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하여 그런 분위기와는 좀 다른 정서와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했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학교에서는 體育 生活館 을 핑계로 도장은 强制移住(?)를 당했고 그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86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여러 선배님의 도움으로 운동 기구들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깔끔한 모습의 道場을 갖출 수 있었다.
‘84년 “힘의 美展”은 파격적으로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가 하면, 고대 합창부가 찬조 출연하는 등 새롭게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신입생 환영회, 장학금 전달, 여름 합숙훈련, 5월 대동제, 가을 힘의 미전, 정기 고연전 등등 당시 일반 학생은 상상이 잘 안가는 여러 활동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특히 매 행사때마다 빠짐없이 방문하여 聲援해 주시는 선배님들(당시 학교에서 양복 입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정도 분위기)의 후원은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역대로 연이어 主將을 배출하였고 70년사를 發刊하는 등 역우회 새로운 轉機의 디딤돌이 되었으며 이후 김수한 同期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여러 선후배님들로부터 귀여움(?)을 차지하는 84학번이 되었다.
뺀질이, 뽀식이, 삼식이, 양갈보, 깡패, 홍얄….그리고 진호, 성광이.효문이.
별명만큼이나 특이하고도 유별났던 84학번들
Mr고대를 두 번이나 먹었고, 主將을 연거푸 歷任한, 대천 합숙훈련 시절을 마감하고 雪嶽山 대청봉(당시 산행 도중 계곡에 빠진 등산객을 구했던 장한 일)을 넘어 낙산으로 합숙훈련을 떠난 최초 학번, 총학생회와 일전을 불사하면서 공수부(태권도부)와 전쟁아닌 전쟁을 치뤘던….
지금은 어엿한 社會人으로, 또다시 學窓時節 선배님들에게 받았던 보살핌을 이제는 자랑스런 후배들에게 베품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각자의 분야에서 살아가고 있다.
力道部 의 精神으로 力友會 의 돈독함으로, 代를 이은 力友人 으로 살아갈 것을 言約해보자
글쓴이: 84 강호연
첫댓글 가끔 후배들에게 선배님들께서 해주신 야사를 이야기하면 믿지 못하는 눈치였는데..이걸 발행하면 크나큰 센세이션이겠습니다.ㅋㅋ 너무 많이 축약하신듯..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