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울었다. 울지 않고는 이 글을 쓰지 못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난 기어코 울고 말았다.
큰 딸이 네 살 때였다. 퇴근을 하고 남편과 함께 방에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있었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의 비명 소리에 놀라 우리 부부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어머니가 커다란 솥에 펄펄 끓인 간장물을 식히고 계셨나 보다. 아이는 솥 안으로 빠졌고, 어머니는 아이를 건져내고 있었다.
가슴에서 '쿵'소리가 났다. 입고 있던 아이의 옷을 벗긴 후, 깨끗해 보이는 얇은 이불로 아이를 감싸안고 동네 작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원장님이었다. 아이 몸 전체를 소독하고 붕대로 꽁꽁 싸맸다. 마치 미라처럼.
원장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위험합니다.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아이를 안고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서울로 가라는 말에 우리는 바로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차 안에서 코로 스며드는 '국 간장' 냄새에 구토증이 났다. 그때의 기억때문에 나는 한 10년 정도 '국 간장' 냄새를 맡지 못했다.
아는 사람 중에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무작정 구로에 있는 고려대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병실이 없어 입원은 못한단다. 제발 살려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셨는지, 입원하기로 되어 있는 누군가가 갑자기 취소한다는 전화를 해서 바로 입원을 했다. 아이를 살펴보신 담당의가 또 한 번 내 가슴을 후려쳤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아이들은 신체의 3분의 1 이상이 화상을 입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화상 부위가 너무 넓어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세균 침투가 가장 무서운 것인데, 첫 병원에서 응급처치는 잘 한 것 같습니다."
한참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던 남편이 눈이 벌개서 들어왔다. 남편이 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우리 둘의 만남에서 결혼까지, 첫 아이의 탄생까지 우리에게는 늘 행복만이 있을 줄 알았다. 우리는 같은 마음이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 학교...'
난 학교에 출근을 해야하는 교사라는 생각이 버뜩났다. 떨리는 손으로 교잔선생님 댁에 전화를 걸었다.
"교장 선생님, 저...아이가 화상을 입었어요."
"심해요?"
"네, 많이 심해요."
"학교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아이 잘 돌보세요."
지금도 그분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도와주신 분이니까.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상처부위가 등허리와 다리 부분이었기 때문에 아이는 알몸으로 엎어져 반구 형태의 철재망 안에 누워있었다.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하는데,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뭔가 불편했다. 그건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었다. 끓인 간장을 아이가 놀고 있는 근처에 놓아 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 고통이 어머니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나는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인지라, 분명 어머니를 대하는 내 태도가 굳어 있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고 계실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병원생활 13일째 되던 날 아침, 퇴원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보다 치료가 빨리 되었다며.
그 이후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이는 건강하고 총명하게 잘 자라주었다. 두 동생을 잘 보살피는 맏이 역할도 제법 잘 하고, 세상을 향해 용기있게 발을 내딛을 줄 아는 멋진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엄마'였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호칭이다. 오죽하면 첫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매일 아이에게 편지를 썼을까. 일상의 이야기를 적어내려 가면서 '아가야, 엄마가 말야.'라는 말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동안 이런 저런 힘든 일을 많이 겪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이 자리는 가장 귀한 자리, 가장 감사해야 할 자리라는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내게 사랑을 심어주신 부모님처럼 그런 엄마로 남고 싶다는 꿈을.
첫댓글 여자는 평범하나 어머니는 위대하고, 여자는 여럿이나 어머니는 한 분 뿐이고, 여자는 울어야 할 때 울지만 어머니는 울어야 할 때도 웃어야 하고, 여자는 웃어야 할 때 웃지만 어머니는 웃어야 할 때도 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어느 글에선가 읽은 적 있는데 채수아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그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다행히 아드님이 건강하게 자라주었다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을 한껏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아들이 아이고 딸입니다. 아들은 둘째이고 막내는 또 딸이고..그렇습니다 ^^
저런! 제가 실수했군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글을 읽으며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떨리겠습니까. 다들 놀랐을 당시를 생각하니 저도 떨려옵니다.
이 글감을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지만,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용기를 내 보았네요.
아~~ 감동
감사합니다. 그런데 닉네임이 풀잎이 아니고 필잎이네요? 앞으로 크게 피어난다는 뜻인가요?
아픈 세월이 잘 지나고 지금 무사한 나날이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나날인지요. 엄마라는 말이 품고 있는 따뜻함과 정다움에 몸과 얼굴을 묻어 봅니다.
네, 감사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