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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힘 12장 ‘냉혹한 세상에도 나만의 길은 있다.
<<옛이야기의 힘>>은 그림동화에 대한 신동흔선생의 관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민담 속에 담긴 상징성을 어떻게 봐야하고 단순히 스토리로만 읽고 지나칠 게 아니라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12장을 그런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이번 장은 잘 안 읽힌다. 우선 각 동화에 대한 신동훈선생의 관점 위주로 정리해 봤다.
1. 그때도 지금도 도피는 방법이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
가난한 나무꾼 부부에게는 헨젤이라는 아들과 그레텔이라는 딸이 있었다. 너무 가난해 먹을 것조차 어려워지자 부부는 남매를 숲속에 버리기로 합니다. 부모의 대화를 엿들은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으로 갈 때 미리 준비해둔 조약돌을 군데군데 떨어뜨리고 갑니다. 숲속에 넘겨진 그들은 조약돌을 찾으면서 집에 돌아옵니다. 하지만 다시 남매는 숲속으로 가게 되고 이번에는 빵 조각을 떨어뜨리지만 새들이 쪼아 먹어 집으로 돌아 올 수 없게 됩니다.
(신동흔선생의 풀이)
여기서 버림은 물리적 형태보다 심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은 심리적 측면에서는 보편적인 진실일 수 있다. 실제로 자기 욕망이나 가치를 앞세우면서 자녀 양육의 책임을 회비하려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자식이 중요하지만 자기 안위가 걸리면 자기 자신에게 먼저 마음이 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즉 심리적 진실을 ‘아이들을 숲에 버리는 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버려지는 일로 풀이하고 있다.
숲속에 남게 된 남매는 길을 찾으려 밤낮으로 걷지만 결국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배고픔과 지침이 극에 달할 때 쯤 빵으로 만든 집을 만나게 됩니다.
(신동흔선생의 풀이)
숲에 던져진 상황은 힘겨운 방황이며,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수렁에 빠지면 점점 깊이 빠져드는 진실을 말하려 함.
그 집은 빵 뿐만 아니라 지붕은 과자로 유리창은 사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을 유혹하려고 지어놓은 마녀의 집이었습니다.
(신동흔선생의 풀이)
심리적으로 무너져있었다. 과자와 사탕을 뜯어먹는 행동은 자신을 옭아매는 빚이 될 것임을 그들은 전혀 몰랐다.
그들을 집에 잡아둔 마녀는 헨젤을 우리에 가두어놓고 살이 찌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헨젤을 잡아먹으려고 그레텔에게 물을 끓이게 합니다. 마녀는 그레텔을 빵 굽는 가마로 데려가 안에 들어가 잘 데워졌는지 보라고 하죠. 불이 타오르는 가마 속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아 구워먹으려구요. 그때 그레텔은 지혜를 발휘하여 마녀에게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 달라고 합니다. 마녀는 가마 안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보여주는데, 이때 그레텔은 마녀를 가마 안으로 힘껏 밀어 넣어 문을 닫아버렸고 마녀는 가마 안에서 타 죽고 맙니다. 남매는 마녀의 집에서 보석을 챙기고 길을 떠나는데, 큰 강물에 가로막혀 주저하고 있을 때 하얀 오리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게 됩니다. 한사람씩 오리 등에 타고 강을 건너 숲을 지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사이 계모는 죽었고, 남매는 아버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동흔선생의 풀이)
보석의 상징성을 적응력, 대항력, 또는 자립과 성장으로 읽었다.
마녀를 죽이는 모습에서 혹 도망만 가도 될 것 굳이 끔찍하게 죽일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동훈선생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의라고 말한다.
2. 정체절명의 순간에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1) 프랑스 민담 <푸른수염>, 페로의 동화
부유한 남자가 있었다. 외모가 흉하고 무시무시한 푸른색 수염을 지니고 있어서 여자들은 그를 보면 달아났다. 이 남자는 이미 여러 번 결혼했는데, 그 부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웃집에는 두 명의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푸른 수염은 그녀들의 어머니에게 두 딸 중 한 명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두 딸은 그와 결혼하지 않으려 했다. 남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고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그러자 작은 딸이 마음이 변해 그와 결혼하기로 한다. 어느 날 남자는 6주 동안 지방을 다녀와야 하는데, 모든 방의 열쇠를 주면서 아래층 끝 작은 방은 절대 열면 안 된다고 엄포를 하고 떠난다. 하지만 작은 딸은 그 방이 궁금해 열쇠로 작은 방문을 열었다. 그방의 바닥은 끈적한 피로 덮여 있었고, 벽에는 남자와 결혼했던 여자들의 시체가 걸려 있었다. 무서움에 손에 들고 있었던 열쇠를 피가 묻어 있는 방에 떨어뜨렸고 열쇠에 묻은 피는 닦을 수 없었다. 푸른수염의 남자는 열쇠를 보고 여자가 방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고 여자를 죽이려 하였다. 다만 죽기 전 기도할 10분의 시간을 주었다. 그 시간 동안 여자는 언니를 부르고, 오늘 집을 방문하기로 한 오빠들이 보이면 빨리 오게 해달라고 한다. 10분이 지나고 푸른수염은 여자를 죽이려고 칼을 쳐든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칼을 든 기사 둘이 달려둔다. 아내의 오빠들이었다. 그들은 푸른 수염을 붙잡고 칼로 찔러 죽였다.
여자는 푸른 수염의 재산을 모두 갖게 되었고, 그 돈으로 언니가 귀족청년과 결혼하는데, 오빠들이 장교가 되는데 썼다. 그리고 본인이 선량한 사람과 결혼하는데 썼다.
(신동흔선생의 관점)
경망스런 즐거움을 찾다간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화려한 삶에 대한 유혹에 이끌려 판단력을 잃은 것도 원인이다. 의아한 점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문제해결 과정 중 푸른 수염을 물리치는데 오빠들이 집에 오기로 했다거나,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집에 도착한 것이나, 둘 다 힘센 기사였다는 것 등이 공교롭게도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보이는데 이는 페로의 다른 동화처럼 내용이 각색되어진 게 아닐까 의심한다.
*페로 민담
17세기까지 프랑스에서는 귀족 어린이들의 유모였던 농촌 아낙네들을 매개로 하여 농부들의 민담이 마담 돌노아 Madame d'Aulnoy나 마담 뮈라 Madame Murat와 같은 살롱의 귀부인들에게 애호되던 요정담으로 변모 발전하게 되었다. 페로는 이 프랑스 구전민담에서 채록한 이야기를 세련된 귀족취향에 맞도록 어조를 바꾸어 살롱에 적응시켰다. 이것이 페로의 민담집 {옛날이야기와 교훈 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 avec des moralits} (1697년) 이다.
2) <너덜네의 새>, 그림동화
푸른 수염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
마법사는 불쌍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구걸을 다니면서 예쁜 소녀들을 잡아갔다. 그리고 잡혀간 소녀들은 어느 누구도 돌아온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딸이 셋 있는 집 앞에 나타났다. 그의 불쌍한 모습을 본 큰 딸은 빵을 주려고 살짝 마법사와 스쳤을 뿐인데 마법사의 광주리 속으로 들어갔고, 마법사가 살고 있는 숲속 집으로 가게 된다. 마법사의 숲속 집은 화려했다. 그리고 큰 딸을 귀염둥이라 부르면서 원하는 것을 다 해주었다. 어느 날 길을 떠나며 열쇠꾸러미를 큰 딸에게 주면서 다른 방문은 열어도 되지만 작은 열쇠로 열리는 방만은 열지 말하고 한다. 거기 들어가면 죽이겠다고 한다. 또 달걀을 주면서 잃어버리면 불행해질 거라 하면서 몸에 잘 간직하라고 한다. 마법사가 집을 떠난 후 집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큰 딸은 작은 열쇠 방이 궁금해져서 열어보게 됩니다. 방에는 피가 가득한 큰 통이 있고, 그 속엔 토막난 시체가 들어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달걀을 통에 빠뜨렸는데 피 자국이 지워지지 않네요. 집으로 돌아온 마법사는 그 사실을 알고 큰 딸을 토막 내어 통 속에 집어넣습니다. 이후 둘째 딸도, 막내딸도 잡혀옵니다. 하지만 막내딸은 언니들과는 달리 달걀을 보관해두고 금지된 방에 들어가 봅니다. 토막 난 언니들의 조각을 맞추자 두 사람은 살아났고, 그들은 기뻐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마법사는 막내딸의 행동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시험에 합격했으니 신부로 맞겠다’고 합니다. 결혼식이 다가오자 막내딸은 마법사에게 자기가 집에서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부모님에게 갖다 오라고 합니다. 금이 가득 담긴 광주리를 들고. 그 광주리에는 두 언니가 숨어 있었습니다. 막내딸은 언니들에게 집에 도착하면 도와줄 사람들을 보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언니들은 막내가 시킨 대로 마법사가 광주리가 무거워 내려놓으려면 광주리에 속에서 ‘내가 창에서 다 보고 있으니 쉬지 말고 곧바로 가라’고 막내 목소리로 흉내를 내면서 마법사를 쉬지도 못하게 했고 부모님 집에 도착한 이후에야 광주리를 내려놓게 합니다. 그동안 막내딸은 마법사의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멀리서 창문을 보면 사람인 줄 착각하게 해골을 사람처럼 치장하고, 본인은 괴상한 새처럼 변장하여 길을 나섭니다. 막내딸이 괴상한 하얀 새로 변장한 줄을 모르는 마법사의 친구와 신랑에게 신부가 집안을 청소하고 창문을 내다보고 있다고 속였고,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자 문을 잠그고 집에 불을 질러 마법사와 그 친구들은 모두 불타 죽고 맙니다.
(신동흔선생의 관점)
언니의 죽음은 실제가 아니라 상징이다.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극도의 공포로 무너진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막내처럼 이성을 냉철하게 지키는 데 성공한 사람이 그들의 조각난 이성을 되찾아 준 것이다. <푸른 수염>과 달리 세 명의 딸은 선의를 베풀다 마법사의 집으로 납치된 경우이다. 막내딸의 활약과 살아난 언니들의 협력이 보여주듯이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세우려면 세상 사람들이 함께 나서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민담이라 한다.
3. 어떤 촛불은 세상을 바꾼다.
1) <늑대와 일곱 마리 새끼 염소>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민담 중 하나라고 합니다. 어미 염소가 일곱 마리 새끼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미 염소는 숲으로 먹이를 구하러 가면서 새끼 염소들에게 “늑대를 조심해라. 너희들을 잡아먹을 거야. 그들은 변장도 잘하지만 목소리와 발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새끼 염소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어미 염소에게 말했고, 안심하고 어미 염소는 먹이를 구하러 숲으로 갑니다. 여러 가지 위험에 대해 말해주고,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늑대의 속임에 넘어가 일곱 마리 새끼 염소들은 늑대에게 잡혀 먹힙니다. 다행히 막내는 잘 숨어 늑대의 눈을 피해 잡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 염소는 사태를 파악하고 엄청나게 울고 난 후 막내를 데리고 늑대를 찾아 나섭니다. 늑대는 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었고, 배가 꿈틀대는 것을 보고 아직 아기 염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엄마 염소는 늑대의 배를 가르고 새끼 염소 여섯 마리를 끄집어내어 살립니다. 대신 늑대의 뱃속에 돌덩이를 집어넣어 꿰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잠에서 깨어난 늑대는 물을 마시러 샘물에 가서 몸을 기울이다 물속으로 빠져 죽고 맙니다.
(신동흔선생의 관점)
새끼 염소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은 죽음 같은 절망을 상징하고, 막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상황을 작은 희망의 끈으로 보았다.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놓지 않고 온 힘을 다하면 죽음은 다시 삶이 될 수 있다. 어미염소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중요하게 보았다. 저항과 정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를 최고의 이야기로 여길 것이라 한다.
2) <코르베스 씨>
어린 암탉과 수탉이 코르베스 씨를 만나러 여행을 떠납니다. 여기에 작은 쥐 네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 작은 멧돌, 달걀, 오리, 핀과 바늘이 수레를 타고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코르베스씨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없었고, 각자는 자기가 있고 싶은 곳에 가서 쉬고 있었습니다. 코르베스 씨가 집에 도착했는데, 그의 모든 행동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고 코르베스 씨를 난처하게 만들다 화가 나게 만들었고 마침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마지막 대사가 의미심장한데요. ‘코르베스 씨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나 봅니다.’로 끝을 맺음으로 그들의 행동이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동흔선생의 관점)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폭력적인 존재와의 싸움은 서로 힘을 합쳐 즐겁고 씩씩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촛불’의 저항을 예로 들면서 강자에 맞서는 싸움은 무겁거나 처절하지 않고 가벼운 쪽이고, 당연한 일처럼 즐겁게 움직일 때 더 큰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냉혹한 세상에도 나만의 길은 있다-그때도 지금도 도피는 방법이 아니다-절체 절명의 순간에도 침착하고 차분하게-어떤 촛불은 세상을 바꾼다.
12장의 제목을 뽑아봤다. 신동훈선생이 말하고 싶은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한 삶이 태도는 적극적으로 그러나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면, 비록 작은 촛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로 정리된다. 2018년 촛불혁명을 기억한다. 나라가 제대로 되기를 바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촛불 같은 마음이 모여 정권을 재창출했던 시간들을. 하지만 촛불을 여기에 빗대는 것은 다소 비약이 있어 보여 수긍하기 어려웠다. 그림형제는 1837ᄔᅧᆫ ‘괴팅겐 7교수 사건’의 멤버로써 당시 국왕의 독단적이 헌법 개정에 항의를 했던 주역이라고 한다. ‘그들의 용감한 실천의 밑바탕에는 오랜 세월 동안 입으로 이러져온 빛나는 옛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p.399) 이 글 역시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이. 이상하게 이번 장의 선생의 글은 도약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이야기해보고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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