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성동구청 기독신우회
상반기 설교 리뷰
기간: 1월 3일 ~ 5월 8일
전체 15편
설교 일자: 2024년 5월 29일
설교 제목: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https://youtu.be/WV4oylhwAYU?si=YBln-XjOSRM7uuId
설교 본문: 누가복음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5월의 마지막 수요예배 시간에 금년도 성동구청 기독신우회 예배에서 설교한 내용을 요약해 봅니다. 지난 다섯 달 동안 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서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입니까? 저는 금년 첫번째 설교에서 저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정리한 다섯 가지 호칭은 제가 생각하는 예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구원자시고, 후견인, 그리고 삶의 목적, 롤 모델, 만물의 통치자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저의 생각을 그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예수 그리스도와 나, 1/3).
그 후로 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소개했습니다. 기독교는 사실 그리스도교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데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했으므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그리스도시며 온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네가 그리스도냐? 1/10).
여기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면 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길래 그런 걸까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나요? 우리는 그 동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한 내용을 복습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지금 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진영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자제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진영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성경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배경 이야기, 1/24).
예수님에 대한 평가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설교 중에 박진영 씨의 가르침에 대한 저의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공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찬반의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박진영 씨가 예수님을 소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기도 합니다.
배경 이야기에 따라 예수님은 우리를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다리가 되시기도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여 이 세상으로 보내시는 모델이 되시기도 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의미도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냐 아니면 이 세상에서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냐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를 때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할 때 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세상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2/7).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은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할 제물을 의미합니다. 그 제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므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물론 우리 죄가 용서되겠지요.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2/14):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저는 전에 지금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을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좀더 배워보니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는 사람,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른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베드로전서 1:9,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2/14).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받으셔서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빛나는 삶을 가리켜 구원받았다고 하며 영화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그저 영화롭게 되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올라갈 때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도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정신을 미련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십자가의 가르침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십자가야말로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고 그들의 위선과 허약을 드러낸다고 확신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곧 승리의 길이라고 사도 바울은 확신했습니다(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 3/6).
사실 십자가의 길이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잘 나타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그렇게 섬기고 나누며 베푸는 삶은 세상에 복이 되는 삶입니다. 그런 사람과 백성이 되라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일어났고 세상 나라들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교회라고 부릅니다(이방의 빛, 이스라엘의 영광, 3/13).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세우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신 그 예언은 예수님과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과 경륜에 동참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십자가, 아브라함의 복을 여는 열쇠, 3/13).
저는 부활절에 이런 일에 대하여 묵상하며 기도하다가 이것은 생명의 도미노라고 깨달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과 22절을 보면 이 생명의 도미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생명의 도미노, 3/17).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섬기는 삶을 통해서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봅니다(빌립보서 2장,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4/3).
이 땅에 십자가의 정신을 따르는 공동체가 있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정반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깨우침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교회 안에서 역사하실 때, 그 성령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교회에게 생각나게 하실 때, 교회의 언행은 세상에게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이 누구신지 보여줄 것이며, 이 세상 사람들을 속이던 임금이 쫓겨났음을 분명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에 당당히 맞서 진실을 따라 사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실천하는 교회를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는 법, 4/17).
저는 4월말 설교 중에 영화 ‘반지의 제왕’을 언급했습니다. 성경이 마치 그렇게 대서사시와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이야기를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 이야기는 하늘과 땅의 이야기이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 펼쳐지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서 있는 사람은 정말 중요합니다(하나님의 경륜, 4/24).
사실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며 이 땅에 자리잡은 하나님의 집이며 처소입니다. 그곳이 에덴동산이며, 성막과 성전, 그리고 시온산과 예루살렘, 그리고 교회입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이며,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각 사람이 있는 그곳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펼쳐 나가는 사람들입니다(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서, 5/1).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뜻인데 예언자 미가는 그것을 세가지로 요약하여, 진실과 자비, 그리고 겸손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미가 6:8). 저는 5월 첫 주에 하나님의 경륜이 땅을 위한 것이며,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그리고 이 땅을 번영으로 인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것을 ESG경영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하나님의 경륜과 ESG경영, 5/8).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사는 환경(Environment)에 임하는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Social) 구성원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약육강식이나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을 지배구조(Governance)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오늘 우리가 외치는 ESG경영이 실현되는 세상입니다. 그 멋진 나라를 우리가 꼭 죽은 후에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