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존재 목적에 충실하다.
다만 가장 사랑을 많이 받으며 지어진 인간만이 그 목적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존재 목적을 다른 말로 표현하여 사명(使命)이라고 한다.
사명이라는 말을 한자로 '부릴 사'에 '목숨 명'으로 쓴다.
즉 누군가로부터 이 세상에 명령을 받고(행20:24)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신자가 되기 전까지는 모른다.
우리는 어쩌다가 태어나서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명을 띠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사명을 깨달을 때 인생의 의미가 달라진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이 다하기까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진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참 사명을 알지 못하고 '그림자 사명'에 붙들려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다 저마다 교회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한 마디씩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참된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만드신 분에게 여쭈어 보아야 한다.
교회는 사람이 만든 기관이 아니다.
주께서 친히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대개의 경우 그 이름에 그 사명이 표현되어 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에클레시아(Ecclesia)는 "에크 + 클레오"의 합성어이다.
에크란 영어의 'From'이고 클레오는 'Call'이다.
즉 무엇으로부터 불러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즉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실 때에는 그만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첫째, 교회로 부르실 때 하나님께 예배드리라는 사명이 있다.
둘째,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는 사명이 있다.
셋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라는 사명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넷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사명이 있다.
주님을 떠나서 세상만을 계속 따라가며 살면 죽게 되기에 거기에서 우리를 먼저 나오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죽음에서 건져 주시려는 것이다.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내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 무엇이 가장 최우선의 사명일까?
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으나 다음의 원리를 따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수술하는 외과의사라면 어느 환자를 먼저 돌볼 것인가?
지금 즉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환자인가 아니면 성형수술을 받아 더 예뻐지려는 환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 자신의 건강을 더 증진시키기 위한 수술인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첫째, 책에 기록된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영원한 운명이 다 같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누군가가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그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무궁무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교회의 최우선 사명이 불신 영혼을 전도하는 일임을
분명히 가르쳐주셨다(마28:18-20, 행 1:8).
불신자를 구원하자.
허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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