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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치고 리장을 떠나 따리로 향한다. 여행 중 차 안에서 거의 잠을 자지 않는 편이지만 그 동안의 강행군이 피곤했는지 버스에 오르자 잠이 쏟아진다. 버스가 정차하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휴게소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해 본 중국의 휴게소는 말이 휴게소지 변변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1元을 내고 들어가는 유료화장실의 잠금장치도 없고, 청결상태도 엉망이라 어디다 일을 봐야 할지 모르겠고,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선 물이 제대로 나오는 게 별로 없다. 먹거리를 파는 곳은 파리가 득실거리고 물건을 파는 상점은 어두워 물건을 제대로 고르기 조차 어렵다. 중국인들은 늘 이런 곳에서 생활하니 별로 못 느끼겠지만 중국이 선진국 대열에 오르려면 휴게소 문화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게소에서 언준이가 내게 그 동안 여행한 나라가 어디어디냐고 묻기에 대답을 해 줬더니 책에서 읽은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마치 자기가 가 본 것처럼 재미있게 한참을 이야기한다. 기특하기도 해 계속 맞장구 쳐 줬더니 프랑스 이야기로 넘어간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참 대견하다. 이 녀석! 지금까지 지켜보니 무척 똑똑하고 영특해 잘 키우면 나라의 동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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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비가 내리는 산길을 달려 따리 북쪽 저우청(周城)마을 금화찰염(金花扎染)이란 염색 집에 도착한다. 허름한 백족 민가 마당에는 염색한 천들이 널려 있고 봉당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염색할 천을 손질하느라 바쁘고 대청마루에선 금방 돌이 지난 사내아이를 시아버지가 돌보고 있다. 우리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젊은 아기 엄마가 염색하는 요령을 설명한다. 주로 자연염료를 이용해 홀치기 방법으로 염색을 하는데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려면 수십 번의 염색과 건조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한 달 이상 걸린단다. 일행들 중 여자 분들은 관심이 있는지 만져보고 물어보고 하지만 난 지루하기만 하다. 아이에게 풍선을 불어 줘도 너무 어려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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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에게 이야기하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러 나간다. 골목에는 작은 패방처럼 생긴 낡은 문과 흙 담에 흰색으로 칠한 후 그 위에 風花雪月 중 하나를 그린 담장이 돋보이는 백족 전통가옥들이 즐비하고 농삿일을 마치고 등 바구니에 풀이나 채소를 담아 귀가하는 노인의 얼굴엔 힘든 인생역정이 보인다. 길거리에 세워 둔 삼륜차엔 지저분한 광고가 더덕더덕 붙어있고 경운기를 개조해 만든 트럭은 경사가 급하지도 않은 마을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는데 뭔지 모르지만 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놀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마을 가게 앞에선 노인들이 장기판을 벌이다 싸움이 났는지 장기판을 집어 던진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아주머니들은 2층 판매장에서 염색 천을 고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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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묶었던 따리 亦利樂 객잔에 도착하니 주인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한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그 동안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운전하느라 고생한 버스기사가 맥주를 사 우리에게 준다.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내일이면 헤어질 텐데 그 동안 정도 들었고 배려해 줘 고맙다는 의미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다녔어도 팁을 받는 기사는 있어도 손님들에게 맥주나 음료를 대접하는 기사는 보지 못했는데 참으로 정이 많고 고마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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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따리고성으로 간다. 남문을 지나 오화루를 거쳐 따리 천주교회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다. 오후 8시 반, 컴컴한 밤에 방문하는 관광객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문 옆 경비실에 근무 중인 남자에게 정군이 양해를 구하자 교회로 들어가는 철문의 자물쇠을 열어 준다. 교회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었지만 어둠 속에 카메라 불빛에 비치는 교회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보는 천주교건물이 아닌 중국식 전각과 비슷하다. 교회로 들어가는 우측 흰 담 벽에는 “大理文化財”란 표시가 붙어 있다. 교회 앞에서 최작가가 “보통 천주교의 사목(신부, 주교, 대주교 등)은 로마교황청에서 임명하고 로마교황청의 강력하고 획일적인 통제에 따르지만 중국 천주교는 중국내에서 임명하고 중국내 천주교의 통제에 따르기 때문에 로마교황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 교회는 약 90년 된 것으로 프랑스 신부가 지었는데 요즘도 6~70명의 신자가 모여 미사를 본다.”라고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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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 관람을 마친 일행들은 보이차를 사러 간다. 오화루로 다시 나와 고성 곳곳을 흐르는 어느 개천을 따라 올라간다. 개천 주변으로는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고 길 양 옆으로 기념품 상가와 술집들이 즐비하다. 비교적 값이 싸고 믿을 만하다고 최 작가가 소개한 보이차 판매점으로 일행들은 들어가 보이차 시음을 한다. 집에 있는 보이차도 잘 마시지 않는 나이기에 관심이 없어 보이차 가게 앞에서 아이들과 논다. 6살 동갑인 진영이와 언민이는 가게 앞을 흐르는 개울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노는데 개울에 빠질까 걱정스럽다. 아무리 조심시켜도 노는데 정신이 팔린 이 녀석들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울음소리에 뒤돌아보니 언민이 녀석이 물에 빠져 생쥐 꼴이다. 물에서 건져 언민 엄마에게 보내고 나는 일행들과 헤어져 고성구경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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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과 주말을 즐기는 따리 시민들로 북적이는 거리 양쪽엔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데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들로 어지럽다. 양런지에(洋人街)에 이르니 악세사리를 파는 노점들이 작은 불빛에 의지해 물건을 진열해 놓고 있고 거리에서 불꽃 쇼를 하는 외국인들도 보인다. 카페와 서양식 레스토랑이 집중된 양런지에 중심광장 주변으로는 다른 거리보다 서양인들이 많이 보이고 “벚꽃마을”이란 한글 간판도 보인다. “벚꽃마을”이란 카페는 아마 리장에서 사쿠라 카페로 성공한 한국인이 낸 체인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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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으로 돌아오는 길가엔 大理王府가 보인다. 석조계단 위 붉은색 기둥을 바치고 서 있는 대리왕부의 문은 조명을 받아 화려해 보이나 어디서도 고풍스런 미를 찾아 볼 수 없다. 계단을 올라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회랑으로 연결된 2층 목조건물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온통 붉은색 천지다. 대리국 왕부를 복원했다면 이 밤엔 불이 꺼진 체 정적에 잠들어 있어야 할텐데 방마다 불이 켜져 있다.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은 말만 대리왕부지 실제로는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글쎄다! 호텔이란 상업자본이 대리국 왕부까지 팔아 영업을 하는 건 대리국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싶다. 돈이 되면 역사와 조상까지 팔아야 하나? 한족자본이라면 하나의 중국을 목 놓아 외치는 한족 위주의 중국정부에서는 나시족의 옛 나라이니 상관없단 말인가?
따리고성 밤 산책을 마치고 늦은 시간이지만 꼬치를 파는 노점에서 이번 여행을 함께한 분들과 여행 결산을 겸한 맥주파티를 한다. 공정여행 경험이 있는 김선생님께서 내몽골 여행 사후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을 마친 후에도 가끔 모일 수 있는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해 진영아빠를 총무로 선출하고 10월에 모이기로 한다. 이번 공정여행에서 느낀 일행들의 이야기로 따리의 밤은 깊어만 간다. 내일 새벽 4시에 이곳을 떠나 쿤밍공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행 끝 무렵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8박 9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아쉽다. 휴가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작년 라오스에서도 이번에도 비와 함께한 나날들로 보다 즐겁고 다양한 경험에 제약을 받은 것이 아쉽지만 소수민족들과 함께 어울린 많은 추억들은 내 일상 속 추억의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잔잔한 웃음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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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윈난을 다녀오며 영혼이 맑아진 느낌으로 한동안 살수 있을 줄 알았는뎅...
일에 치이며 몸도 맘도 스트레스 만빵되어 갈 즈음
이재순 선생님의 글을 보며 다시금 조금은 회복되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진정한 이야기꾼 최작가님의 목소리를 다시 듯 구석구석 설명을 겸해 주셔서 더욱 감사해요^^
나는 이재순 아내 입니다. 가족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 이 장문의 글들을 읽어 주시느냐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느낌이 있는 인간들의 영혼을 체험하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이 그대로 펼쳐진 그곳들.. 노래는 그들 영혼의목소리요 눈빛또한 그들 영혼의 모습이었습니다.그때는 느낄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눈부시게 아름다워 설레게 하는 이 가을빛 만큼이나 소중하고 생생하게 같은 느낌으로 다가 오는것은 인간과 자연의 꾸밈없는 모습들이기 때문 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며..우리의 베이직? 은 무엇이여야 우리가 꿈꾸는 성을 완성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저는 그성을 완성할 수 있을것 같은 벽돌을 한장 주어온듯 합니다.
이재순 선생님! 마음을 담아 여행하는 선생님의 후기를 보며 다시 한번 윈난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모든 후기는 사진을 제외한 글만 따와 출처를 밝히고 공정여행 공식블로그로 퍼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