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철학원 김용석입니다.
오늘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일이 있어서 나가보니 주말이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고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팔자가 사는 동네에는 큰 교회가 여러군데 있는데 그 교회가 다시 짓게된 건물들이 여러채가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있고 서있는지 정말로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는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종교라는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에 해당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지 않게 난관에 부딛히게되고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로써의 존재감에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은 뒤의 삶이 궁금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번쯤은 종교라는것를 신앙시여기고 다녀볼까? 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나라는 지금 종교춘추전국시대라고 할만큼 수많은 종교와 단체들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왜 기독교가 특히 더 성행하고 발달하게 되었을까요? 정말 그들이 말하는 신의 은총이나 하나님이
대한민국에만 일어나는 축복일까요?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래전 기독교적 신앙을 가진 유럽이나 서구권에서는 이미 천주교나 기독교계통이 약화되고 사라지게 되어서
성당조차 이제는 임대를 하고 사라지는 형국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행을 하고 있는것에는 대한민국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한민국은 옛날부터 그리고 참으로 힘든시절을 보내면서 느끼는 사안들은 나를 구원해주는 절대자를
원할정도로 힘들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기적이라는 말이 일어나는 만큼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난 상황에서 불과 수십년사이에 이렇게
발전한것에는 얼마나 국민들이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유튜브를 검색하여 한국의 역사를 불과 100여년을 조금 지나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고통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먹고 사는것도 해결이 안되어서 오죽하면 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면 소원이 없을정도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이러한 와중에 무속이나 불교라는 종교는 인과론과 그리고 윤회론과 조상론을 근거로 이렇게 살고 나아가는것은
모두 전생과 그리고 인과론이라는 교리를 통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틀린 사상도 아니며 그 당시에는 모두 해당되는 사안일수도 있고 그리고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들이 유교와
더불어서 제사를 지내고 나아가서 신앙시 여기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흔적들이 아직도 절에 가거나 불교적 사찰과 연관된 산에 가보면 수많은 미륵불로 이루어진 돌로 만든
부처님들과 그리고 보살님을 보면서 예전부터 우리의 조상들도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을것이라 봅니다.
천년이상의 석상이나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조상님들은 무엇을 빌고 그리고 기도를 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와 그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하지만 엄청난 고통을 겪는 시대를 지나고 대한민국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국치를 경험하게되고 전쟁이라는
비극을 견디어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인과나 윤회라는 개념이 이제는 더 이상 받아들이는 시대가 아니라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벗어날수 있는 절대자나 구세주를 원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편안히 앉아서 도를 닦거나 불교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수행을 하기에는 집이 무너졌고 삶이 흔들리는
와중에 누군가가 이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고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어서 천국이라는
편안한 삶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무의식도 일어나게 되었을겁니다.
늘 인간들은 그래왔습니다. 원시시대부터 무서운 동물들을 피하고 사냥을 하면서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쉬면서 내일의 식량을 걱정하고 그리고 자연의 기후현상의 변화막측한 현상의
두려움을 보면서 ....
인간은 神이라는 글자를 탄생시키고 모든 만물을 관장하는 절대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경배를 하는
그러한 의식들은 그대로 유전자로 내려와 이제는 더욱 발전되어 그러한 신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중간의 구원자인 구세주가 필요했을것입니다, 신성한 존재를 만난다는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독교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구세주이고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예언자로 틀을 만들고
증산도나 대순진리회에서는 상제님이 하강을 하고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보필하는 각종 보살들이 출현한것도 모두 비슷한 맥락들이 이렇게
각나라의 특성과 관습상 나타나는것이라 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참으로 불안한 존재들이고 누군가를 기대고 의지를 할 만큼 절대적 존재가 필요했을것입니다.
당연히 종교적 가르침이나 기성종교에서의 계명이나 계율들이 사회에서의 법칙과 충돌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 종교인들이라는 하나의 울타리도 사회구성원상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다고 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연인들이 종교적 갈등을 일으키거나 집안이 서로가 종교가 달라서 갈등이 있거나
부부간에 마음적 고생을 하는 경우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종교가 지나쳐서 나타나는 무지함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종교생활을 하고 신앙을 믿고 대상에게 의지를 하는것도 사실은 지금 현실에서 조금 더 살고 편안하고
즐겁게 살기위함인데 그것때문에 싸우는 웃지못할 현상이 일어나는것 역시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과 그리고 절대적 구세주 사상에 의하여 본인들만 믿는 종교가 진리라고만 받아들이는
어리석음 때문일것입니다.
가끔 여러분들의 의식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우주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구를 벗어나 이제는 화성을 향해서 가고
있는 인간들 그리고 태양계를 넘어서 은하계를
보면 거대한 은하계역시 수천개 아니 수십만개의 은하계가 있다는 은하군을 마주하게 되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더 큰 우주를 보면서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거대한 우주의
질서속에 내가 믿는 신이나 절대자는 과연 이러한 우주를 창조했다면 개미보다 못한 나를
알아나 볼까요?
수많은 행성의 구세주들이 모두 같을까요? 아니 이제 천국이라는 행성을 만들어 볼까요?
그곳에서 기성종교인들만 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간이라는 사람의 마음속의 근본자리에는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종자의 씨앗이 있어서
분별심과 여러생각을 만들고 창조를 한다고 깨달음을 얻은 선학들이 말을 하였듯이
모든 종교의 근본과 그리고 주인과 기준은 본인 스스로의 마음이라는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어느날 불교를 열심히 다니다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전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둘이 아니며
마음은 늘 연기와 같고 아지랭이와 같고 인연에 의하여 변하는 기운이라는것을 알아차릴때
그제서야 당신은 종교에서 그리고 구세주적인 교리를 벗어나 훨씬 더 자유로워 질것입니다.
일산에서 김용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