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두 번째 서신의 목적은 “이는 가만히 들어온 몇이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어온 사람
가만히 들어온 사람은 헬라어로“파레이스뒤노pareisduno”인데 “대개 사람을 가리키는 속격을 취하며 그 사람에게서 무엇이 나옴을 말할 때 ~에게서, ~에게로부터”을 뜻하는“파라para”와 “~안으로, ~안에”을 뜻하는“에이스eis”와 “가라앉다 의 연장 형으로, 지다”을 뜻하는“뒤노du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몰래 들어오다, 살금살금 들어오다, 가만히 들어오다, 알지 못하게 들어오다”을 말한다(유1:4) 이런 자들의 특성은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처럼 슬그머니 말씀을 섞어 말하는 것이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또는 주님을 시험할 때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그러나 슬쩍 말씀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거짓 형제들은 그들의 행하는 일을 “가만히”행하였는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하게 몰래 즉 비밀히, 위장한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슬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침투 하여 구원받은 자들을 미혹하고 그들의 거짓 가르침을 퍼뜨린다.
바울은 가만히 들러온 거짓 형제(갈2:4), 베드로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생(벧후2:1)을 조심하라 했다. 유다서는 베드로후서와 비슷한 구절이 많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주재”는 헬라어로“데스포테스desmotes”인데 이 말은“묶다, 매다, 동이다”을 뜻하는“데오deo”에서 유래한 것으로“주인, 소유자
①(배의 소유주), 주인(딤후2:21, 딤전6:1,2, 딛2:9, 벧전2:18),
②(하나님), 주재(눅2:29), 대 주재(행4:24), 하나님(계6:10),
③(하나님, 예수), 집주인(눅13:25), 주(벧후2:1), 주 하나님, 주 예수(유4)을 말한다.
유다서와 베드로후서 2장과 병행구절
유다서 | 베드로후서 2장 |
구절 | 말씀 | 구절 | 말씀 |
4 | 가만히 들어온 사람 | 1~3 |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오는 자 |
7 |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 | 6 | 소돔과 고모라 성 죄악과 멸망 |
8 | 영광을 비방하는 자 | 10 |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 하는 자 |
9 | 천사 장 미가엘 | 11 |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 |
10 | 짐승 같은 사람 | 12 |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 |
16 | 정욕대로 행하며 아첨하는 자 | 18 | 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하는 자 |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이다”
이들은 옛적부터 이러한 판결을 받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오해하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받을 자들로 미리 정하셨다고 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성경은 결코 심판을 받도록 미리 선택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하나님을 배도하는 자들의 멸망이 이미 오래 전부터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교훈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키는 교통 법규를 생각할 수 있다. 교통 법규는 자동차나 사람의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하고 시민의 질서와 안녕을 위하여 미리 제정한 법이다.
이것은 어떤 특정인에게 불가항력적으로 피할 수 없도록 미리 예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미리 정한 법규를 범하면 심판을 받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법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배도하는 자들을 심판 하시는 하나님의 법도 그 법을 지키지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옛적부터 미리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흠정역에는“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번역되어 있다.
개역개정 원문에는“하나님”이 없지만 흠정에는 들어 있다. 이 말은 우리 주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주 하나님이 이신 것을 말한다. 그 칭호를 추가한 흠정역의 표현이 적절할 수 있다“홀로”가 그것을 지지 해준다. - 햇불 주석자 맥쉐인-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심판받을 사악한 삼중적 행동들”
① 경건하지 아니하다.
②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꾼다.
③ 유일하신 주 하나님을 부인한다.
“경건하지 아니하다”
경건하지 아니하다는 헬라어로“아세베스asebes”인데“경배하다, 예배하다, 공경하다”을 뜻하는“세바조마이sebazomai”의 추정된 파생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신을 믿지 않는, 불경건한, 신심이 없는, 사악한”사람을 말한다.
경건한 삶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한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멀다. 시편 4:3에서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를 택하셨는데 그것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 백성의 경건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이다.“떨며 범죄지 말지어다.”(시4:4)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범죄(범죄는 경건을 범하는 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 할지어다”(시4:5)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경건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정의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를 항상 의뢰하는 것이 경건의 두 번째 조건이다.
경건의 의미는 신약에 와서도 변함이 없음을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 알 수 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경건은 자녀 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인격이다.
그러한 경건은 우선 사회적으로 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심'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시편 4편의 정의의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삶이 바로 정결한 경건의 삶의 첫 번째 조건이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경건의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세속'이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보다 돈, 섹스,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는 것들이다. 그리고 구약 시편 말씀과 함께 보면 어떻게 하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수행하듯이 자기를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여호와를 의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선지자 미가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중한 바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 즉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방탕한 것으로 바꾼 자”
방탕은 헬라어로“아셀게이아aselgeia”인데“방탕, 음란, 방종, 주색”을 말한다. 음탕( 막7:22), 음란(롬13:13, 벧전4:3, 벧후2:18), 방탕(엡4:19),색욕(유1:4)을 말하며 자기의 삶을 더러운 방탕에 버린 자들을 말한다.
“주를 부인하는 자”
부인하는 자는 헬라어로“아르네오마이arneomai”인데 “흐르다, 말하다, 지시 하다”을 뜻하는“레오rheo”중간 태에서 유래한 것으로“거절하다, 꺼리다”을 말한다. 그들은 주님의 대언의 말씀들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