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11○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2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지금 어느 교회에서는 500명의 교인중에 400명이 새벽기도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들의 기도의 내용의 주제는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 제일목적이라고 합니다. 부흥회를 통하여 기도하면 자식이 잘된다고 하였고, 그리고 헌금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몇일씩 기도하라고 부흥회를 하는 여전도사가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천번제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열심히 새벽기도 금식기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성경적인 신앙의 모습이라고 불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 조상의 어머니들이 자식이 잘되기만 한다면 한 겨울에도 정한수 떠다 놓고서 얼마나 빌고 또 빌었습니까? 그러니 자식 잘되는 것은 곧 자기의 집안이 잘되는 것인데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한 욕구와 바램이라는 불씨가 사람들안에 다 들어 있는데 거기에다가 부흥회를 하면서 기름을 부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불이 붙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욕망의 불씨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당장 그러면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목사님을 기도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이 새벽기도회에 별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전에는 기도하면 자녀들이 잘된다고 할 때는 억지로라도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특별기도회를 한다면서 도장을 찍는다고 할 때는 거의다 새벽기도회에 나왔다면서요? 그런데 왜 요즈음은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재미가 없지요! 기도란 나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 기도로 알고 있었는데 성경에서 보니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이 세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니 이런 기도를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말씀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기도는 하기 싫고 잠이나 자자는 것 아닙니까? 혹시 새벽에 잠이 깨어도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잠언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가난과 궁핍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단지 물질적인 가난만을 말하고 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믿음에 부요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기도는 하기 싫은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십시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하여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줄을 잘 모르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의 기도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오늘은 바울사도의 기도를 보고자 합니다.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서 모든 기쁨으로 기쁘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을 봅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한다고 합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 보기를 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가서 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단이 막고 있음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간절히 주야로 기도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 믿음의 부족을 온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부요를 위하여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보면서 정말 주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주야로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것들입니까? 없어질 것들입니까? 과연 믿음에 부요하기를 주야로 간구하고 계십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집안일을 하든지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간에 믿음에 부요하여 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바울사도의 기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부요하여 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봅니다. 기도를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는"이라고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께만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도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로 가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냥 가려한다고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바울이 얼마나 원하였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를 보면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하리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고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내뜻과 내 주장과 고집을 앞세워 놓고서는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장과 뜻들이 과연 주님의 마음에 합한 것인가를 생각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데사로니가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하는 것은 사사로운 볼일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부요하게 하기 위한 걸음입니다만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거야 그러니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된다 그런 것은 없는 것입니다. 범사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뢸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서 아룁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기도응답이 잘됩니까 하는 방법론 차원으로 보면 안됩니다. 이미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모든 일에 대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주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보기를 원하는 것도 자기가 보고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12절에서 성도의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사도가 데사로니가 성도를 사랑한 것처럼 성도끼리 사랑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간의 사랑이 풍성하여지고 넘쳐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서도 사랑이 풍성하여 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근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랑을 받은 그 사랑을 받았기에 데사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을 받은 자들은 또한 서로 사랑하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까지 사랑이 풍성하여 넘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서도 이러한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을 알아갈수록 성도들안에 사랑이 풍성하고 넘쳐나기를 기도합시다. 그저 모이면 아이들 교육문제, 결혼문제, 장래문제 이러한 말들보다는 서로 말씀으로 위로하고 말씀으로 세워가는 그러한 사랑이 풍성하여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풍성하여 지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근거를 바울의 다른 기도에서 찾아 보고자 합니다.
에베소서1:15-23절을 봅니다.
15○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4)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 말씀은 오래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만 요약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적인 어떤 잘됨이라든다 땅에것들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헤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눈을 밝히사 소망 무엇인지, 성도가 받을 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인지, 그의 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어떻게 베풀어 졌는지를 알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에베소서 3:14-21절을 봅니다.
14○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도 바울사도는 성도가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속사람이 강건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로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내 마음에 주가 되어 있고 예수님은 우리의 시중이나 드는 그러한 분으로서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하길싫고 귀찮은 일이나, 어렵고 힘드는 일을 떠 넘기는 식의 기도는 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자신이 깨어지고 부수어 져야 하는 문제를 기도하였다고 떠 넘겨 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여전히 나는 그대로입니다. 이것은 나 기도했다는 것으로 핑계되고 자신은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역시 그리스도가주가 아니라 자신이 주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주로 계시게 하시기를 간구하면서 우리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만히 알아감으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입었기에 모든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바울사도의 기도입니다.
끝으로, 13절에서 성도의 사랑이 풍성하여 짐으로 너희 마음을 굳게 하고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때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앞에서 흠이 없게 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향한 바울사도의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강림하실때에, 재림하실때에 흠이 없이 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흠이 없이 나타나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랑되신 예수 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예 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어진 의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옷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들어가지 않도록 깨끗하게 입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신랑이 주신것만 챙겨서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지저분한 것들은 천국에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하여져서 예수 그리스 다시오실때에 기쁨으로 맞이 할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광과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 19:6-8, 22:14절을 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세마포옷을 입고 나가야 합니다. 의의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옷을 빠는자가 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