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대해(須彌大海)
중국 야사에, 마지막 왕조인 청(淸)의 강희제는 그의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여러 신하들과 궁인들이 가득한 자금성 할머니(太皇太后) 위로잔치 무대에서 춤까지 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조상님의 이야기로 육순이 된 나라의 정승이 팔순이 넘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어릴 때 모습으로 돌아가 온갖 재롱을 부려, 잠시나마 노부모를 위하여 어릴 때 모습으로 돌아가 온갖 재롱을 부려, 잠시나마 노부모를 위안해 드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과 등이 서늘하도록 숙연함을 느낀다.
2000년 1월 인도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미 내 나이 오십이 다 된 어른이었는데도 체면불고하고 훌쩍훌쩍 소리내어 운 적이 있다. 차안의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마침내 꺼이꺼이 흐느끼며 울었다. 도대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흑흑 흐느끼다니, 이 무슨 망녕이람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것이 나의 서러움을 달래기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오는 소나기 같은 눈물을 도저히 주체하거나 멈출 수가 없었다.
귀국한 후 다시 그때를 생각한 적이 있다.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스님 앞에 서면 언제나 어린아이일 뿐이고 응석받이 철부지이고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스님께 물어서 하고, 스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하여 스님께 칭찬 받고 싶다. 내 기분이 우울한 때나 내 육신이 고달파도 스님이 바라보아 주면 다시 생기가 솟아나고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나는 다음 생에 스님을 다시 만나 모시게 될 때, 스님 앞에서는 헛된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그 어떤 일에도 내 주장이나 고집을 갖지 않으며 참으로 내가 없는 텅 빈 경지에서 스님을 모시고 섬길 것이다. 원하건대 스님 앞에서는 철저히 아(我)가 없고 싶다. 그리하여 청황제 강희제처럼 춤도 출 것이고, 우리의 정승처럼 재롱도 불릴 것이다.
스님께 올리는 나의 서원은 견고하기가 저 수미산 같고, 스님을 모시고 이루는 보리도는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고 싶다. 그렇다고 상(相)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원이 견고하고 높기가 수미산과 같고, 넓고 크기가 저 바다 같음을 발원하는 다짐인 것이다. 그런 한량없는 마음으로 스님을 모시거나 가까이 있고 싶은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아쉬움이 커야 큰 서원도 생기는 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스님께 저지른 불효의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임을 나는 나를 되돌아보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세상에 스님 만나서 모실 방침을 미리 정하고 준비하여 매일매일 다짐하고 잊지 않기를 이렇게 서원한다.
「나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따라 사상(四相)을 말끔히 소탕하여 내 마음을 깨끗이 한 뒤 지계청엄(持戒淸嚴)하신 스님을 무조건 따를 것이고, 신심 깊고 바른 안목을 갖춘 스님을 그대로 따라 배워서 기어이 무상보리를 성취할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안락한 반야의 배인가! 험한 바다 높은 파도를 단숨에 건너다니.
아, 이 얼마나 튼튼한 행원의 품인가! 어둠 덮인 광야, 무서운 공포를 순식간에 떨치다니.」
이것은 스님의 고준(孤峻)한 자비를 본받고 스님의 태고절(太孤絶)한 지혜를 힘들이지 않고 고스란히 양도받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스님과 나 둘이 있으면 어느 곳이나 그대로 향엄도량(香嚴道場)의 눈부신 보살국토가 되게 할 것이고, 향수해(香水海) 드넓은 부처의 바다가 되게 할 것을 다짐하며 일으킨 서원이다.
이렇게 다짐하며 거듭 나의 간절한 서원과 도솔산 찬가를 스님께 두 손으로 바쳐 올린다.
도솔산 가을은
따뜻한 햇살 단풍에 안기고
나무 그림자 사이 웅크린 새끼 토끼
귀 세워 어미 찾는데
뒷다리 힘 오른 어미 토끼
어디를 그리도 뻔질나게 나다니나.
도솔산 가을은
내 생명 떡잎 위에
부처님 자비의 태양을 받아서
끝없이 너울치고 파도치는
광휘의 파노라마.
아, 오색의 파동
단풍 물결이여!
광덕스님 시봉일기 3 구국구세의 횃불. 글 송암지원. 도서출판 도피안사
첫댓글 큰스님을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가장 큰 효도는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스님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날입니다. 오늘도 밝은 마음 이웃들과 함께 하는 나날이 되기를...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말로만 사모하고 남 보는 데서만 사모하면 그건 사모가 아니겠지요? 보문님 말씀대로,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 스승님이 못다한 일들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겠지요.
진정한 사모함은요, 온 몸이 불타오릅지요. 행주좌와 어묵동정 순간순간 찰나찰나에, 조금도 스승님을, 그리고 스승님이 가신 길을 잊지 않습지요.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이 스승님과 똑같아질때, 그리고 스승님마저 넘어설 때, 진정한 사모함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운 이 있으면, 우리 스스로 그 그리운 이가 되어가야 합지요...
송암스님이 이런저런 비판(?)을 받는 건, 말로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사모함이지, 그 뒤에는 내 욕심이 숨어있거든요..._()_
말이 진정한 행동으로 나오는 날!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 닮아가나 봅니다. 공경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_()()()_
.._()()()_
감사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