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부 단비
유월의 오랜 가뭄이 끝나고 반가운 비가 내렸다. 때는 유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먼지가 폴폴나는 밭에 콩심는 구덩이를 팔 때 습기가 별로 없었다. 그 후 이십일이나 가물더니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말을 실감했었다. 50미리라는 반가운 비가 내렸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다는 말이 그런 말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꾼은 밖으로 뛰쳐 나갔다.
<와아 비가 내린다.>
밭 전체에 하얀 빗줄기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호밀짚이 바싹 마른 곳에서 일부 습을 받은 콩들은 꽤 자라 있었지만 아직도 땅 속에서 잠자고 있는 녀석들이 더 많았다. 우산도 없이 실성한 놈 모양 밭을 쏘다녔다. 5월 20일쯤 호밀을 두 번째로 잘라준 이후 40일 정도를 비 한방울 오지 않았었다. 호밀의 생장력이 강하여 베어내면 일주일이면 다시 밭을 덮는다고 했는데 한번 베어냈다고 다시 움을 내지 않은 것은 호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비 한 방울 주지 않은 하늘의 잘못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꾼이 심은 콩이 싹을 내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것이 물이다. 어떤 모양의 그릇에도 담기고 어떤 조건이라도 낮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흐를 수 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물에 무슨 힘이 있냐고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세상에서 강도가 센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것이 물칼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물에 압력을 주어 미세한 구멍으로 초점을 주어 발사하면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칼이 된다고 한다. 물은 수증기도 아니고 얼음도 아닌 액체로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상태일 때 땅에서 나는 모든 동식물들을 살리는 힘의 원천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진리를 꾼이 태어나기 이전에 원시인 때부터 발견된 것이겠지만 자신이 발견한 것인양 즐거워했다.
“밥도 안 드시고 어딜 다녀와요. 완전 생쥐꼴이네.”
“가뭄 끝에 단비라 드라이브 갔었지.”
“완전 물에서 건진 생쥐로군요. 얼른 씻고 아침 드시고 출근하세요.”
낭만이라고는 전혀 없는 여인, 아내가 이지적이라면 꾼은 감성적인 것에 가까웠다. 아내는 옳다고 믿으면 그것을 어떤 일이 있어도 향하여 달려가는데 반해 꾼은 한번 좌절하면 포기하고 다른 목표를 달려가는 변덕쟁이였다. 일을 하다가도 누가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면 그 좋은 방법으로 금방 바꾸어 버렸다.
반가운 단비를 내린 후 나흘이 지난 토요일이었다.
보름에 한번 오는 즐토라 아침 일찍 나갔더니 어쩌다 이미 싹튼 것들은 이파리를 많이 벌리고 있었고 안 나왔던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콩들의 머리가 보였다. 어떤 것은 갈라져 잎을 내고 있었고 어떤 것은 땅을 쪼개며 힘차게 밀어올리는 중이었다. 물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십일 간이나 땅 속에서 잠자던 콩을 한번의 빗줄기로 콩을 바깥으로 나가게 하도록 힘을 실어준 것은 물이었다.
<완전히 중머리네. 흐아>
갈라지지 않은 콩머리를 본 꾼은 그것들이 마치 중머리와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히야 하아 호오
꾼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밭 가장자리로 갈 즈음 뽑힌 콩들이 보였다.
<이 녀석들>
어찌 알고 왔을까? 콩파종을 아주 일찍 하던가, 늦게 하면 비둘기 피해가 적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이 7월 초순이라 이제 싹이 난 것은 늦게 심은 것이 분명할 텐데 녀석들이 어찌 알고 덤볐는가 말이다.
비둘기는 꾼의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분명했다.
새가 먹이를 찾는 원리는 똑똑한 시력으로 찾는 방법과 냄새로 감별한다고 했다. 독수리나 매같이 좋은 시력을 가질 수 없는 비둘기가 먹이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냄새감지일 것이다. 세상에서 냄새를 가장 잘 맡는 동물은 견공이라고 한다. 범인이나 마약수색작전에 견공들을 자주 투입된다고 했다.
그러나 냄새에 민감한 짐승은 야생짐승일 것이고 비둘기가 1등일 것이다. 녀석들은 비행하다가 멀리서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를 맡고 바로 출동하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땅위에 있는 것들은 물론이고 땅속에 묻힌 참깨까지 용케 알고 파먹었다. 땅속에 묻힌 씨앗의 냄새까지 공중에서 알아차린다고 보면 개보다 더 뛰어난 후각능력일 터였다. 다만 개처럼 훈련학습을 못하기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수색작전에 사용하는 동물중에서 제외된 것일 뿐이라 생각했다.
<냄새교란>
그렇다. 꾼이 밭에서 비둘기를 쫓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작전은 냄새교란 밖에 없었다.
<맛있는 콩싹 냄새를 다른 냄새와 섞어 실어보내자. 이왕이면 야생짐승들이 싫어하는 불탄 냄새가 제일 좋겠지. 숲 화재현장에서 사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들이 야생동물이라니까.>
꾼은 분무기에 물을 담아 목초액을 물에 풀었다. 냄새가 매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냄새 잘 하는 이가 옆에 있었다면 벌써 줄행랑을 놓았을 테지만 냄새에 둔감한 꾼이 심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복이라 생각했다.
A카페에서 공동구매 목초액을 사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A카페가 농사꾼들에게 수수료를 노골적으로 받아챙기는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간혹 가다가 좋은 일도 했다. 한 말에 만 이천원하는 목초액을 두 말이나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오백배액으로 물에 탄다고 보면 한 말에 40씨씨가 들어가기 때문에 4만씨씨를 샀기에 몇 년을 쓰고도 남을 분량이었다. 두 말 중에서 반 말은 자리공과 마늘을 썰어서 살충제용으로 쟁여두고 나머지로도 오랫동안 쓸 것이다.
엔진분무기의 시동줄을 잡아당기니 단번에 부웅 소리와 함께 엔진소리가 경쾌했다.
고요에 싸여있던 벌판에 온갖 풀들과 나무들이 깜짝 놀라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멀리서 콩싹을 쪼고 있던 비둘기들이 푸드득 날아 올랐다.
<느희들이 맛있는 콩싹냄새를 찾아 왔다만 불탄 냄새도 맡아보거라.>
드로틀 밸브를 올리고 잠금밸브를 열자 쏴아하고 하얀 물줄기가 분사되어 햇빛에 영롱한 무지개 빛깔이 선명하게 주위를 감쌌다.
일단 밭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마지막에 올 때는 돌무더기 부분에 집중투하했다. 비온 다음날에는 차가운 몸을 데우려고 돌무더기에 모여 드는 녀석들을 쫓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뒤꿈치를 물라고 창조된 미물이지만 본시 그들은 깨끗한 동물이다. 주위가 불결하거나 냄새가 심한 곳은 찾질 않았고 먹이도 팔팔하게 살아있는 개구리나 쥐를 먹었기에 녀석들을 퇴치하는데는 독먹이로는 어찌할 수가 없고 심한 냄새 아니면 저주파 소음인데 냄새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다.
돌무더기에 냄새폭탄을 집중투하한 꾼은 이번에는 밭 안으로 들어가 마음 가는대로 다녔다. 갈 지자로도 가보고 지그재그로도 가 보았다. 어차피 밭안에 모조리 뿌려야 할 필요성이 없으니 통에 목초액이 남아 있겠다, 멋대로 다니며 뿌렸다.
67부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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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농부한테는 자연이 하는일이 젤 고맙고 무섭고 그렇치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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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연을 잘 가꾸고 보살피고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변덕쟁이 꾼
둘다 감성적이면 집안이 어찌 되겠어요. 하나는 반대가 좋은거에요.천생연분.
서로 반대라야 연분이 맞는 거군요.
그런데 취미까지 달라 놓으니 함께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 애로가 많아요. 농사가 공동취미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
서정남님도 그리 사시는군요. 부부가 함께 텃밭에 다니시길래 천생연분이라고 부러워했지요.
우리집은 아내가 티비 드라마 엄청 좋아하고 전 책읽고 글쓰고 하면서 티비를 전혀 안봐요,
영화를 심히 좋아하는데 심야시간대에 편성되니 티비와 아내와 저는 어울릴 수 없는 사이죠. 한 이불 덮고 자는 게 공동취미랄까? ㅋㅋㅋ
저도 책보고, 공연보고,![낚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5.gif)
하고, 농사짓고 , 나들이가고 ,드라이브가고 그런거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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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신랑도 여기까지는 나랑 같고요.
안맞는건 스포츠와 탤레비보는거/
전 스포츠는 하는것도 보는것도 다 싫어해요.탤레비는 전 몇개빼고 잘 안보는데
울 신랑은 장르를 안가리고 다
제가 탤레비박사라고 이름 붙여주었을정도.../
그래서 제가 밖으로 나가자고 맨날 조르지요.
그러고 보니 안맞는게 그리 많은편이 아니네요.
천생연분 부부되심을 감축드립니다.
우리 집 부부도 연분이 맞군요.
꾼은 언제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못된 습성을 갖고 있지요. 작은 걸 찾아야 하는게 행복인데 그게 참 어려워요. 서정남님 좋은 밤 되십시오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어디에선가 약국에서 파는 크레졸이 냄새많이 나서 비둘기 꿩이 아니온다 하여서 조금을 콩에 묻혀서 밭에 두었더니 금새 바닥이 났더군요.
새가 집어먹었다는 말인가요? 크레졸도 역한 냄새를 풍기는 소독약이지요.
그 해에 고라니 쫓느라 크레졸과 엘산유제를 반반씩 섞어서 병에 넣어 매달았던 적이 있습니다. 부부대전 이야기 끝내고 그 고라니 이야기도 진행할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