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뒷마당 데크에 쳐둔 텐트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다. 텐트 안에 있는 살림이라곤 베개, 이불 그리고 새우깡 한 봉이 전부다. 물론 텐트 안에 깃드는 새소리, 바람 소리, 꽃향기는 보이지 않는 살림이다. 거기에 비라도 내리면 빗소리라는 살림까지 더해져 텐트 안은 더욱더 아늑해진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오늘 밤은 일찌감치 텐트로 나왔다. 한국에 살 때 남편과 난 산을 참 좋아했었다. 우리가 정식으로 했던 첫 데이트가 아마 도봉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곤 치악산, 지리산, 설악산 등 점점 큰 산으로 옮겨가며 데이트를 했다. 지고 다니는 텐트가 너무 무거워 가벼운 텐트를 사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둘이 돈을 모아 20만원을 주고 좋은 텐트를 샀을 때 우린 정말 기뻤었다. 아마 그 2인용 텐트가 우리가 처음 마련한 집이 아니었을까? 그 텐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꿈과 미래를 이야기했고, 그러다 결혼을 했다.
그렇게 결혼해 처음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지대가 높은 달동네 전세방이었다. 그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한쪽은 빠른 길이지만 아주 가팔라 산으로 치면 꼭 계곡 같았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완만한 능선 같은 길이었다. 우리는 항상 양손에 든 짐의 무게에 따라 능선을 탈지, 계곡을 탈지 선택해 올랐다. 그렇게 오르다 지치면 잠시 멈춰 옆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이 정도만 낮게 살아도 좋겠다. 그지?”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며 오르다 보면 깃발 꽂고 브이를 그려도 될 만한 곳에 우리 집이 있었다. 맞벌이를 하던 우리는 매일 그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출퇴근을 했다.
더위가 막 시작되는 어느 날이었다. 골목길을 오르던 우리는 흠뻑 땀에 젖어 어느 집 담장 아래 멈춰 섰다. 라일락 꽃향기 가득한 그 담장 아래서 난 남편에게 말했다. “나 꿈이 있는데 라일락 한 그루 심을 수 있는 손바닥만한 땅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자 남편은, “달동네 전세 사는 형편에 땅까지 바라다니 참 욕심도 많다.”라며 흘리듯 대꾸했다. 그다음 날도 우린 라일락 나무가 담장 밖으로 그늘을 내주는 그 집 아래 다시 멈췄다. 그날도 땀을 훔치며 난 남편에게 말했다. “언젠간 라일락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그런 땅이 있는 집을 살 거야.” 그 전날은 코웃음을 쳤던 남편이 그날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앞서 걸어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처음엔 네가 바라는 꿈이 너무 욕심 사나워 보였는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욕심이라 부른 것 같아.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보니 인간다운 삶에의 바람마저 잊고 사는 요즘, 네 욕심이 되레 아름답게 느껴지더라. 내년에도 라일락 향기가 피어오를 때 네 욕심도 같이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그 후로 라일락꽃이 세 번 더 피었고, 그때마다 내 욕심도 따라 피었다. 그리고 우린 비록 라일락을 심을 땅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집보다 훨씬 낮은 지대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아파트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우리 집이었다.
캐나다에 이민을 와 처음 밴쿠버에 집을 샀을 때 우린 진짜 꿈에 그리던 라일락 나무를 뒷마당에 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가 자라는 걸 채 보지도 못하고 우린 그 집을 떠나야만 했다. 비즈니스를 시작해 앨버타 북쪽으로 이사를 와야 했고,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 게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물론 여기서도 집을 샀고, 이사한 첫날 제일 먼저 했던 게 미리 사둔 라일락 두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 일이었다. 세월만큼 라일락이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 아이들도 같이 자랐다. 자식들이 다 도시로 떠나고 둘만 남게 된 지금, 계속 시골에서 산다는 게 문득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밴쿠버로 이사를 갈까 싶어 집을 알아봤다. 그런데 그사이 밴쿠버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있었다. 밴쿠버를 떠나 올 때 팔아버린 집이 밀리언이 훌쩍 넘게 올라있었다. 팔지 말 걸 후회도 되면서 그만 머리만 복잡해지고 말았다. 난 라일락 나무도 심어야 하고, 뒷마당엔 넓은 텃밭과 비닐하우스도 필요한데. 밴쿠버로 가 이보다 더 좁은 데서 살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어느덧 라일락 한 그루 심을 손바닥만한 땅을 바랐던 내 욕심은 그보다 수십 배는 더 큰 땅이 있어야 만족할만하게 자라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텐트 위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빗소리 속에 고요히 앉아 처음 라일락을 심겠다고 욕심을 품었던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왜 난 라일락을 심고 싶었을까? 그 향기가 좋았고, 그 집 담장 아래 그늘이 고마워서였던 것 같다. 언젠가 땀에 젖은 누군가가 우리 집을 지날 때 잠시 쉬며 땀을 훔칠 그늘을 나도 내주고 싶었고, 좋은 향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사는 동안 난 항상 우리 자신을 나무라 생각하며 살았다. 나무가 자라면 큰 그늘이 생긴다. 그 그늘은 사람들에게 내어주라고 생긴 것이었다. 우리 부부를 이 스몰타운으로 옮겨 심고, 이곳에 뿌리를 내려 이만큼 자라게 해준 신께 난 항상 감사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곳을 지나는 한국 이민자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며 살았다. 이사를 밴쿠버든 그 어디로 가든 이렇게 나무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젠 굳이 라일락 나무를 심을 땅이 없어도 되겠다 싶었다.
빗소리가 더 거세지고 있다. 텐트 안에 고요히 누워 빗소리를 듣다 보니, 모든 게 갖춰진 큰 집이 아니라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할 때는 더 가지려고 욕심내는 게 아름다운 거라 믿었었다. 그러나 그때보다 훨씬 많은 걸 지닌 지금은 너무 커져 버린 욕심을 덜어낼 줄 알아야 남은 생이 아름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첫 집이었던 작은 텐트, 초라하지만 아늑한 이 작은 천 쪼가리 아래 누워 난 살아오면서 내게 붙어버린 불필요한 욕심들을 빗소리에 씻겨 흘려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