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마늘쫑을 뽑아먹는다고 자랑하길래 꾼도 쫑을 뽑아먹으려고 아침 일찍 큼직한 비료포대를 챙겨서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러나 함께 자라던 마늘은 어디가고 피와 달개비 천지였다.
“내 새끼들 어디갔나?”
멀리서 구구대는 비둘기와 푸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떼끼놈들.
십여일 전까지만 해도 마늘 옆에 있는 잡초를 어찌 다스려 보려고 했으나 마늘과 함께 뽑히는 바람에 그냥 버려두고 콩밭에 매달려 사는 사이에 완전히 묻혀 있었다. 풀 사이를 헤쳐보니 마늘이 풀 속에서 배배 비틀어져 있었다. 호미로 몇 뿌리를 캐 보니 단단한 풀 뿌리에 갇혀서 캘 수 없는데다 순전히 보물찾기였다.
결말이 허전했다. 아기 주먹만한 마늘을 캐보겠다고 석회비료와 식물에 가장 좋다는 균배양체를 많이도 뿌리고 심었었다. 그러나 두더지라는 복병을 만난데다 비닐대신 낙엽이라는 피복멀칭 재료를 잘못 사용한 탓에 풀대군을 만나 무참히 패배한 것이다. 마늘박사 할머니가 재배했다는 큰 마늘의 반 밖에 되지 않는데다 풀 속에 갇혀 있으니 마늘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정말 안되겠다. 농사원칙이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번에야 말로 어찌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이 든 꾼은 농약방으로 달려가 이행성제초제를 샀다. 서서히 뿌리까지 죽이면서 토양에는 잔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로 무농약으로만 농사짓고 싶어했다. 주먹덩이만한 마늘을 벌여놓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순전히 농약없이 재배한 굵은 마늘이라고 한껏 자랑하고 싶었었다. 두더지를 쫓아내느라고 생선내장을 밭 주위에 파묻던 일과 신나무 가지를 베어다가 꽂던 일 그리고 풀을 두 번이나 매면서 흘린 땀들을 생각하며 서러움이 복받쳤다.
“잉잉”
이제 풀 속에 묻힌 마늘들의 무덤에 끔찍하게 싫어하는 제초제를 뿌려야 하는 참담함이 꾼의 감정을 복받히게 했다.
분무기에 소금을 한 주먹 넣었다.
그리고는 근사미 50씨씨를 넣었다. 원래는 100씨씨가 표준이지만 소금을 집어넣으면 화학농약을 반만 타도 효과가 월등하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은 덕이었다. 그리고는 물을 가득 채웠다. 실실 분무기 안에 물을 휘저었다. 누구는 수확하는 기분으로 풀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낭만으로 생각했었으나 풀에게 한번 당해 보니 기분이 몹시 얼얼했다.
“녀석들 원수를 갚아주겠다.”
분무기의 시동줄을 당기니 힘찬 엔진소리가 폭발했다.
“마늘을 집어삼킨 느그들 죽어봐라.”
분무기 두 통으로 풀들의 처단이 끝났다. 이제 십여일 후에 와서 원수들의 시체더미에서 마늘들을 꺼내오면 될 판이었다.
분무기를 등에 진 발걸음이 박집사와 용수가 심어놓은 곳으로 향했다.
이렇게도 풀발을 만들어 놓을 거라면 주말농사를 허락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 김매 준 것으로는 모자라 채소류와 옥수수와 함께 푸른 초원으로 변해 있었다. 비닐멀칭을 하고 심으라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먼저 호미를 들고 옥수수 포기 주변과 갖가지 채소 주변의 풀을 제거했다. 그래도 먼저 김맨 보람이 있었다. 풀은 저항없이 잘 뽑혔다. 그러나 온 밭에 퍼진 풀들을 손으로 잡아 뜯는다는 것은 가혹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것이라 그런 생각은 순간에 접어버렸다. 작물 주변의 풀을 뽑은 다음에 노즐을 고깔노즐로 바꾸어 제초제 세례를 퍼부었다. 농약을 친다는 것이 거리끼긴 했으나 안 그러면 풀밭에서 헤어나올 자신이 없었다. 무차별 세례를 퍼부은 꾼은 속이 후련했다. 안도의 한숨이 크게 몰아쉬었다.
<망할 것들>
옥수수와 채소들에게 복합비료를 한 수저씩 주었다.
얼른 자라서 용수와 박집사에게 선물을 주라고 듬뿍 주었다.
다시 교회콩밭으로 향했다.
풀무덤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처리했다는 안도감에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밟은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분무기를 집에 내려놓고 예초기를 실었다. 길게 누워있는 갈풍리 밭으로 향했다. 일주일 전에 새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목초액을 뿌려서인지 비둘기 피해는 없었다. 콩도 예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듬성듬성 풀이 올라오고 있었다.
<풀은 대단하지 않군. 그냥 가야겠다.>
꾼은 마늘밭의 악몽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작은 풀이 금새 큰 풀 된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 사실을 무서워 했다 해도 이천평이나 되는 넓은 밭을 혼자서 상대하지 못했을 터였다.
다시 아랫밭으로 갔다.
이곳은 길게 누워있는 밭과는 달리 가관이었다. 콩심기 전에 박집사와 깎았던 망초풀이 어느새 꾼의 허리춤을 육박하고 있었다. 한번 잘라낸 호밀과 함께 온 밭이 초록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콩만 심은 밭이라면 벌써 밭이 푸르게 변해 있을 수 없었다.
“뜨아, 언제 이렇게 자랐냐?”
주저없이 예초기를 풀에 갖다대었다. 다행히 바랭이가 없어서 호밀과 함께 망초를 제압하기는 쉬웠다. 한 시간 쯤 작업했을까? 예초기 엔진이 푸드득 꺼졌다. 기름이 바닥이다.
<이런 휘발유가 없네.>
집에서 급히 나온 나머지 휘발유 통을 준비한 것을 깜빡했다. 좌충우돌하면서도 막연하게도 뭔가 한가지 미진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었다.
<혹시 똥을 누지 않고 나왔나. 뭐가 미진하지?>
막연한 불안감이 뭔지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그 존재가 무언지 잡히지 않았었는데 그게 바로 휘발유를 챙기지 않았던 것에 귀착했다.
“에이 씨 오십도 안된 나이에 이게 뭐람. 휘발유 없는 예초기로 무얼 한담.”
한마디로 총알없는 총으로 전장에 나가는 것이요, 거시기 없는 신랑이 장가가는 것이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안에 계세요?”
휘발유를 얻을 페트병을 꺼내들고 몇 집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무응답이었다. 하긴 날씨 멀쩡한 날 집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싶었다. 네 번째 집을 실패한 다음에는 그냥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맥이 빠져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해가 아직도 한뼘 반이나 남았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 예초기 먹이 동냥하기 댑다 힘들군.>
한참을 궁시렁거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앗싸!
눈을 들어 바라보니 웬 노인이 뭔가를 야단치고 있었다.
“이런 개시끼가 놓여나서 밭 비닐을 밟아쳐서 난리를 피구 지얄이야. 망할 놈의 개시끼.”
뒤이어 들리는 소리 깨갱깽 깽, 무지 아팠나 보다. 붙들려 매어진 견공에게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울리면서 아픔을 참는지 끼잉끼잉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견공을 아예 잡는구나. 노인에게 무슨 휘발유가 있겠어? 혹시 모르니 한번 물어나 볼까?>
작정한 꾼은 비명이 끊이지 않은 축사를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개가 말썽을 피웠나 보군요.”
“개가 좀 풀려나 논 걸 가지고 영감이 성깔을 부리네요. 무슨 일이세요?”
나이 든 할머니가 낯선 사내의 방문이 궁금한지 눈을 껌벅였다.
“저 앞 밭에서 일을 하는데 예초기 기름이 떨어졌지 뭐에요. 휘발유 좀 얻을 수 있나 해서요.”
“난 잘 모르는데 아마 있을 거유. 저 축사로 가보면 영감쟁이가 있을 테니 물어보슈.”
휘발유가 있다는 말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흠흠 킁 킁>
기가 살아날 때 내는 꾼 특유의 잔기침 소리였다.
“어르신 밭일 하다가 예초기 기름이 떨어져서 그러는데 페트병에다 휘발유 좀 파셨으면 해서요.”
68부에 계속합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은 즐겁습니다.
몸전체가 누런 녀석이 있어서 찍어 보았습니다.
식용 개구리인 듯 합니다.
첫댓글 아이고 난 꾼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좀 일좀 벌리지 말라는데 맨날 일 벌려서 고생스럽게....거기다 제초제치고 ...이기지도 못할꺼면서 맨날 사고나치네/약치고 속시원하면 먹을때 찜찜함은 어쩌누못말리는 카페지기....더크게 일 벌리세요. ....어차피 내가하는것도 아닌데..........마늘어찌되었을까요
다음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마늘 이야기, 교회 콩밭 매는 이야기들 마구 풀어 놓아야 하는데 바쁘다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