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최근 발표된 동시 분석 <1>
- 격월간《대구문학》125호(2017년 3‧4월) 게재 동시 -
저/ 좋은 가을볕// 볕이/ 아깝다// 고추도/ 잘 마를 텐데// 참/ 아깝다// 말릴 것도 없는 /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 창밖을 보며그냥 내려 쪼이는 볕을// 자꾸/ 아깝다 하십 니다//
- 권영욱「볕이 아깝다」전문
동시의 시‧공간 배경은 햇볕 쨍쨍 내리쬐는 가을날, 요양병원이다. 할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며 연신 볕이 아깝다고 한다. 그 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볕이 아깝다’, ‘참 아깝다’, ‘자꾸 아깝다’처럼 점점 강도를 더한다. 이런 볕이면 ‘고추도/ 잘 마를 텐데’ 하지만 지금은 요양병원에 있으니……. 그래서 자꾸 혼잣말로 ‘아깝다’는 말만 내뱉는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말이다. 찬찬히 살펴보면 오늘날의 사회상을 보는 듯하다.
바다보다 넒은/ 엄마의 가슴은//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고// 꺼내도 꺼내도/ 남아 있 는 사랑이지만// 아가의 아픔까지/ 품을 순 없어//
- 김봉식「엄마의 가슴」전문
자식에 대한 엄마의 끝없는 사랑을 동시에서 읽는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문득 머리에떠오른다. 화자는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가슴은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을’ 만큼 넓다고 한다. 또한 그 속에 채워진 사랑은 ‘꺼내도 꺼내도/ 남아 있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런 엄마지만 ‘아가의 아픔까지/ 품을 수 없는’ 것처럼 대신 아파줄 수는 없다. 그런 시적화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시에서 읽는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시적 표현이다.
마당 한구석에/ 채송화가 꽃집을 차렸다//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 날마다 손님이/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채송화는/ 손님이 따뜻할 때만 오라고// 어느 가을날,/ 추워지 기 전에/ 서둘러 꽃집 정리를 했다//
- 신복순「채송화 꽃집」전문
동시의 장면인 마당 한구석에 활짝 핀 채송화의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이 눈 속에 들어온다. 전체를 둘러보면 손님, 즉 벌, 나비가 있어 분위기가 한층 고조된다. 시인은 이내 시의 분위기를 바꾼다. 날이 추우면 손님들이 찾아오기가 힘들까 봐, ‘채송화는/ 손님들이 따뜻할 때만 오라고’ 서둘러 꽃집을 정리하는 것으로. 꽃집 주인의 대상에 대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다. 시인은 현실 밖 세상의 꽃집 주인인 채송화를 의인화했다. 동심을 살리려는 의도와 노력이 돋보인다. 아기자기한 시적 장면 설정으로 어린 독자들의 마음까지도 온전히 끌어당기려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읽히는 동시이다.
땅속에서도 쑥// 들판에서도 쑥쑥// 아이들도 쑥쑥// 온천지가 쑥쑥쑥//
- 신흥식「봄」전문
겨우내 황량하기만 하던 동토凍土가 풀리고 바람마저 한결 부드러워지는 장면을 역동적 표현을 써서 동시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땅속과 들판, 아이들의 삶과 온천지에서 생명이 약동하는 움직임이 읽는다. 시인은 ‘땅속’, ‘들판’, ‘아이들’, ‘온천지’에서 밑줄 친 것과 같이 ‘쑥 - 쑥쑥 - 쑥쑥 - 쑥쑥쑥’ 이란 표현으로 동작을 점차 키웠다. 시각적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극히 절제된 함축적 시적 표현에서도 확산하는 봄의 정경이 뚜렷하다.
상추, 고추, 쑥갓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텃밭을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 놓았다// 상추잎이 엄마의 발소리를 듣고/ 쑤욱 쑥/ 자란다// 상추와 쑥갓을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 양미현「텃밭」전문
온갖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텃밭이 동시의 배경이다. 텃밭의 채소들은 각양각색이지만 시적화자는 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텃밭에서 갖가지 채소를 통해 다정한 친구들을 본 것이다. 한편 ‘텃밭을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 놓았다//’는 표현에서는 누군가 보살핌의 손길을 유추하게 한다. 바로 엄마의 손길이다. 그래서 ‘상추잎이 엄마의 발소리를 듣고/ 쑤욱 쑥’ 자라는 것이다. 시적화자는 그 텃밭에서 자란 채소를 먹을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싱싱하게 자라는 텃밭의 채소들의 모습에서 엄마의 정성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이다.
신천 둔치/ 노란 유채꽃밭// 웡웡, 웡웡/ 세상 벌 다 모였다// 찰칵, 찰칵, 찰칵// 우리 나라 사람 다 모였다// 벌도/ 사람도/ 다 끌어 모으는// 향기로운/ 꽃 자석!//
- 차경아「유채꽃 자석」전문
이 동시를 읽으니 노란 유채꽃이 눈에 선하다. 봄철이면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곳에는 벌들이 모이고, 사람도 모였다.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으면 ‘세상 벌 다 모였다’, ‘우리나라 사람 다 모였다’라고 했을까. 벌들은 꽃에서 꿀을 빨고, 사람들은 노란 유채꽃을 보며 연신 카메라 스위치를 눌러댄다. 후반부에서 시인은 유채꽃밭을 ‘벌도/ 사람도/ 다 끌어 모으는// 향기로운/ 꽃자석!’이라고 표현했다. 시인에 의해 유채꽃은 ‘유채꽃 자석’으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끌림이 있는 꽃의 속성을 자석의 원리로 전환한 시인의 은유적 표현이 새롭다.
산골짜기 돌 강에/ 누군가가/ —평화가 모든 이에게—/ 써놓았어// 평화가 나무 사이로 졸졸졸/ 산을 돌아 졸졸졸/ 마을에 졸졸졸/ 온 나라에 졸졸졸/ 지구에 맴돌며 졸졸졸//
- 최점태「돌 강」전문
산골짜기를 흐르는 강에 돌이 많은가 보다. 그래서 시인은 돌 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많은 돌들 사이에서 시인의 관심을 끈 것은 ‘평화가 모든 이에게’라고 써 놓은 한 줄의 글귀일 게다. 산골짜기를 흐르는 것은 분명 물이지만 시인의 가슴에서는 순간 ‘평화’가 흐른다. 그 평화는 이내 ‘나무 사이 → 산 → 마을 → 온 나라 → 지구’로 퍼져나가 맴돌며 ‘졸졸졸’ 흐른다. 지구상에 평화가 흐르기를 바라는 시적화자의 간절한 소망이 강한 메시지로 전해진다. 산골짜기 돌 강에 누군가 써 놓은 한 줄의 글귀. 시인은 이 글귀에 지구상에 평화가 흐르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귀한 마음을 담았다. 그 마음은 시적 감흥을 덧입어 ‘졸졸졸’ 오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