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docx
*과제를 방금 마무리했습니다. 지면제출을 내일 교수님 방에 찾아가서 직접 할게요 ^_^
안상훈 감독 <아랑>과 <블라인드> 감상 후 비교 에세이
2008112897 영화영상학과
곽하늬
1. 영화 속 인물 중심으로 비교
2011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한편인 <블라인드>는 <아랑>후 5년간의 공백을 가졌던 안상훈 감독의 작품이다. 공동집필이긴 하지만 영화 두 편 모두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장르가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는 인물 구성에 있어서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하나, 중심인물이 여자라는 점. 둘, 이 여자들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점. 셋, 중심인물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극에 재미를 주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남자라는 점이다. -여기서 직업(혹은 전직)이 모두 경찰(형사)이라는 점은 극의 설정이니 차치하기로 하자.-
영화 <아랑>과 <블라인드>는 각각 정직되었다 막 복직한 여형사 ‘소영’과 경찰대 졸업을 앞두고 제적당한 ‘수아’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둘은 각기 다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트라우마가 인물들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아니라, 인물들이 결정적 순간에 잠재되어 있던 힘을 발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고교시절 성폭행을 당한 ‘소영’은 자신을 성폭행한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이 된다. 그리고 오른손에 흉터가 있는 그 남자를 찾아다닌다. ‘소영’을 다소 우악스럽고 거칠게 그려진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여성의 가장 나약한 면을 공격받은 ‘소영’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보통 여자들에 비해 남성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영’이라는 인물이 선명하지 않은 이유는 ‘소영’의 트라우마가 극 중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강인하고 남성적이라고 했을 때, 그러한 성격을 인물에게 부여하는 요소가 형사라는 직업 외에는 딱히 없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과거 성폭행이라는 엄청난 상처를 극복한 인물인데 사실 걷는 폼, 말투, 차림새 등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를 제외하고는 이 인물 내면의 진정한 강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소영’은 그저 똑똑하고 당당한 여형사일 뿐인 것이다.
반면 <블라인드>의 ‘수아’는 ‘소영’보다는 좀 더 탄탄한 인물로 그려진다. 사고로 동생을 죽게 만들고, 자신은 장님이 되었으며, 경찰대에서도 제적당해 미래까지 불투명해진 ‘수아’는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에 복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음은 동현의 친구들이 하는 공연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읽힌다. 단순히 똑똑하다는 설정을 넘어서, 똑똑하고 운동도 잘하며-경찰지망생이므로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다른 감각까지 발달한 그녀는 천하무적에 가까운 영웅캐릭터에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인물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는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수아’는 ‘소영’보다 그 성격에 있어서 더 구체적이면서 적극적인 인물로 탄생하는 것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소영’에 반해, ‘수아’는 넘어지고 깨지기도 하며 언제나 옳지만도 않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적대자를 쓰러트리는 것은 ‘수아’다. ‘소영’은 적대자가 스스로 자신을 처단하는 것을 지켜보는 ‘목격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불편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수아’를 보면서 내내 짜증나리만치 답답함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소영’은 너무 평면적이어서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수아’는 감정이입은 잘 되지만 그녀의 답답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시각장애인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럽고 심하리만치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중요한 순간마다 도움을 받는데, 그 도움을 주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로, 관객으로 하여금 그 남자들의 등장을 기다리게 만든다. <아랑>에서도 오히려 흥미로운 인물은 현기(이동욱 분)다. 그는 극에 흥미를 더해주는 호감 가는 인물이며 또한 극의 반전에 중심에 서 있다. <블라인드>에서도 마찬가지다. 뺑소니 목격 사례금이나 노리던 철부지에서 누나를 지키는 멋진 남자로 성장하는 기섭과 경찰서에 문제아에서 중요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내어 떠오르는 샛별 형사가 되는가 싶더니 범인을 잡다 멋지게 죽어버린 형사는 역시 늘 도움이 필요한 ‘수아’와 대비된다. 결국 두 영화 모두 변화를 겪는 입체적 인물은 ‘남성’으로 둔 것이다.
2. 신화 구조 속에서 두 영화 비교 분석
아랑전설을 모티브로 한 <아랑>은 귀신이야기와 살인 사건을 접목시켜 흥미로운 네러티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조셉 캠벨의 원질신화론 원형 구조인 분리-하강-입문-귀환의 구조로 분석해보면 <블라인드>에 비해 비교적 단조로운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먼저 주인공이 일상 세계를 떠나 특별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암시해 주는 단계인 분리 단계가 <아랑>에서는 <블라인드>에서 보다 덜 뚜렷하게 나타난다. <블라인드>의 ‘수아’는 처음 연쇄살인범의 차에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일상생활에서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반면 <아랑>의 시작은 단순히 형사인 ‘소영’이 또다른 사건 하나를 더 맡는 데에 불과하다. 결국 ‘소영’에게는 어찌보면 직업의 연장선상, 즉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또다른 사건이 결국 그녀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고 동료 형사가 연루되어 있던 사건으로 후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귀환 단계에서도 <블라인드>가 훨씬 극적이다. <아랑>에서 주인공 ‘소영’의 부활을 돕는 것은 귀신이다. ‘소영’ 자신은 자신을 과거에 성폭행한 범인에게 복수는커녕 그를 찾지도 못한다. 이를 찾아 죽이는 것이 바로 귀신이다. ‘소영’은 이 사실을 알지 조차 못한다. 그러나 <블라인드>에서 ‘수아’는 그 스스로 시련을 극복한다. 3년 전, 쓰러졌던 자신이 구하지 못한 동생, 열지 못한 차문을 향해 보이지 않는 눈을 떠 어둠을 더듬어 찾아간다. 그리고 3년 전 그랬어야 했듯, 그녀는 창문을 부수고 그 소리를 듣고 온 연쇄살인범에게 한방을 날린다.
이런 구조에 따른 극적 요소가 차이 나는 데에는 장르적인 특성도 한 몫 한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공포물보다 캠벨의 원형신화구조에 더 잘 들어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세계와 대비되는 특별한 세계 즉, 하강과 입문의 단계에서 <블라인드>는 확실히 사건에 연루되고 그로 인하여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의 해결,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랑>에서보다 더 잘 나타난다. 공포물이면서도 추리물인 <아랑>은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을 취하기 때문에 몇몇 피해자들이 죽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조각된 사건의 파편을 쫓아가기 때문에 비교적 설명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에 반해 <블라인드>에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전체적인 네러티브에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는 사건들이 배치가 되면서 보글러의 스토리 구조에 잘 들어맞아 더욱 신화구조에 걸맞는다.
물론 더욱 신화구조에 가까울수록 좋은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라인드>의 네러티브와 극적 장치는 분명 <아랑>의 그것에 비해 발전했으며, 그것이 <블라인드>의 성공의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장르적 흥행성도 흥행성적 차이의 요인이 되었겠지만 어쨌든 더욱 탄탄한 <블라인드>의 캐릭터들, 갈등요소, 신화구조를 고려한 사건배치는 <아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안상훈 감독의 공백기 5년, 그는 분명 공부하고 더욱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