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의 지혜가 어른을 능가
어릴 때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랐기에 날짐승이나 여타 동물들의 생태를 알게 되었다. 물떼새는 봄이 되면 돌과 자갈이 질펀한 강변에 알을 낳고 새끼를 친다. 물떼새의 알이 조약돌과 비슷해서 사람이나 짐승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 보호색을 이용하여 강변 자갈밭에다 아무도 모르게 알을 낳는 것이다. 알이 있는 곳을 먼저 발견하지 않고는 자갈밭에 알이 있음을 알아내기는 힘이 든다. 아무리 영리한 사람이라도 방법을 모르고는 자갈밭의 물떼새 알을 발견하기란 한강 모래사장에 잃어버린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그래도 나는 물떼새의 둥지와 알을 쉽게 찾아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질펀한 자갈밭에 놀면 재미가 있었다. 온갖 모양의 돌을 가지고 유사 형의 의미부여가 예술품을 읽어내는 지식과 통하는 일이다. 또 이런 놀이는 창작 의욕을 불러내기도 한다. 늘어놓고 연결하고 위치를 바꾸는 방법에 따라 변화무쌍한 생각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마을 앞 금호강이 흐르는 빈자리에는 물떼새가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주변의 물떼새 둥지는 모두가 내가 파악하고 어느 지점에 몇 개의 알이 둥지에 담겨 있다는 사실까지 훤하게 파악하고 있다. 물떼새의 둥지를 내가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그들의 보호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 조약돌을 가지고 형상과 의미부여 놀이를 하다가 물떼새가 나를 자꾸 유혹하는 짓을 보았다. 마치 한 쪽 날개가 꺾어져 다친 시늉으로 내가 자기를 따라와서 잡도록 유혹하는 일이다. 예쁜 물떼새가 다쳐서 자유롭게 날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내가 잡아서 머큐로크롬 치료약이라도 발라 완치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다가가서 잡으려면 잡힐 듯이 유혹하다가 저만치 따라가면 비실비실 피한다. 그렇게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면 놀리듯 멀리 날아가 버린다. 종달새가 똥개 속이는 버릇과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내가 만들어 놓은 형상과 의미부여에 골몰하던 곳에 오면 물떼새가 또 나를 유혹하는 짓을 한다. 아하 저 물떼새가 이 부근에 둥지를 틀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혹시 내가 물떼새 알을 밟아 깨지나 않았는지 그게 걱정되었다. 일어서서 주위를 자세히 찾아 헤매며 살폈다. 한참 방황하는 노력의 보람으로 메추리 알과 흡사한 멋진 물떼새의 알이 3개가 둥지 속에 보기 좋게 기다리고 있었다. 물떼새는 보통 네 개의 알을 낳으므로 아직 하나를 더 낳을 참이다. 다행히 밟아서 깨지 않은 일이 퍽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둥지를 자세히 보면 보금자리를 접시 그릇 웅덩이처럼 만들고 꺾어진 연필심 조각 같은 아주 잔돌을 바닥으로 펴서 알이 깨지지 않게 보호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물떼새 여러 둥지를 찾아 점 찍어두고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걸어가는 자갈밭에는 나를 앞서서 저만치 거리를 두고 나타나 도망가는 물떼새를 발견한다.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물떼새의 동태를 살피면서 뒷걸음을 걷는다. 물떼새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시선을 박고 어느 지점까지 물러나 엎드려 기다린다. 저만치 도망가던 물떼새가 꼬리를 깝죽거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자기가 처음 도망치던 곳으로 돌아온다. 내가 자기를 해치는 의도가 없음을 감지하고 자기 둥지까지 와서는 의심나게 행동을 보이지 아니하자 둥지에 알을 품는 모습이 몸의 털을 흔들며 알을 깃으로 감싸고 돌 색처럼 변해버린다. 돌인지 물떼새 둥지인지 물떼새 어미가 엎드려 있는지 알 수 없는 보호색으로 변한 것이다. 내가 그 지점에 점을 찍듯 돌을 눈 여김으로 기억하고 그 기억된 돌만 주시하면서 다가간다. 거기에는 멋진 물떼새의 둥지가 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표나는 큼직한 돌을 표시해 두고 내가 놀면서 둥지를 다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지나면서 밟지 않게 큼직한 돌을 두면 사람들이 그 돌을 피해 가느라 물떼새 둥지의 알이 보호된다. 이런 방법으로 모든 물떼새 둥지를 미리 표시해 두고 보호하여 물떼새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물떼새의 집이나 알은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조사를 하는 중에 여자 두 분이 쑥 나물 캐러 지나갔다. 아차 하고 재빨리 달려가서 살피니 물떼새알 넷 가운데 한 개가 깨어졌다. 하나만 깨어진 것이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불행하게도 거기에는 큰 돌을 장애물로 설치하지 않아서 그랬다.
물떼새 새끼도 부화 후에는 사람이 오면 돌 사이에 엎드러 돌처럼 꼼짝도 아니하고 부동자세가 된다. 몸과 털이 돌의 색과 같아서 천적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사람이 실수로 밟지 않는 이상 자기의 위치를 절대로 알리지 않는 지혜가 생겼다. 사람이 100m 이상 떨어져 지나가면 그때야 자기 어미를 찾아가는 새끼다. 물떼새 새끼에게 어떤 방법과 경로로 이런 보호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우리 집에 곤질박새가 하필이면 빈 과일상자 위에다 둥지를 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벌써 새끼가 제법 자라서 꼬리는 짧아도 날개는 다 자란 듯했다. 들고양이가 주변을 날마다 다니고 있는데 용케도 들키지 않은 일이 신기하다. 그대로 두면 들고양이 밥이 될 것이 뻔했다. 내가 보호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둥지를 들여다보니 나무토막이나 돌처럼 숨죽인 행동으로 꼼짝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져도 무감각한 것처럼 있었다. 그래서 고양이가 올라가지 못하는 곳에 옮기기로 했다. 고양이가 올라가지 못하는 드럼통 위에 더 높아지게 비슷한 통을 올려서 거기에 옮기는 작업이다. 준비를 마치고 실재 둥지가 든 상자를 들고 옮기는 순간 그때까지 조용하던 새끼들이 온 마당으로 날아 구석마다 숨는다. 깜짝 놀라서 다시 잡아다가 담아서 옮겨 놓았다. 처음에 내가 만졌을 때까지 자기를 못알아 보는 줄로 안 모양이다. 도대체 그런 죽은 듯이 숨죽이고 부동자세가 되는 방법을 어떻게 아는가? 어미에게 배운 지식이라기엔 믿을 수 없었다.
사람에게 항상 매사에 침착하라고 일러주지만 그대로 잘 배워지지 않는다. 모기가 한 마리 피부를 근지럽게 하면 싸움에서 칼 맞은 듯 호들갑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양보 운전이 어려워진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마음이 다급하고 어려움을 견뎌야 하는 마음 또한 사라진다. 어른들일수록 이런 마음 씀은 조급함이 더하다. 그런 마음 쓰는 교육을 은연중에 했다는 증거다. 이념분쟁에 들면 더욱 뚜렷해진다. 보수나 진보나 생각 나름이지만 거기에 죽고 삶이 포개진 듯이 서로 원수로 맺어지는 일이다. 이미 사랑이 사라진 세상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동물과는 구분하는 일이다. 인간의 천적은 호랑이 아니고 사랑할 수 없는 이념의 잘못된 생각이다. 잘못된 생각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사막보다 더 메말라진다. 사랑하는 생각을 다 잡아먹어 버리면 천적이 노린 목표의 목마름만 남을 일이다. 도저히 기회가 올 때를 기다릴 수가 없다. 어린 새들의 새끼가 숨죽이고 부동자세가 되는 지혜만도 못하다. 자기를 살리는 방법은 참을성과 믿음이다. 거기에 사랑의 보배로운 생각이 태동하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 정적을 죽이는 칼날로 사용되는 생각은 어리석고 인간의 존엄을 망각하는 짓이다. 인류는 사랑하는 생각이 보배고 세상 모든 가치의 최상위다. ( 글 : 박용 2018. 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