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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민음사
이 책을 선택한 <우주소녀>
‘안나 카레리니’를 선택하고 싶었으나 워낙 분량이 많았는데 이 책은 분량이 적당했다. 선택하는 데에는 고전이 무난한 것 같다. 이 책을 어렸을 때 읽었으면 이해도가 떨어졌겠지만 지금 나이에 보니까 좋았다. 저자의 멘트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고 삶의 경험과 성찰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주인공들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하여 그리고 용서에 의하여)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은 잊혀질 것이다.” (398쪽)
<크로>
재미있게 읽었다. 인상적인 문구가 많았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구체적인 일들이 많은데 예컨대 사상적인 것, 열정, 젊은 날의 미숙함, 유치한 복수심 같은 작은 일임에도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러한 상황들에 공감했고 빠져들 수 있었다. 인간이면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들 때문에 몰입도가 있다.
이 정도의 책을 일인칭으로만 쓰면 힘들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상태를 일인칭으로 하여 썼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느낌이 좀 다르다. 전반부는 학교에서의 연애사건이 주를 이루는데 비장함이 있고 스피드가 있고 선이 강했으나, 복수를 위해 헤레나에게 바람을 피우게 하는 후반부는 무거운 것 보다는 해학적이고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뒷부분도 괜찮았다. 복수가 엉망진창되는 상황과 결말이 좋았다. 번역도 거슬리지 않았는데 역시 고전은 의미가 있다.
<가을햇볕>
좋았는데 좀 어렵다. 예전에 이 저자의 책 몇 권을 읽었고 몇 권은 사놓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으니 재미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훔쳐보는 관음증이 있고 서로의 뒷이야기들을 들추어 보는 것은 재미있다.
예전에 체코는 슬로바키아로 나누어져 있다가 세계1차대전 후에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되어 70년을 지속하다가 고르바초프 시대 이후에 다시 분열되는 등 체코의 역사와 상황, 세계2차대전 후의 소련의 영향력과 공산주의 정권을 좀 알아야 하고, 영속혁명을 주장한 트로츠키와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한 스탈린과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상황에서 장난으로라도 “트로츠키 만세!” 라고 써 보낸 것은 대역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암살당했는데 루드비크가 사형을 안 당한 것이 다행이다. 이론적으로는 트로츠키가 맞았지만 스탈린이 힘이 썼다.
루드비크는 시대를 잘 못 읽는다.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환상 속에 산다. 반면에 제마네크는 세상에 잘 적응한다. 그러면 제마네크처럼 살아야 하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저자의 다른 책에서도 저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색한다. 여러 가지 인간들의 이미지와 본질의 대립적인 모습들을 잘 그렸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여유스러워진다.
모든 것이 의미가 중요할 수도 있으나 근래의 책 <무의미의 축제>와 같이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여름숲>
저자의 책을 대학 때쯤에 몇 권 접했지만 저자의 문장, 아포리즘(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은 어디에 떨어트려 놓아도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이 책으로 떴다. 초기의 작품이라 저자는 하고 싶은 말도 많아서 많이 쏟아냈지만 다 의미가 있다.
중국 위화의 소설도 이렇다. 저자는 세상일이 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캐릭터의 의미가 바뀔 수 있으며, 말한 것의 의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이 소설은 인생의 의미를 깊이 천착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작은 것 하나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헬레나의 절망은 죽음의 문턱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삶과 계산을 치렀던 것이다”
가독성이 좋았다. 아포리즘 때문에 뜬구름 잡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좋은 기회에 잘 읽었다.
“아, 내가 그러한 잔인성을 편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어떠한 운동 앞에서도 조소와 우롱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부식시켜 버리는 녹이기 때문이지요”(332쪽)
<푸른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대하드라마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실은 아침드라마 같았다. 모든 드라마가 다른 것 같아도 다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큰 흐름을 잘 못 읽는다. 매순간 급급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적재적소에서 재미있게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각각의 문장이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 머릿속에서 모든 가치가 흔들려 버리고 젊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또 반대로 역사의 불한당들이 한 일이 갑자기 그저 미숙아들의 무시무시한 동요로밖에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하여 역설적인 너그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130쪽)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천상과 지옥 사이의 경계에 있다. 그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394쪽?)
어떤 행위가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으며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전체적으로 잘 보아야 하는데 젊은이들은 그런 것을 볼 수가 없다. 이 책도 즐거웠지만 이 독서모임도 전체적인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저자가 36살에 내놓은 책이라는데 이 책은 저자의 삶과 느낌을 닮았다고 본다. 오래된 석학의 모습인데 이런 깨달음은 어떻게 왔을까??
<강철>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을 원래는 체코어로 썼으나 프랑스로 망명 후 1993년부터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이전에 썼던 체코어 작품도 1985년과 1987년 사이에 본인이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어본 또한 정본으로 취급하며 현재 국내에 번역된 밀란 쿤데라의 글들은 (중역이 아니라) 대부분 프랑스어 번역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저자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삶의 역정을 거쳤기에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 고통, 심정들을 예리하게 표현할 수 있지? 하는 의문과 경외감이 생겨났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우선 하나를 들어 보면,
“나 자신의 한심함을 인식한다고 해서 나와 비슷한 이들의 한심함과 내가 화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서 자기 자신의 비천함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서로 형제처럼 결속된다든지 하는 일만큼 내게 역겨운 것은 없다. 그런 메스꺼운 형제애는 사양한다.”(115쪽)
이 책은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반적인 사건들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사랑에 대한 연애감정도 잘 서술하고 있다고 본다. 자유스럽지 못한 환경에서, 그렇기 때문에 더 간절했던 루치에와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은 진실된 사랑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고 본다.
“나는 말할 수 있다. 그 때 – 내 일생에서 유일하게 – 나의 온 존재가 매달린 한 여인에 대한 총체적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고. 그것은 몸과 영혼, 욕망과 다정함, 서글픔과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였으며, 위안에 대한 갈구이자 동시에 저속함에 대한 갈구이고, 영원히 소유하고픈 갈망이자 동시에 한순간의 쾌락에 대한 갈증이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완전히 다 걸고 있었고, 한 곳으로만 향해 있었다. 나는 이 순간들을 잃어버린 낙원으로 기억한다. (정찰견과 보초들이 지키는 기이한 낙원)” (155쪽)
또한 이 책에는 노골적인 묘사는 아니지만 성행위와 관한 서술도 많이 나온다. 저자는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의미 있다고 느꼈기에 그러했겠지!
또한 저자가 보는 여자들에 대한 특성도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 (원칙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쾌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259쪽)
이 책은 1945년 이후의 체코 상황과 역사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사회주의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신랄한 비판도 보인다.
“교회는 노동 운동이 모욕당한 이들과 정의를 갈구하는 이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회는 그들과 더불어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교회는 압제자들과 연합하여 노동자운동에서 하느님을 드러내 버렸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그 운동이 하느님이 없다고 비난 하려 드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바리새인 같은 위선인가! 사회주의 운동이 무신론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거기에서 우리에 대한 신의 비난을 본다! 가난한 이들과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우리가 마음을 베풀지 않는 데 대한 비난을.”(297쪽)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회가 줄곧 독재자의 편에 섰으며 민중을 탄압하는 데에 거들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회(천주교 포함)도 일제 강점기 때에 신사참배를 하고 일제에 처음에는 마지못해 나중에는 적극 협력했다. 천주교는 이를 공식 사과했다.
지금 왕또라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하라고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 단서가 된 것은 김재수 농림수산부 장관의 해임의결이고 그 장관이 (물론 여러 가지 결격사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야당에게 찍힌 것은 자신이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이른바 흙수저라고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라는 (자신도 인정했듯이) 농담 때문이었다.ㅎㅎ
이 소설은 그 당시 체코의 정치(사회주의 운동 포함)와 종교 그리고 약간은 잘 난 인간들의 심리와 사랑을 통하여 들여다 본 인간에 대한 통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중간에 쓰신 왕또라이 이정현 대표는 그대로 단식 100일 가는걸로... 이대표 화이팅!!!
수고하셨어요....^^
국회 가서 단식해야 겠어요. 국회의장 사퇴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