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의 여름은 매우 덥다. 특별히 6월 말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더위는 만년설을 품고 있는 텐산 산맥에서 불어오는 산바람까지 거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숨 막히게 하는 열풍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인지 아랍어로 ‘엄청난 더위’라는 의미를 담은 라마단은 올 여름, 이곳 키르기즈스탄에서도 온 몸으로 느껴진다.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ṣawm Ramaḍān)을 하는 것은 이슬람 신앙의 다섯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이다. 특별히 이슬람 국가인 키르기즈스탄에서는 이 단식이라는 원어의 뜻을 따라 단식을 뜻하는 키르기즈어 단어 ‘오로조’(орозо)를 사용한다. 초승달이 육안으로 보이는 때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라마단은 지역에 따라, 교리에 따라, 1-2일 유동적인데, 올해 키르기즈스탄의 라마단인 ‘오로조’는 6월28일부터 7월27일까지이다.
오로조를 통해 다시 무슬림으로
키르기즈스탄은 이슬람 정통으로 통하는 수니파 이슬람에 속하지만, 오래 전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유목민의 삶에서 비롯된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키르기즈스탄의 이슬람은 매우 독특하다. 소위 ‘민속이슬람’ 이라고도 이야기되어지는 키르기즈탄의 이슬람 신앙은 아랍과 페르시아 무슬림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더욱이 개방된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키르기즈의 젊은이들의 평상시 생활 모습은 ‘무슬림’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이슬람 율법에서 자유로운 듯 보이는 이들의 신앙도 ‘민속’이라는 틀 안에서 ‘씨족’이라는 개념의 공동체와 같이 할 때에는 뼛속 깊이 드리워진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된다.
키르기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려 여름에는 시원한 산정호수를 찾아, 겨울에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찾는 스키어들로 매년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그렇다보니 여느 관광지가 그렇듯 현지물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특수를 노리는 현지인들도 간혹 있다. 그런데 유난히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많이 씌우는 택시 기사들이 오로조인 요즈음 달라졌다. 평상시에는 거리에 비해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며 가격 흥정을 시작하는 그들이 택시를 타려는 당사자도 놀랄 만큼 정직하게 가격을 부른다. 또한 거리에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가난한 자들에게도 작은 액수나마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로조가 시작하기 몇 주 전, 이슬람 단체의 젊은이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오로조’를 지킴으로 건강한 영혼과 육체를 지킬 수 있다며 시민과 운전자들에게 과자와 안내지를 배부하는 행사가지기도하였다. 이렇게 오로조는 키르기즈스탄 민족으로 하여금 평상시 잊고있던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무슬림으로 회기하는 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함께 오로조
키르기즈스탄 500만 인구 중, 이슬람 인구는 75%이고 구소련 시절부터 함께 살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 신자 수는 20%이다. 그런데 이곳 키르기즈스탄에는 80여개의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대부분의 키르기즈 민족들은 무슬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무슬림으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정치인들도 라마단 기간에는 이슬람 사원에 모습을 드러내 공동체에 섞여서 적극적으로 신앙을 고백한다. 또한 평상시 이슬람 기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개의치 않고 일하던 상인, 도로 위의 수많은 운전기사들도 오로조 기간에는 기도 시간이 되면 사원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볼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로조 기간 동안의 수도 비쉬켁의 대로와 시장은 매우 한산하다.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중심 키르기즈스탄
현재 키르키즈스탄은 작년부터 시작된 아탐바예바 대통령의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SCO(상하이협력기구) 국가와의 적극적인 외교 또한 한국, 일본 등 선진국 순방을 통한 국가사업 벤치마킹 등으로 지금 대외적으로 분주한 오로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대내적으로는 이슬람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로 분주하다. 올해 초, 현지 신문은 키르기즈스탄 수도 비쉬켁이 ‘이슬람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2년여 전 공사를 시작했던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사원의 완공이 가까워졌다는 소식도 보도되었는데 아래 사진에서처럼 기존의 중앙사원보다 3~4배는 족히 넘어서는 크기의 새로운 중앙사원이 공사 완성 단계에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비쉬켁 내 터키재단 대학교는 캠퍼스 안에 3-4층짜리 대형 이슬람사원을, 또한 키르기즈스탄의 나른이라는 도시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대학교가 공사 중에 있다.
이렇듯 현재 키르기즈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나아가 세계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위해 터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1년 독립 이후 유혈충돌을 동반한 몇 번의 혁명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길을 찾기 위해 분주해 보였던 키르기즈스탄이 이슬람을 매개로 민족 공동체성을 결집하려는 움직임도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천혜의 자연을 매개로 한 관광산업 이외에는 국가산업기반이나 지하자원이 부족한 키르기즈스탄이 이슬람을 통해 내부적으로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 발전을 이루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의 결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