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문 효자각은 교동인(喬桐人) 인구문의 효행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건립한 효자각이다.효자 구문은 나면서부터 자질이 뛰어났고 권참봉(權參奉) 경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가례(家禮)에 따라 제례(祭禮)를 다하였고 예(禮)에 넘칠 정도로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으며 묘소 옆에 여막을 지어 시묘 3년을 하루 같이 곡을 하니 산천초목과 짐승들도 감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3년 시묘는 마쳤으나 애통함을 금할 수 없어 묘소 옆에 영모제(永慕劑)를 지어 거처하면서 25년간을 한결 같이 상복을 벗지 않고 있다가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감 이후(李候)는 그가 지은 영모제에 찬시(讚詩) 및 쌀과 고기를 보내어 효자를 돕게 한 일도 있었다.
1870년(고종 7년)에 명정(銘旌)되어 1904년(광무 8)에 효자각을 건립하였으며 1978년 군비로 보수 정화하였다
효자각은 맛배건물로서 4방 한칸 짜리이다.
익공 주두(柱頭)에 처마는 겹치마이고 벽체 하방은 회벽, 상부는 홍살이라 각내에 2개의 편액을 걸었다.
縣板: 孝子 學生 印龜文之閣, 上之七年 庚午命旌 印孝子 行蹟記
현판: 효자 학생 인구문지각, 상지칠년 경오명정 인효자 행적기
由來: 1870년(高宗 7) 命旌 1904년(光武 8) 孝子閣 建立 1978년 補修淨化
유래: 1870년(고종 7) 명정 1904년(광무 8) 효자각 건립 1978년 보수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