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의 기도
오정희(실비아) / 소설가
어느덧 4월이다. 햇살은 따뜻하고 양명하니 온 누리가 무거운 잠에서 깨어나 환한 등불을 밝혀드는 것과 같다. 추위와 어둠에 움추려 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모습을 드러내고 풀과 꽃들이 돌림노래 부르듯 차례로 피어난다. 봄이 마흔 살이 넘는 사람들 한테도 온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일찍이 금아 피천득 선생께서는 말씀하셨다. 거칠고 무디어진 마음과 감각을 신선한 경이로움과 따사로움으로 열어주는 봄의 고마움과 상찬이자 우리 나날의 삶이 바로 기적이라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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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각으로 오는 봄은 언제나 사순시기로부터 비롯된다. 그늘진 곳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고 바람은 맵차지만 그 안에 이미 연한 봄눈이 숨어 있음을,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사순절이 시작되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거쳐 수난과 고통, 마침내 부활에 이르는 시간은 장중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마침내 터져 나오는 기쁨과 환희로 절정을 이루는 교향곡의 진행과도 같다.
나는 이번 사순시기를 맞으면서 금육과 금식과 자선 희생 등 신자의 의무 외에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두 가지 소원을 세웠다. 첫 번째는 기도하는 삶, 기도의 힘을 믿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습관적으로 무감각하게 살아간다면, 이미 많은 시간을 지나버린 내게 앞으로의 하루하루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될 뿐일 거라는 각성과 이제부터라도 진정 새로워지고 싶다는 소망의 간절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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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도는 엄마가 죽지 않게 해 달라는 것과 집에 불이 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심청이 같은 효녀가 되고 착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보이지 않는 누구에겐가, 무엇에겐가 맹세를 하곤 했다. 고통과 불안, 절망까지도 화려한 청춘 시절에는 고독 속에서 강인해지기를 원했고 아이에게 젖을 불릴 때면 아이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이 세상에서 굶주리거나 버림받는 아이들이 없기를 아픈 마음으로 기도했다. 병들었을 때는 나 자신과 더불어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가여워 눈물짓기도 했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으는 기도의 습관은 익히지 못하면서도 맥아더의 기도문, 프란시스 잠의 기도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17세기 어느 수녀님의 기도문 등을 걸어놓고 산 것은 나름대로 내 본연의 자리, 선함의 지향점을 잃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안간힘일지 모른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갈구하고 번민했던 나날들이 나름대로의 기도였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져보자면 소망과 바람이라기보다 욕망과 집착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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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도문은 아름답고 절실하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맑은 물의 언어이고 불꽃의 갈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도'라는 단어는 참회와 성찰과 소망과 꿈을 깊고 넓게 하나로 아우른다.
기도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내가 원한 것은 가장 깊은 내면의 자신과 만나는 일이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성찰의 구체적 방법으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극히 소박한 언어로 나 자신을 '당신' 때로 '그녀'라고 칭하며 이 세상을 지나가는, 허약하게 비틀대고 때로 터무니없이 우쭐대는가 하면 갈가리 찢어지고 흩어지는 마음에 아파하는 사람의 삶을, 연대기를 적어 나갔다.
'네가 섭취하는 음식의 힘으로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네가 어떤 인간인지 말해 줄 수 있다.'라는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은 때때로 늑대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자주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그 소설 속에 들어 있던 구절이라고 기억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생의 환기'를 위해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거나 피정 형식으로 내면 깊이 침잠하는 묵상 시간을 갖는다. 내가 부활절 아침, 하느님께 내놓을 진술서 역시 그러한 것일 게다. 너무 많이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인 나를 주님께 봉헌하고 새로워지고 싶은 것이다. ♣
- 야곱의 우물(2010.4월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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