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만정맥-화산1지맥의 완주 봉림산鳳林山(309m)
후백제의 고찰 봉림사 터와 조선의 봉수대를 품은 산
새만금일보 ㅣ 기사입력 2015/12/21 [08:59]
▶개요와 자연경관
기린봉이라는 별칭을 가진 봉림산은 옛적에 봉림마을과 후백제의 고찰 봉림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리고 기린봉은 화산면 종리 동쪽에 있는 기린마을에서 취한 이름이다.
▲ 삼기정 © 새만금일보
최근 후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봉림사 터에서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산행 들머리인 17번국도와 732번, 643번 도로가 지나는 고산 삼거리에는 봉림주유소와 삼기정이 자리잡고 있다. 삼기정 앞에는 <봉림산 안내도>가 설치됐는데 봉림산(기린봉)이나 기린봉수에 대한 설명이 한마디도 없다.
▲ 안내도 © 새만금일보
<한국지명총람>으로 살펴본 삼기면 봉림산 주변의 지명은 이렇다. 삼기면三奇面은 본디 북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폐합 때 전삼, 수삼, 백현, 봉림, 전송, 외하 일부와 동하면 기린, 등암리를 병합해서 삼기정의 이름을 따서 삼기면 삼기리가 되었다가 1935년 고산면에 편입되었다. 화산면 종리 동쪽에 있는 기린봉은 기린麒麟마을에서 취한이름으로 일명 각씨봉, 봉림산으로 불리며 고산면 삼기리와 운주면 경천리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 봉림산, 기린봉306m © 새만금일보
하지만 실제로 이산을 산행해보면 각씨봉(옥녀봉)과 안산(옥녀봉)은 봉림산(기린봉) 산줄기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별개의 산임을 알 수 있다. 봉림산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어 남쪽 안수봉수대, 북쪽 죽림봉수(봉수대산)에 응했다. 하삼기에 있었던 북하면 터는 본디 고산군 북쪽에 있으므로 북면이었으나 위아래로 갈라서 북하면은 20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궁평의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리고 동하면과 폐합하여 삼기정의 이름을 따서 삼기면이 되었다가 고산면에 편입되었다. 화산면 종리 마안馬鞍은 고산면 북하면 지역으로 마루를 종리라하였다. 1914년 용동, 번데기, 농상, 농하, 궁명리와 동하면 어덕리 일부를 병합 종리라해서 삼기면이 되었다가 1935년 화산면이 되었다.
봉림산 산줄기 북쪽 끝자락의 각씨봉과 안산자락에 있는 마안馬鞍마을은 질마재 즉 말안장 형상이라 질마재로 불리며, 사농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경표山經表>의 우리전통지리로 고찰해본 봉림산의 산줄기는 이렇다.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쪽으로 뻗어가며 장안산,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천상데미,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면 완주.진안의 경계인 주화산에서 두 갈래를 친다.
주화산에서 남으로 호남정맥을 보내놓고, 금남정맥이 북쪽으로 달리며 입봉. 연석산. 운장산(주줄산) 서봉. 장군봉. 싸리재를 지나 금만봉에서 또 다시 두 갈래를 친다. 동쪽으로 산경표 금남정맥이 뻗어가며 대둔산, 계룡산, 부여의 부소산으로 뻗어간다. 금만정맥은 금만봉에서 서북으로 방향을 틀어 좌측에 만경강, 우측에 금강을 가르며, 왕사봉을 지나 남쪽으로 운암산줄기를 나누고, 칠백이고지에서 곧바로 남쪽으로 봉수대산 줄기를 나눈다.
그리고 칠백이고지에서 금만정맥은 서쪽으로 달리며, 우측(남쪽)에 농기구처럼 멋진 암봉으로 이루어진 선녀남봉, 불명산(427.6), 작봉산(418.2), 까치봉(456), 옥녀봉(410.4), 함박봉(403.0) 천호산(500.2), 용화산(342.0), 미륵산(430.2), 석불리, 23번국도, 함라산어깨, 용화산, 망해산(230.3), 취성산(205.0), 용천산(141.0)을 지나 오성산(227.7)어깨, 709번도로, 돌산, 요동산을 거쳐 금강하구둑에 이른다. 그러나 금강하구둑이 없었다면 이 정맥은 대명산, 고봉산, 대초산, 용화산, 청암산, 금성산, 장계산 방향으로 가야한다.
봉림산의 물줄기는 고산천을 통하여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봉수대산 산줄기는 중간에서 두 갈래를 친 뒤 남쪽 고산에는 봉림산, 북쪽에는 화산면과 경천면의 경계에 각씨봉, 안산(옥녀봉)을 이르킨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고산면과 화산면 경계다.
[삼기정]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삼기정은 세종 21년(1439)에 율헌 최득지崔得之가 세웠다. 세종 4년(1422) 하연河演이 전라관찰사로 부임해서 고산현 동쪽 5리쯤에 있는 자그마한 언덕에 오르니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아래 긴 시내가 맑게 굽어 흐르고, 그 위에는 노송이 울창하여 푸르렀으며 서쪽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 있었다. 이에 수석과 송림, 냇가가 범상치 않다 하여 깎은 나무에 삼기三奇라는 글씨를 써주었다. 그 뒤 최득지가 고산현감이 되어 1439년 정자를 건립하면서 삼기정三奇亭이라했다. 하연에게 정자의 기문을 써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하연은 자신이 지은 이름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삼기정기(三奇亭記)를 지어주었다. 삼기정은 오랜 세월 동안 퇴락과 중수를 거듭해오다가 1990년에 복원되었다. 정자 내부에는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기우만奇宇萬이 1912년에 글씨를 쓴 하연의 <삼기정기>와 강암 송성용이 쓴 삼기정三奇亭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 옆으로는 중랑장공파, 소윤공파 후손들이 고종 12년(1875)에 세운 삼기정유허비가 있다. 지금은 삼기정을 세운 언덕 아래로 푸르게 흘렀다는 냇가와 노송이 사라지고 없다.
▲산행길잡이
o 1코스: 고산삼거리-삼기정-말바위-오씨묘소-행글라이딩 활공장-봉림산(기린봉 봉수대)-봉수대산갈림길-각씨봉-큰재-안산 옥녀봉(성 산성)-종리 마안마을(4.9km, 2시간30분)
고산삼거리 봉림주유소 건너 폐가 옆에는 아름다웠던 자연경관과 옛 영화를 잃어버린 삼기정이 쓸쓸이 서 있다. 삼기정 북쪽 잡목사이로 등산길이 이어진다.
▲ 오씨묘소에서 본 삼기 © 새만금일보
작은 바위를 지나면 양쪽이 도로다. 서쪽은 고산-운주, 동쪽은 고산삼거리-동상을 잇는 도로다. 잘록이를 지나 낙안오씨 묘소다. 뒤돌아보면 고산 들녁과 안수산이 다가온다. 암벽지대를 오르면 너럭바위에 소나무가 있다는 의미로 석송바위라는 팻말을 세워 놓았다.
▲ 석송바위 © 새만금일보
하지만 <한국지명총람>이나 안내판에는 말 바위로 나와 있다. 안수산과 화산면의 산들이 한눈에 잡히는 환상적인 조망대다. 산줄기 양쪽이 절벽이라서 천혜의 요새지를 걷는 기분이다. 송림을 오르면 행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완만한 능선에 이어 잘록이를 지나 또 다시 된비알을 치면 기린봉화대란 팻말과 삼각점(전주306)이 있는 봉림산 정상이다. 기린봉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옛적에 기린봉수대가 있었던 석축이 쌓여있다.
▲ 기린봉 봉화대 © 새만금일보
산줄기가 뚝 떨어졌다가 잘록이에서 다시 오름길이다. 노란 솔가루 양탄자 길을 걸으면 발이 무척 편하다. 양쪽 도로 사이로 산줄기가 이어지며 산줄기가 된비알을 치고 나면 잡목구간이 시작된다. 경천저수지가 북쪽으로 보이고 산줄기가 운주로 가는 17번 국도를 따라간다. 산등성이를 내려가면 잘록이에 서쪽과 동쪽으로 가는 하산길이 있다. 완만한 길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면 고산. 화산. 경천 갈림길이라는 팻말이 있는 삼거리다. 이곳에서 동쪽은 죽림봉수가 있었던 봉수대산을 지나 금만정맥 칠백이고지 옆으로 이어진다. 큰재-각씨봉(옥녀봉)을 거쳐 성터와 돌탑이 있는 안산(옥녀봉)까지는 1.8km이고 35분쯤 걸린다. 안산 옥녀봉에서 하산로는 북쪽은 민들레동산(1.2km), 동쪽은 농촌사랑학교(0.8km), 서쪽 마안마을(0.9km)이다.
▲ 전망바위에서 본 안수산 © 새만금일보
▶ 교통안내
[드라이브]
o 전주-(17번국도)고산-고산삼거리-화산면 종리 마안마을
[대중교통]
o 전주-고산: 시내버스 수시운행/ o 고산-고산삼거리-마안마을 앞 군내버스 운행
/김정길 <객원기자, 전북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