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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완도愛 가보자 |
슬로시티에서 명사십리까지 사계절 여행지 각광 |
입력시간 : 2012. 06.29. 00:00 |
전복·김·해산물에 장보고·윤선도·최경주 자취
옛길 고스란히 남아있는 생일도 '강력히 추천'
완도, 훌쩍 떠나고 싶은 여름 여행지이다.
비취색이 검푸르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색상을 만들어 내고, 더구나 청청해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웰빙여행지라서 그럴까.
아니 이제부터는 사계절 여행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봄에는 청산도 슬로시티 갯내음 풍기는 갯길을, 여름에는 명사십리로 유명한 신지 백사장을, 가을에는 예송리의 송림과 깻돌 해변에서 센치멘탈 감성속의 고산 윤선도의 채취를 만나는 보길도를, 차가운 겨울 삭풍보다는 남쪽의 따사한 온기가 느껴지는 겨울나기 여행의 백미가 있는 완도를 가보자.
완도하면 전복과, 생선 그리고 해초류인 김, 다시마, 미역, 톳 등이 있으며, 인물로는 장보고, 윤선도, 골프스타 최경주와 몇 해 전 방송극 인기 드라마 '해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숫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해신'의 주제는 장보고 대사의 일대기를 극화한 사극이다. 그는 통일신라의 중앙집권을 노리는 귀족들에 의해 846년 염장의 비수에 죽임을 당하며, 그의 해상제국 꿈도 허무하게 사라진다.
필자는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유명한 말레카(Melaka)를 여행 하였다. 14세기 말 수마트라 섬을 지배했던 마자파히트 왕국의 군대에 쫓겨 말레이시아로 피신 온 귀족 파라메스바라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페낭의 조지타운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왜 필자가 말레이시아 말레카를 이야기 할까? 그것은 말레카란 도시가 완도와 비슷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말레카에는 정화(鄭和 1391~1435 Admiral Cheng Ho)란 인물이 있고, 완도에는 장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말레카 항구도시 전체가 정화와 연관되어 있다. 정화 그는 누구인가. 윈난성(雲南省) 쿤양(毘陽) 출신으로 명나라 성조 영락제 때 시작된 남해(南海) 원정의 총지휘관이다. 정화가 지휘한 명나라 세력의 인도양 진출은 1492년 콜럼버스, 1497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양 도달보다 80∼9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그럼 장보고 대사와는 약 500여년의 시차가 있다. 필자의 생각이 좀 앞서가는 생각일까. 장보고의 무역은 일본과 당나라 까지 해상권을 장악하며 교역 하였고, 또한 삼각무역을 하면서, 분명 그 당시 인도양 까지 교역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된다.
또 다른 추론을 접하면 장보고 대사도 정화처럼 많은 업적은 아니어도, 그도 정화와 같은 사상을 추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말레카나, 우리의 꿈인 해상왕국을 건설 하려는 장보고대사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완도의 상징적 인물인 장보고 대사를 트렌드로 관광 마케팅에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구름이 발아래 있다는 백운산(483m)이 있는 생일도. 그 곳을 가는 길은 2가지다.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거쳐 송곡리에서 고금면으로 가는 선편을 이용하여 고금 경유 약산면 당목항에서 금일도, 생일도로 가는 길이 있고, 또 다른 방법은 강진 마량을 경유 고금대교를 지나 당목항으로, 육지에서 가는 경우 후자편이 훨씬 편리하다.
필자는 생일도를 갈 때는 완도를 경유하는 코스를, 나올 때는 강진을 경유하였다. 참 다행스런 것은 광주버스터미날에서 당목항까지 가는 버스편이 있으며, 당목항에서 광주까지 오는 버스가 마지막 뱃시간과 연결돼 손쉽게 여행 할 수 있다.
당목항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은 광주에서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교통편이 많이 있는 고금까지 가서 고금에서 당목항까지 군내버스를 이용하여도 된다.
당목항에서 금일도 다니는 배편을 수시로 있으나, 생일도 다니는 배편은 2시간에 1번꼴로 있다.
이번 여행길에 길동무 해준 친구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왜 생일도는 배가 몇 차례 없냐고. 참 난감한 질문이다.
그래서 명답(?)을 했다. “생일은 일 년에 한번 있고, 금일은 날마다 있다. 또 내일도 금일이다. 그래서 금일은 틈틈이 배가 오고, 생일은 일 년에 단 한번이라 선편이 드문드문 온다.”
그 친구 멍하니 내 얼굴 쳐다본다. 한바탕 웃고 말았다.
친구 또 질문을 한다. 왜 생일도이냐고.
“친구 궁금하면 그 섬에 가서 보면 된다네.”
한마디로 요약했다.
섬 이름부터 색다르다. 섬에 도착한 친구는 선착장에서 “아하∼ 요거구나”라고 외친다.
선착장 객선 대합실 옥상에는 큼직한 생일 케이크가 장식 되어 있다. 날마다 생일잔치 분위기다. “어이 친구, 그래서 생일도(生日島)라네”라고 그 친구에게 한마디 던진다.
1700년대 백운산 해안가에 주민들이 왜구와 해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성을 쌓았다. 남쪽의 해안가는 천해 요새로 적을 막아냈는데 최고 위치였다. 지금은 백운산 남쪽 끝자락 해안가로 봉선리와 금곡리를 다니던 금머리 갯길이 있다. 그 길을 걸어보면 꽤 긴 성터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발을 헛디디면 바로 수십 미터 낭떠러지 뒹굴어 바다로 입수된다.
봉선리 동네이름은 행정명이며, 원 이름은 용출리다. 이곳은 동남향으로 양지바른 백운산 자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구릉지대이며, 조선 선조 때에 군마를 기르는 목장이 설치되어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식솔들이 거주하였다는 이야기 전해 온다.
마을 앞 갯가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깻돌밭이 파도의 물결에 따라 들려오는 돌멩이 부딪침 소리를 낸다. 환상의 하모니다. 주변은 바다낚시터로 유명하여 많은 낚시가족이 즐겨 찾아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꽤 북적인다.
건너편 섬 덕우도는 전복 양식장으로 청정해역에서 생산된 해조류를 섭취하여 최고의 품질로 생산되는 전복으로 알려져 있다.
용출리마을 어귀뒷산으로 오르면 온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집터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 시절에 좁은 산 비탈길에 집을 짓고 어떻게 살았을까. 깍진 경사로, 좁은 논둑길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들을 가르쳤던 부모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부터 어촌의 전형적인 돌담의 흔적과 안방에서 바다의 전망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어촌의 집터들이 지금은 흔적으로 남아 있어 옛 집을 상상하는 옛길의 길목이다.
옛길을 걷다보면 산에다 방목한 염소랑 소를 만난다. 그리고 곳곳에 몇 십 년이 넘었을 것 같은 묵은 논들이 보이고, 곳곳에 작은 옹달샘들이 있으나 염소 녀석들이 곳곳에 실례를 범해 마시는 물로 안 된다.
근래 다녀본 옛길 중 낭만과 정취가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곳이 생일도 길이다. 걷다보면 툭 튀어나온 돌출된 곳이 금머리로 전망은 좋으나, 관망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좀 아쉽다. 여기서 바라보는 남해의 비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금곡리의 아름다운 금빛 모래가 반짝인다.
금곡리. 최초에 마을로 이사 온 선조께서 마을의 돌이 금으로 보여 동네 이름을 샛금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실제로 이곳에서 금을 체굴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뒷산에 약수터가 있는데, 처음 정착할 때 판 샘터로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산신령이 나타나 이 샘이 세 번 마르면 지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일러줬는데 지금까지 꼭 두 번이 말랐다고 이야기 한다. 한번은 1910년의 경술국치이고, 또 한 번은 1950년의 한국전쟁 이란다. 그다음은 언제일까 궁금해진다.
금머리 갯길은 중간 중간에 옛 성터의 돌길을 걷다보면 발목을 상할 우려가 있어 가능하면 등산화를 신고 걷는 게 좋다. 중간 중간 숲길이 있어 상쾌한 기분과 바닷가의 해풍에 올라온 오존이 정신마저 클리닝 해준다. 소요시간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그 외에도 ▲학서암 가는길 : 서성항 – 학서암(1.1km), ▲백운산 능선길 : 학서암 입구 - 테마공원 입구(1.9km), ▲굴전 나들길 : 테마공원 입구 - 한들수산 입구(3. 6km), ▲당숲 쉬엄길 : 당숲 - 굴전 나들길 삼거리(1.0km), ▲용출봉 길 : 테마공원 입구 - 금거리 갯길 삼거리(1.9km) 등이 있다. 곳곳에 생일도를 걷는 옛길들이 있어 들러 볼 만하다.
생일도는 전국 최고에 품질로 쳐주는 다시마의 고장이다. 그래서 다시마 철이면 집에 있는 강아지 다시마를 물어다 말린다고 한다.
2~3m씩 자락 생 다시마를 바다에서 채취하여 초여름의 햇살이 다시마의 품질을 좌우 한단다. 하루에 200∼300만 원 벌이라서 쉴 새가 없다. 낼 모레가 여동생 결혼인데 가족들은 식장인 서울 가고 오빠만 이 날도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다시마 작업을 한다.
일손이 부족해 어촌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몫을 톡톡히 한다. 참으로 큰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맙다. 선박을 타고 나가 채취하고, 또 말리고, 수거하고 참으로 고맙다. 필자도 한나절 해봤더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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