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6789947563C12490C)
| | 김경호 목사 울산북부교회 담임 2013울산기독교연합회장 굿뉴스울산 고문 |
7월7일부터 11까지의 견학배경은 프랑스와 종교개혁자 칼빈이 목회한 교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Strasbotg) 라는 도시이다. 이곳을 목적지로 하고 벨기에서 약4시간 승용차를 타고 파리의 중간지점인 에트레나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들이 자연 환경의 모습 그대로를 그림으로 연출해서 더욱 유명해진 작은 도시이다. 에트레나에 도착하자마자 깩 깩 깩 바다 갈매기 소리로 마을을 뒤덮었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사람이 사는 집에 가까이 하면서 먹이를 얻기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에트레나 마을앞 바다는 마치 바다를 가슴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왼쪽 코끼리 모습의 바위가 바다 깊은 곳까지 꼭 같은 길이의 바윗돌로 방파제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하룻밤을 지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파리를 향하였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진입하자 도로비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했으며 터널과도 같은 긴 길을 지나니 파리시를 들어가는 입구에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대승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개선문이 보인다. 개선문에 얽힌 일화가 있다.
승리하고 돌아온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전쟁 중에 전사한 자들의 주소를 모두 찾아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단 한 병사는 주소를 도무지 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이 무명의 병사시신을 개선문 밑에다 묻고 장례를 치루어 주었다고 한다. 개선문에서 기념식을 할 때마다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무명의 병사를 추모하고 기념식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승리를 기념하고자 세운 개선문을 보지도 못하고 세인트 헤르나 섬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파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개혁지인 스트라스부르(Strasbotg) 에 도착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botg)의 그랑딜(gtande-lle)은 1988년부터 세계 인류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도시다. 스트라스부르는 역사 속에서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역사 유적지를 잘 보존한 도시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일명 노트르담 대성당은 높이가 142m로 19세기까지 가장 높은 성당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스트라스부르에 여장을 풀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밤에 찾았다. 사림들은 웅장한 대성당의 광장에 모여 있었고 밤9시30분 경 성당 측면으로 조명을 비추며 영상이 나타났다. 그것을 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 틈에 앉아 같이 관람했다. 성당측면 전체가 화면이 되어 특별한 조명을 쏘아 불꽃쇼와 같은 화려한 영상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역사를 수록한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칼빈은 종교개혁의 의지를 키우며 스위스를 오가며 개혁운동을 했다. 쿠텐베르크의 성경을 인쇄출판한 그의 동상을 볼 수 있었고 스위스에서 쫓겨나 스트라스부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도우며 목회한 교회당도 볼 수 있었다. 칼빈이 목회할 당시 신도수는 500여명이었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16세기 마르틴 부써가 종교개혁을 했는데 그가 도미니칸 수도사로 있었으나 마르틴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매료되어 종교개혁에 동참했다고 한다. 마르틴 부써는 스트라스부르에서 독일 남부 종교개혁을 진두지휘했고 이후 교회연합 운동 선구자로 활동하며 영국 종교개혁을 돕다가 캠브리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최고 높이의 거대한 성당이 보이는 곳에서 스위스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오가며 개혁운동을 거침없이 이루어간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의 터전이요 신앙 정신이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