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을 전하는 ‘기쁨’
감격의 ‘마음’이야말로 소중
수희공덕 - ‘수희(隨喜)하면 ’공덕‘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신심해 가면 그만큼 대공덕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이야말로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왕 할 바에는 ‘싫어, 싫어’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는 쪽이 이득입니다(웃음).
무슨 일이든 ‘에이! 또 그건가. 싫은데’라고 생각하며 하는가. ‘좋다. 또 복운을 쌓자’라고 용기를 내어 가는가. 이 작은 일념의 차이가 결국 커다란 차이로 되고 만다.
수희공덕품에서는 용기를 내어 남에게 신심을 권하는 ‘대공덕’을 정확히 문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8E84D564E9E3822)
오십전전(五十展轉)의 공덕은 절대
수희공덕품에서는 유명한 ‘오십전전(五十展轉)’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을 실제로 실천해 온 것도 창가학회입니다.
홍교라 해도 단순한 이론만이 아니라, 신앙의 ‘감격’과 ‘확신’, ‘환희’를 이야기해 가는 것이 근본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중략)
‘법화경의 일게(一偈)’를 듣고 라고 있는데 문저로 말하면 ‘南無妙法蓮華經’ 라는 뜻입니다. 어본존이라는 뜻입니다.
어본존의 이야기를 듣고 ‘굉장하다’ ‘훌륭하다’ ‘감사하다’ --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공덕이 있다.
하물며 기쁨에 넘쳐 어본존을 신수하고 힘닿는 데까지 묘법을 수력홍통(隨力弘通)하는 사람은 절대로 기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복운으로서 오지 않음이 없고, 원해서 소원 만족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한 문증입니다.
‘오십전전’ --.
대성인은 일생동안 한 번이라도 제목을 부르거나 또 제목소리를 듣고 기뻐하고, 다시 그 기쁨의 소리를 듣고 기뻐하고, 이렇게 해서 50번째가 되는 사람은 지혜제일의 사리불보다도, 문수보살이나 미륵보살과 같은 대보살보다도 백천만억배의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월수어서 1199쪽 취의)
‘자타 공히’ - 행복의 확대운동
사이토 : 실제로 좌담회 장소와 이웃에 사는 사람이 모두가 즐거워하는 소리를 듣고 입회했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엔도 : 니가타의 시라이 도크 씨(현의 부부인부장)의 댁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시라이 씨 댁은 오랫동안 좌담회 장소 등의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드나들고 있는 것을 이웃 아주머니가 줄곧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거기에서는 항상 낭랑하게 경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끝나면 꼭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아하하” 하고 정말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웬일인지 매번 8시 반이 되면 정확히 끝마친다(웃음). 그리고 30분 정도의 사이에 정말로 기뻐하며 모두 나간다.
이전에는 창 너머에서 부부 싸움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지금은 즐거운 소리만 들리고 아이들도 인사성 바르다는 주변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역시 창가학회는 힘이 있다. 이 어본존을 신앙해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라이 씨에게 입신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스다 : 요즈음은 학회원의 미소 띤 얼굴을 보고 자신도 멋진 미소를 짓고 싶다고 생각하여 입신하는 예가 늘고 있습니다.
엔도 : 이것도 시라이 씨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장년부는 좌담회에서 활동 보고를 하는데,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서 “굉장했다”는 한 마디밖에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얘기하려 했지만 도무지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끝까지 “굉장하다”는 말뿐이었던 것입니다.
뭐가 얼마나 굉장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웃음), 그래도 말할 수 없이 깊은 감동이 전달된다. 그래서 결국 그 모습을 보고 참가자가 입회한다.
지금까지 100세대 이상의 홍교를 해 온 시라이 씨의 결론도 확신과 환희,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SGI 회장 : 존귀한 모습입니다. 이렇게 이기주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뿐 아니라 남도 함께 행복하게 해 가자며 기원하고 노고하는 모습은 장엄합니다. 숭고합니다.
욕설을 들으면서도 오늘도 내일도 광선유포에 면려하고 있는 학회원은 참으로 지용의 보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모습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수희’라는 것을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희(喜)란 자타 공히 기뻐하는 것이니라”(어서 761쪽)
“자타 공히 지혜와 자비가 있음을 희(喜)라고 한다” (어서 761쪽)
자신도 타인도 함께입니다. ‘자기만’ 이어서는 이기주의입니다. ‘타인만’이라는 것은 위선이겠지요. 자신도 타인도 함께 행복하게 되어 가는 것이 참된 ‘환희’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타인까지 행복하게 해 가자는 것이 신심의 근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55년 10월31일. 본부간부회>
그 ‘행복’의 내용이 이 성훈에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지혜’와 ‘자비’입니다. 불계의 생명입니다.
지혜가 있어도 무자비라면 생명은 닫혀 있는 것이다. 또 그래서는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자비가 있어도 지혜가 없고 어리석다면 자신도 타인도 구제할 수 없다. 구제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자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사이토 : 양쪽 모두 필요합니다.
SGI 회장 : 그 양쪽이 오로지 ‘신심’의 이자(二字)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대성인은 “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 때 반드시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부처로 되는 것을 희(喜)라고 하느니라”(어서 761쪽) 라고 명쾌하게 밝히셨다.
이것이 바로 “환희중의 대환희”(어서 788쪽)인 것입니다.
사이토 : 자타함께 행복하게 된다. - 그것이 불법을 이야기해 가는 공덕이군요.
오십전전은 그러한 다이나믹한 ‘행복확대운동’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구 끝까지 묘법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전전(展轉)해 온 것이 창가학회입니다.
대성인은 ‘오십인(五十人)’이란 ‘일체중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십전전(五十展轉)이란 오(五)는 묘법(妙法)의 오자(五字)이며 십(十)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이고 전전(展轉)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교상(敎相)의 때는 제오십인(第五十人)의 수희(隨喜)의 공덕(功德)을 교량(校量)했으며 오십인(五十人)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말함이니라”(어서 799쪽)
<오십전전의 오란 묘법의 오자(五字)이다. 십은 십계의 중생을 말한다. 전전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다.
오십전전이란 경문의 표면상에 설하고 있는 내용에서 말하면 50번째 사람의 수희의 공덕의 크기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50명이란 일체중생을 말한다.>
묘법의 오자를 십계의 일체중생이 신수해 갈 때, 즉 ‘광선유포’해 갈 때, 거기에 ‘사(事)의 일념삼천’이 현현해 가는 것이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 법화경의 지혜 - ‘수희공덕품’ 에서
‘자타공히’ - 행복의 확대운동 (수희공덕품).hwp
첫댓글 감사히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