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8
한국사의 지정학적 역사 기술론과 독립 사관의 정초
나종혁
진로연구소 소장
한국사 연구의 쟁점은 민족학적(民族學的) 역사 기술(史記)과 지정학적(地政學的) 역사 기술 사이에서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의 방법론적 문제가 원론적 논쟁점이며, 또한 독립 사관(獨立史觀)과 식민 사관(植民史觀) 사이에서 올바른 사관을 확립하는 문제가 이론적 논쟁점이다.
이 글은 역사 기술의 문제에서 지정학적 역사 기술을 우선시하며, 사관의 문제에서는 독립 사관을 택한다. 우리도 이제는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서 독립 사관을 세울 때가 되었다고 보며, 한없이 떠도는 민족사의 난제는 지정학적 역사 기술로 분명히 할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전제하에서 지나치게 편중된 민족학적 역사 기술과 식민 사관에 따른 역사 기술을 지정학적 역사 기술과 독립 사관에 따라 비정(批正)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역사 기술의 비정은 다음과 같은 사례로 열거될 수 있다.
역사의 수수께끼―훈민정음은 최초의 한글 문자인가 한글 문자의 집대성인가
고조선은 한국사 최초의 고대 국가였다. 고조선은 단군 조선과 기자 조선 그리고 위만 조선으로 구분된다. 단군 조선은 기원전 2333년 무진년에 건국되었으며, 기원전 12세기 1100년경 멸했다. 기자 조선은 기원전 1100년경 건국해서 기원전 194년에 멸망했다. 위만 조선은 기원전 194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존속했다. 그러므로 단군, 기자, 위만을 아우르는 고조선 시대는 기원전 2333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2225년간 존속했다.
고조선 시대와 관련해서 몇 가지 잘못 알려진 역사 기록이 있어 바로 잡거나 비정되어야 한다.
첫째, 제례(祭禮) 문화가 중국이나 유가(儒家)에서 유래한 외래문화라는 지적은 잘못된 식민 사관이다. 제례는 고조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에서부터 한민족 고유의 핵심적인 문화였다. 단군 제례가 대표적인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이며, 단군이나 조상을 모신 사당에는 항상 온갖 날곡식을 오곡(五穀)으로 제단에 바치고 향불을 피웠다. 이러한 제례 문화는 고조선부터 삼한 시대,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둘째, 우리나라는 본래 문자가 없었고 말만 있었다는 주장도 잘못된 이론이다. 1443년 조선 시대 세종(世宗)조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1446년 반포되었다는 한글 문자 발명설은 한글 문자 집대성설로 이해되어야 한다. 세종은 신라 시대 설총(薛聰)이 그랬던 것처럼 한글의 발명가가 아니라 한글의 집대성자였다.
한글은 본래 고조선 시대에 고조선 시조 환웅(桓雄)조에 녹도 문자가 창제되었고, 고조선 시대 단군 조선 시대에 가림토 문자가 창제되어 우리나라 한글 최초의 문자로 발전했다. 조선 시대 세종조 훈민정음은 고조선 시대 녹도 문자와 가림토 문자의 발전 형태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원시 한글과 한글의 원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한글 문법의 집대성이다.
기원전 2333년경 고조선 시조 환웅이 관리 신지 혁덕(赫德)에게 고조선 문자의 창제를 명했으며, 그에 따라 사슴의 발자국을 모사해 녹도 문자를 창제했다. 또한 기원전 2181년 고조선 단군 조선 시대 단군 가륵(嘉勒)조에 삼랑 을보륵(乙普勒)에게 문자의 창제를 명했고, 그에 따라 오늘날 한글의 원형인 소리 글자 가림토 문자 38자를 창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본래 문자가 없었다거나 훈민정음이 최초의 한글 문자의 발명이라는 설은 잘못된 해석이며,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부터 태초에 문자가 녹도와 가림토로 창제되어 존재했으며, 훈민정음은 한글 문자의 발명이 아니라 집대성이다.
낙랑국인가 한사군인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중국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한반도 이북에서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까지 한나라에 의해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 고조선 이후 한사군 시대이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의 한반도 이북 최초 관할 통치설로서 중국의 식민 사관에 의거한 잘못된 역사 기록이다. 사실상, 고조선 멸 후, 한반도 이북에는 낙랑국이 건재했으며, 낙랑국 주변으로 소국들이 분열되어 있었고, 이들 4~5개의 소국들이 연맹체를 이루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한사군 시대가 아니라 낙랑 연맹체 시대로 구분되어야 한다. 한반도 이남에 가야 연맹체가 있었던 것처럼, 한반도 이북에는 낙랑 연맹체가 있었다.
기존의 식민 사관에 의거한 한사군 시대는 당시 대표적인 고조선 계승 국가였던 낙랑국의 한나라 낙랑군 지배로부터 시작한다. 기원전 107년부터 서기 404년까지 현도군, 기원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까지 낙랑군,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전 82년까지 임둔군,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전 82년까지 진번군, 서기 204년경부터 서기 314년까지 대방군이 있었다고 하며, 이들을 통칭해서 한사군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나라의 한사군 시대는 기원전 108년부터 서기 314년까지 한반도 이북에서, 그리고 기원전 107년부터 서기 404년까지 압록강 이북에서 존속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원전 107년부터 서기 404년까지를 한사군 시대라고 한다.
독립 사관에 근거하면, 고조선 멸망 후 고조선을 계승하는 낙랑국이 평양 부근에 존재했으며, 이 나라는 기원전 37년 고구려의 개국 이후까지 존속되었다. 서기 314년까지 존속되었던 낙랑군은 낙랑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해석된다. 이를 기준으로, 기원전 108년 고조선 이후 한반도 이북에는 기원전 37년 고구려 건국 이후에도 한반도 이북에 낙랑 연맹체가 존재했다. 낙랑 연맹체 시대(낙랑 시대)는 기원전 107년부터 서기 404년까지 297년간이다. 그러므로 한사군 시대는 낙랑 연맹체 시대로 비정된다.
설총은 이두의 창시자인가 집대성자인가
이두 문자는 무엇인가, 설총이 이두의 창시자인가 등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두 문자는 한문의 문자를 차용해서 한글의 발음을 표기하였으며, 삼국 시대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었던 중국 한문의 차용 문자이다. 이두 문자는 본래 설총이 발명했다는 이설이 있었으나, 신라 시대 665년 출생 설총 이전 신라 시대 무술년 518년 또는 578년의 「대구무술명오작비」가 발견되면서 설총은 이두 문자의 창시자가 아니라 이두 문자의 집대성자로 비정된 바가 있다.
발해(渤海)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이북의 국가인가
통일 신라 시대 한반도 이북을 지배했던 발해가 우리나라인가 이민족인가 이론이 있다. 이것은 발해를 단순히 중국의 북부 지역 국가로 보려는 식민 사관이거나 통일 신라 이북 지역을 한반도로 인정치 않으려는 지정학적 역사의 오류이다. 발해의 의문점과 관련해서 첫째,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로 구성되어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다.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 이북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부속 국가이다. 둘째, 발해에는 고유의 문자가 존재했는가에 대해서 여러 이론이 있으며, 근래에 공개된 “발해 팔련성 와당 명문”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한글 문자가 발해에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오랜 세월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던 발해의 의문들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을 기반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한반도의 국가였으며,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이북에 존재한 한반도 부속 국가였다. 또한 발해에는 발해 고유의 문자 또는 우리나라 문자가 존재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팔련성 와당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한글 문자가 있었다고 확인되었다.
대금인가 금나라인가
서기 698년부터 926년까지 한반도 이북에 존속했던 발해 시대가 끝나고, 고려 시대 한반도 이북에는 대금(大金) 시대가 서기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존속했다. 중국에서는 금(金)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금나라는 북송을 멸하고 남송과 치열하게 다퉜던 위협적인 북부 지역의 나라였다. 식민 사관의 시각에서 중국의 금나라가 한반도 이북에서 고려 시대에 통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립 사관의 시각에서는 공식 국호가 대금(大金)이었으며, 발해 시대가 멸하고 발해를 계승한 한반도 이북의 발해 유민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의 국가였다. 그러므로 중국의 금나라는 발해를 계승한 한반도 이북의 대금으로 비정되어야 한다.
대금 시대는 서기 1115년 태조 원년부터 1234년 애종 11년 말제(末帝) 원년까지 119년간이다. 대금 시대는 발해 출신 양박이 발해를 계승하는 대금(금나라)을 개국할 것을 권하여, 1115년 통일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로 추정되는 인물 신라인 금준(今俊) 완안함보(完顔函普)가 나이 60세에 고려 초 구신라 지역에서 탈출해서 발해를 계승하여 후발해 지역에서 대금의 시조가 되었다. 대금은 신라인 금함보를 시조로 그의 후손들이 10대에 걸쳐 통일 신라 시대 후고구려 지역 발해를 계승하여 고려 시대 후발해 지역 대금을 건국하고 1234년까지 119년간 존속했다. 대금은 발해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한반도 이북의 국가였으며, 동시에 발해 유민과 여진족을 주요 기반으로 해서 북송을 멸하고 남송을 위협했던 중국 북부의 나라였다.
조선의 멸망―1897년인가 1910년인가
조선 시대를 1392년 조선 건국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로 구분하는 것은 식민 사관에 의거한 잘못된 역사 기술이며, 조선 시대는 1392년 태조 1년 7월 17일 조선 건국부터 1897년 고종 34년 10월 12일 대한제국 건국 이전까지로 시대적 구분이 비정되어야 한다. 1897년에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하고 국왕을 황제로 개칭하며 연호를 광무(光武)로 내외에 선포한 이후로 조선 시대는 그 명운을 다했으며 대한제국 시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조선 시대는 1392년 태조 1년 7월 17일부터 1897년 고종 34년 10월 11일까지 505년 동안 존속되었다.
대한제국의 소멸―1910년인가 1919년인가
1897년 조선 멸망 이후를 구한말이나 조선 시대의 연장으로 모호하게 구분하던 시대 구분은 대한제국 시대로 비정되거나 정의되어야 한다. 대한제국 시대는 1897년 고종 34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순종 4년 8월 29일까지 13년간 존속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완전히 멸망하고, 순종이 황제에서 국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은 1926년까지 생존했으며, 비록 황제에서 국왕으로 강등되었어도 창덕궁에서 거처했다.
또한 대한제국 시대는 1897년 고종 34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순종 4년 8월 29일까지 13년간 존속되다 멸망한 것이 아니라,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대한임정 시대가 시작된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한제국 시대는 1897년부터 1910년까지로 끝난 것이 아니라 1897년부터 1919년까지 이어졌으며, 그러므로 대한제국 시대는 1897년 고종 34년 10월 12일부터 1919년 순종 13년 4월 10일까지 22년간으로 비정되어야 한다.
1910년~1919년―대한제국 시대인가 일제 강점기인가
1910년 이후 1945년까지를 일제 시대 또는 일제 강점기로 구분하는 시대 구분은 일제의 식민 사관에 의거한 잘못된 사관이며, 일제 강점기 이전과 일제 강점기는 대한제국 시대와 대한임정 시대로 비정되어야 한다.
1910년부터 1919년까지는 일제 시대 또는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로 비정되어야 한다. 대한제국은 조선이 멸망 한 후 1897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대한임정이 시작된 1919년까지 존속된 것으로 대한제국의 연속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1910년 경술국치부터 1919년 대한임정 수립까지는 대한제국 시대로 인정된다.
1919년~1945년―대한임정 시대인가 일제 강점기인가
1919년 4월 10일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 1945년 8•15해방 또는 일제 강점기의 소멸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대한임정 시대)로 비정되어야 한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까지 존속되었으며, 따라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는 1919년 4월 11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29년간 존속되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을 일제 강점기로 구분하던 것은 식민 사관의 가장 표본적인 사례에 다름이 아니며, 일제 35년은 1910년부터 1919년까지 대한제국 시대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임정 시대로 비정되어야 한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도 대한임정 시대에 속한다.
1910년 경술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본제국과 합병되어 대한제국이 완전히 멸망했다는 역사 기술이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을 일제 강점기라고 기록해 온 것은 식민 사관에 의거한 잘못된 역사 기술이다. 조선 시대부터 대한제국 시대와 대한임정 시대 그리고 대한민국 시대까지를 독립 사관에 근거해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1392년~1897년 조선 시대
1392년 태조 1년 7월 17일~1897년 고종 34년 10월 11일 조선 시대 505년
1897년~1919년 대한제국 시대
1897년 고종 34년 10월 12일~1919년 순종 13년 4월 10일 대한제국 시대 22년
1919년~1948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
1919년 대한임정 원년 4월 11일~1948년 대한임정 30년 8월 1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 29년
1948년~ 대한민국 시대
1948년 대한민국 31년 8월 15일~ 대한민국 시대
이상에서 한국사를 식민 사관과 독립 사관으로 나누어 독립 사관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자 했고, 또한 민족학적 역사 기술보다는 지정학적 역사 기술로 한국사의 폭을 넓히려고 시도했다.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적(史的) 연구로써, 과거와 동시에 현재를 반영하는 훌륭한 인본주의적(humanistic) 연구 내지 관련사적(關聯史的) 방법론이 되기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