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란 무엇인가? 혹은 실패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기술의 실패 분석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라는 헨리 페트로스키는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에서 우리 주변 일상 물건들의 실패를 다루었다. 그는 실패를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쓸모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물건을 사서 적응하며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 실패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문명이 진화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그래서 그는 “문명의 선진화는 그 자체의 실수와 결합을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역사”로 보았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우리 주변의 물건들의 실패의 역사와 개선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는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실패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성공했다면 아마도 인류의 운명,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을지도 모를, 그런 거대한 미완의 프로젝트들 말이다.
그가 다루고 있는 실패들은 잘 알려진 것도 있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황금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이라든가(1장),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혁명력(4장), 세계 공용어를 꿈꾸었던 자멘호프의 에스페란토어(5장), 사이버네틱스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지만 컴퓨터를 이용하여 계획 경제를 실현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시도(10장) 같은 것들은 비교적 잘 알려진 실패들이다. 아직까지도 완성되지 못한 보베 생 피에르 대성당이라든가(2장), 스페인 톨레드 시의 양수 시설(3장), 지중해를 메워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고자 했던 헤르만 죄르겔의 아틀란트로파(6장) 같은 것들은 사실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다. 이런 것들은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것을 계획했던 것이고, 그 시도가 이룩하고자 했던 것도 적어도 부정적인 것은 아닌, 이상을 추구했던 것이기에 제목대로 ‘위대한’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 이상적이지도 않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실패들도 다루고 있다. 그런 실패들은 원숭이와 인간의 교배를 시도했던 이바노프(7장), 과대망상에 빠져 광궤열차를 계획했던 히틀러(9장)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은 절대로 ‘위대한’ 실패라고 할 수는 없는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위대한 실패의 예로 세계보건기구의 소아마비 근절 프로젝트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실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례이며(100%가 아니라 99.5%라 실패인가), 아직도 시도 중인 것인데, 이것을 실패라고 한 것도 조금은 납득하기 어렵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책에서는 홍역을 최초로 지구상에서 퇴치시킨 사례로 소개하고 있는데, 천연두를 잘못 쓴 것인지, 잘못 번역한 것인지 분명 잘못 되었다).
그런데, 이 실패들이 위대한 것이었든,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든 이런 실패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거의 모든 역사는 성공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기록하지 않은 실패가 더 많은 교훈과 더 많은 아이디어를 줄 수가 있다. 구트레를레트는 “대실패작으로 결론나버렸다는 건, 오히려 좀 더 야심찬 아이디어였다는 반증은 아니었을까?”라고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데,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야심찬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없었더라면, 지구 상의 인류 역사는 너무나도 밋밋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역사의 발전이 후세의 상상력이나 호기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거대한 프로젝트만이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이들의 마음을 읽는 것은 시대를 앞서나갔던 이들의 이상을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들의 실패를 분석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너무 뻔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맨 끝에 이렇게 쓰고 있다.
“야심찬 계획의 마지막 역사는 실패도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그 실패에 얼마나 엄청난 선행이 담겨 있는지를 기록할 것이다. (중략) 낙담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334쪽)
이 말은 이 책에 실린 모든 실패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한국어판 서문에 쓴 “역사는 매혹적이며 스릴 넘치는 교훈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