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볶다
생두를 볶아대자
푸르던 시절이 다 지나갔다는 듯
검게 그을린 얼굴을 내밀며 열기가 가득이다
비릿한 발걸음이지만
그만큼 볶였으면 무슨 향기라도 낼 것이다
생두가 원두가 되는
성을 갈아 엎는 패륜의 시간이 지나면
낮은 자세로 뜨거운 세례를 받고
우리 이제 그만 죄를 뉘우치자
뜨거운 햇살 아래
빈곤한 손에게 지은 죄가 얼마인가
한 잔의 여유를 곁에 두고자
저렴한 생계를 끌고 온 사연은 또 얼마나 마실 것인가
절절하게 내려지는 물로
씻어도 사라지지 않고 퍼지는
가난한 햇살 한줌의 향기에 취한다
거르고 남은 찌꺼기는
후회하는 하루를 건조하며
슬프게도 끝까지 남아 버티며 굳어질 것이다
아프리카 어느 가난한 농장의
작은 심장이
뜨겁게 내 목젖을 따라 내려간다
설레임*
점선을 경계로 벗겨내는 포장지 같은 이별은 없어
자칫 한걸음의 어긋남이 아찔한
아,
눈을 감게 만들지
왼쪽으로 밥을 먹는 나는
같은 손으로 악수를 하고
가본 적 없는 인도에선 인사가 안 될 일
설명서를 읽지 못한 아이스크림은 두 손 가득히
어느 손도 양보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태양은 가득히 녹아내리는 나
먹는 손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너
갇힌 것 들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지
이별을 앞두고 단단해진 냉기가 차갑게 쏘아보고
떠난 이후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정박할 수 없어,
절박한 하루로 녹아 버리고
떠나는 순간 설렘을 기억해
얼지도 녹지도 않은 너의 어정쩡한 눈빛
다시 보고 싶어
길가에 두고 올까 고민하는 발걸음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먹듯
점선을 따라 걷지 않는
설레임 없는 하루
*원하는 만큼 취식 후 재보관할 수 있고, 내용물이 묻지 않는다는 장점과 빨리 먹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 치어팩 타입의 아이스크림.
홍철기_전북익산출생. 201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7년 시와표현으로 등단.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BBB3359DA16BD0F)
《시인정신 2017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