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세종 10년 무신(1428,선덕 3)
10월28일 (병오)
예조에서 경외의 효자·순손·절부를 찾아내어 아뢰다
전 녹사(錄事) 전충례(全忠禮)는, 아버지가 죽으매 거적자리에 토막을 베고, 다만 겨죽[糠粥]만을 먹고 좋은 음식을 맛보지 않았으며, 상기(喪期)를 마치매 신주(神主)를 받들고는 조석으로 제사하였고, 또 그 어머니를 섬김에 있어서도 그 뜻에 순종하고 어기지 않으며, 나갈 때에는 반드시 고하고 들어오면 반드시 나아가서 얼굴을 보이며, 아침저녁으로 문안과 잠자리를 보살폈고 질병이 있으면 약을 반드시 먼저 맛보는 등 이와 같이 하기를 노년에 이르도록 고치지 않았다 하옵니다.
世宗 42卷, 10年(1428 戊申 / 명 선덕(善德) 3年) 10月 28日(丙午) 6번째기사
예조에서 경외의 효자·순손·절부를 찾아내어 아뢰다
[原文]
○禮曹訪京外孝子順孫節婦以啓: “京城東部人幼學韓允雍, 大司成黃鉉女壻也。 性厚直, 父皐早歿, 事其母至孝, 晨而省, 午而問, 昏而定, 問衣燠寒, 隨節以供衣服。 一日三進母家, 雖雨雪不廢。 其侍側也, 溫言和色, 以安母志爲心。 或得珍味, 雖少必以饋母, 若有疾, 必嘗藥以進, 色憂達曙不寐。 中部人幼學李成蹊, 司直元之獨子也。 不離親側, 怡色柔聲, 出告反面, 晨昏定省, 不敢違志。 親得疾經年, 成蹊不食甘旨, 憂念不弛, 旁求藥餌, 盡誠治療。 二親連逝, 居憂六年, 一依《家禮》。 及返魂, 成影幀, 朝夕奉獻不怠, 薦新物以時, 誠孝至今如一。 家失火, 書籍貲産, 盡爲所燒, 先奉影幀以出, 俾免於火。 前錄事全忠禮, 父死, 寢苫枕塊, 唯歠糠粥, 不嘗美味。 喪畢, 奉神主, 朝夕必祭。 又事其母, 順志不違, 出告反面, 晨昏定省, 有疾則藥必先嘗, 如此至老不改。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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