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바시슈타요가를 배우면서 "나는 마음이 아니다"가 확고해졌습니다. 거대한 욕망을 가진 까르까띠를 읽으면서 내 속의 거대한 욕망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상함을 추구하면서 성자가 되고싶은 마음을 가진 나를 보았습니다. 또 반대로 슈찌까 비슈찌까처럼 저급하고 하찮은 그러면서 자존심 낮은 존재로 축소시켜 작게 만드는 나도 보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상반대는 두마음을 왔다갔다하며 그 마음을 못채워 허기져있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을 보고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이 마음도 저마음도 아님이 보여지고 알아졌습니다. 거대한 숲의 이야기 중에 "마음은 불완전한 깨우침을 경험하고는 적절한 이해도 없이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합니다. 그러한 포기는 슬픔의 근원임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포기가 완전한 이해로부터 그리고 마음의 본성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지혜로부터 생기는 경우, 그것은 궁극의 희열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동안 나의 포기가 그러했었습니다. 오해없이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이제는 무엇이 적절한 이해인지 알아야했습니다. 몇주간 적절한 이해를 질문으로 가지고 아쉬람에 가면 그때마다 스승님은 베단타 수업과 삿상을 통해 상세한 설명이 차츰 이해되어갔습니다. "나와 이것으로의 임의적 분리는 단지 외적인 나타남일 뿐입니다." 바시슈타님의 말씀이 금과 금반지의 비유처럼 내게 일어나는 마음이나 대상이에 대한 분리나 구분이 단지 외적인 나타남일뿐임이 이해되어 갑니다. 깨어있음, 꿈, 잠의 세 상태에대해 삼분의 일이라 스승님의 설명은 내가 꿈과 잠의 상태는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엄청나게 축소시키고 반대로 깨어있는 상태는 엄청 과장되게 보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 충격이였습니다. 제가 좀 많이 부끄럽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니다." 바시슈타 요가를 공부함으로 나는 마음이 아님이 확고해졌습니다. "참나를 의식하려고 노력함으로, 마음은 사고와 개념에 묶이게하지 않는자는 평화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바시슈타님은 말씀하셨고 나는 참나를 의식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