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롬8:31-39)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이 없지만, 그러나 종종 하나님의 사랑이 중단된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은 내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상황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텐데, 그 가운데 한 두 가지만 오늘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 언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진 것처럼 느끼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예배도 잘 드리고 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만일 우리가 죄를 지으면,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등장하는데요. 인류 첫 조상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 가운데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잘 살아가다가 어느 날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지만 사탄의 유혹에 이끌려서, 그 선악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짓을 한 것이죠. 그때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겁니다. 놀랍게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나타나는 그 모습을 보고 숨어버렸어요. 나무 사이로 숨어버렸어요.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단절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탄은 우리들의 마음을 향해서 자꾸만 정죄하고 우리들을 압박하는 거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죄책감이 우리를 무너지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33절 34절의 말씀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은, 우리가 완벽하거나 다른 사람들보다도 깨끗하고, 완벽하기에,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죄를 지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사람이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탐욕적인 생각들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의 방법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하나님 앞에 감히 나올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힘입어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고, 우리를 안아주시고 회복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이 주님의 말씀에 기억하고 담대하게 일어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고 그 사랑이 끊이지 않는 것인데, 그런데 그러한 사랑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의심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건져주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든 일이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해결을 안 해줘요. 능력이 없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능력이 있는 그 하나님께서 해결을 안 해줘요. 재정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우리 자녀들의 문제, 여러 가지 관계의 문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정말 견디기 어려운 그런 문제들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의심이 들 수가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고 하는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우리가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언제 느낄 수 있는가? “내가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언제 느낄 수 있는가? 5가지 사랑의 언어가 들려질 때,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는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는 긍정의 말이죠. 화내고 책망하고 비난하는 말을 하게 되면, “아,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느낄 겁니다. 하지만 칭찬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그리고 인정해주는 말을 하게 되면, “아,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실을, 아내가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느낀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는 의미 있는 시간을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같이 놀아주지는 않아요. “아빠, 이것 좀 해줘” 하는데, 아빠는 “저리 가. 나 시간 없어. 너는 네 할 일 해.”라고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함께해 주시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차도 마시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러면 과연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선물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정말 생일이라든가 이런 특별한 기념일뿐만이 아니라, 평상시에 아내를 생각해서, 남편을 생각해서,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그런 선물들을 조그마한 거라도 해준다고 한다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네 번째는 도와주는 것인데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것이죠. 아니,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자상하게 배려해서 도와줄 때, 이 사람이 나를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나에게 사랑해 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고 있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는 신체적인 접촉인데, 등을 두드려 준다거나 따뜻하게 손을 잡아준다거나, 아니면 안아준다든가, 여러 가지 따뜻한 신체적인 그런 접촉을 통해서 사랑을 느낀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하는데 응답을 해주지 않는 겁니다. 정말 이게 필요한데, 말하지 않아도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는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중단된 것처럼 느끼는 때는 언제냐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입니다. 정말 힘든 고난을 만났는데,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그러면 답답한 거죠.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인데요. 욥의 아내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끊어졌구나. 하나님은 관심이 없구나.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말을 해버린 겁니다.
나오미의 경우는 남편도 모압 땅에 가서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환영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오미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더 이상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오미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기쁨 즐거움 희락이라고 하는 말인데,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저는 저를 부를 때는 이제 “마라”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고통이다. 고난이다. 괴로움 당하고 있다고 하는 그런 모습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35절의 말씀 가운데서 해 주시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8-39절의 말씀 가운데 그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끊어지지 않는다, 중단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될 때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이어야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만,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는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폭군이 되는 것이고, 독재자가 되는 것이죠. 우리에게 아무런 사랑도 베풀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질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32절의 말씀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마저도 주시는 그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완벽한 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34절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죠.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고 능력으로 일으키시고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승리해 나가는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