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안동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과 이전 그리고 학령인구 감소로 끝내 파란의 현대사를 극복하지 못한 채 폐교가 된 도산국민학교. 이 도산골 학당에서 우리는 농암선생과 퇴계선생과 육사선생의 고매한 얼과 혼과 기상을 흠모하며 아름다운 정신문화를 유산처럼 물려받았다.
이제는 전설이 된 잃어버린 교가를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다시 찾아서 50여 년 만에 제모습을 단장시켜 바라보니 그 감회 감개무량하도다. 아~ 우리의 모교~ 그리운 도산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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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국민학교 교가]
이원주 작사ㆍ오동열 작곡
영지산 푸른 꿈 가슴에 심고
낙독강 유유한 힘을 받는다
아아 도산 성스럽고 거룩한 이땅
높으신뜻 기리이어 역사 빛내리
올바르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도산 착한어린이 나라의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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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21일. 도산서원 별유사로 계시는 이동채 선배님(54회 졸업생)께서 필자의 수필 "가을 깊은날 도산국민학교 가을운동회(1972)"를 읽으시고 그 옛날 교가 가사가 적혀 있는 원본을 보내주셨다. 교가를 작사하고 작곡하신 분의 존함까지도 들어있는 완벽한 것이었다. 필자가 완성된 가사로 옛 교가를 재현해서 불러 보았다(제일 아래 영상물 탑재).
♤도산국민학교 본관(토계 구교정)
♤도산국민학교 별관(토계 구교정)
♤도산국민학교 운동장(토계 구교정)
♤도산국민학교 단천 신교정과 주변의 가을 풍광(사진 중앙 파란 건물이 학교 모습이다)
♤도산국민학교 교가(가사 원본).
♤도산국민학교 로고(logo)
♤ 42년 전 1981년 도산국민학교 58회 졸업생들이 단천 신교정에서 가진 동창회 모습이다. 왼쪽 상단 "우리학급의자랑"이라는 글씨 아래 도산국민학교 로고(logo)가 선명히 보이고 있다. 동창회를 가진지 12년 후인 1993년3월1일 도산국민학교는 안동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지역 여파와 저출산 및 이농현상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됐다.
♤도산국민학교 교화(무궁화)
♤한국인이 사랑하는 청포도 시인이자, 일제가 두려워한 의열단 소속 독립운동가 육사 이원록 선생(1904~1944)은 도산공립보통학교(도산국민학교 전신) 제1회 졸업생(1919년)이었다. 청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도산골 원촌마실에서 육사는 목가적이고도 웅혼한 시상을 떠올렸으리라. 그리고 청랭하고 수려한 갈선대 위에서는 광야를 달리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거친 꿈을 품었으리라.
황량한 시대에 선각자의 삶은 고달프고 처연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조국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북경 감옥에서 순국(1944.1.16. 새벽 5시: 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한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사진 설명: 위 기사는 조선일보(2022.2.3.목.A22)에 나온 육사 선생 이야기다. 지면 속에 아래 사진은 1934년 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모습이고 위 사진은 1941년 북경으로 가기 전 친척과 친구들에게 준 증명사진으로 알려지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16대 종손이신 이근필 교장 선생님과 필자의 58회 동창인 미영이 아버님인 임대호 교감 선생님의 모습(1972)
♤도산국민학교 그리운 옛 은사님들(1960~1977)
♤도산국민학교 1977년 58회 졸업 사진(필자의 동창들과 은사님들. 단천으로 이건한 신교정에서 첫 졸업식을 가졌다)
♤수몰 전 도산국민학교 구교정이 자리했던 토계 번화가 스케치 맵 전경(2022.1.1 필자가 그렸다)
♤도산국민학교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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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교가 가사를 우여곡절 끝에 찾아서 여러번 부른 후 완성시킨 교가이다. 아내 김영아 선생이 연주하고 필자가 노래를 불렀다.
첫댓글
애교 애향하는 마음 정말 대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