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바울서신은 그의 서신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그러나 각 성도의 삶의 상황에서 어떻게 말씀을 적용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복음안에서 이러한 삶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신서를 보면서 바울사도의 권면을 듣고서 잘하고 있는 일이라면 계속하여 격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하고 있는 일이라면 시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바울의 말이 아니라 주의 사도로서 한 말이기에 곧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12-13절의 말씀에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가르치는 자들을 알아주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모든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의 내용들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보시기 전에 교회가 무엇인지 먼저 보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4:11-16절을 봅니다.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그러므로 이르기를 ㄱ)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1)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2)사랑 안에서 3)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주의 백성들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에 의하면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르심을 입어 나온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머리란 모든 지시를 내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각자에게 은사를 허락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대적을 성문을 깨트려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모두 마귀의 권세에 붙들려 사망의 종 노릇하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주님께서 사로잡아 내신 것입니다. 전쟁용어입니다. 이 말씀이 창세기 3:15절에서 이미 예언된 그러한 전쟁인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로잡아 낸 자들에게 무엇을 주시는 것입니까?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사들을 몇가지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목사와 교사로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전하는자는 이미 완결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복음을 전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확정이 된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사도들과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계시를 받아서 증거하였고, 오늘날 복음 전하는 자들은 그 받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이 왜 필요한가 하면 구분하지 않으면 얼마나 혼동이 많겠습니까? 나도 계시 받았다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늘 주의해야 할것이 자기의 복음을 전하는가를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가복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낸 복음이라는 말이지요? 물론 이러한 구분은 신분상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기능상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안에서 사도와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의 기능을 누가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사와 교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목사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직분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주신 것은 12절에서 보시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결국은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에 목사와 교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은사와 직분이 있는데 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를 가장 귀하게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서 가야할 방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목사를 위하여 성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성도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도, 선지자도, 복음 전하는 자도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일에 목사와 교사를 주셔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왜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서 성장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14절입니다.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의 터위에 세움을 입지 아니하면 계속하여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자를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나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말씀을 인용한다면 그러한 자들은 여러분이 거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을 거부할 말씀에 대한 바탕이 없으니 계속 끌려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정말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이 있다면 여러분이 알아주고 사랑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결국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워낙 목사에 대하여 불신이 많다가 보니 아예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디 한번 두고보자라는 식입니다. 제가 처음에 여러분들을 만났을 때, 목사에 대한 사례와 예우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서 이 사람들이 얼마나 목사에게 당하였으면 목사에게 어떻게 하여 드릴까요 하고서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하여 놓고서 통보하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는 다른데 관심을 두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사기를 당하였으면 저렇게 경계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목사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목사란 여러분을 말씀으로 훈련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여러분의 성장에 유익한 것입니다. 목사와 사사로운 감정이 생기거나, 화목하지 못하면 또는 성도간에 화목하지 못하면 결국 여러분의 손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라고 합니다. 목사의 수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수고입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정도 되시면 그냥 강단에 서시면 설교가 줄줄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시던데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때로는 5분안에 말씀의 줄기가 세워지기도 합니디만 대부분 끙끙거립니다. 아이를 낳는 고통만한지는 모르지만 설교 한편 한편이 쌓여갈 때 마다 지진아나 팔삭둥이가 나오는 것 같아서 둘아보기기 겁이 납니다. 그래서 설교 테이프를 저에게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할수만 있다면 신청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저께 테이프를 보내면서 함께 편지도 넣었습니다. 설교를 잘하여 사람들을 많이 모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의 뜻이 제대로 증거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수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자에 대한 배려가 나타나는 것은 결국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정말 심방을 받고 싶었는데 목사님이 설교준비와 성경공부에 얼마나 바쁘시겠느냐며 심방요청을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분이 수고를 알아 주는구나 싶은 것입니다.
14-15절입니다. 이제 좀더 구제적이 권면을 들어 봅시다. 이 권면은 목사와 성도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안에 이러한 자들이 있을 경우에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자신에게 해당이 된다면 이 말씀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이 일을 목사가 하기에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가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첫째,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합니다. 규묘 없는 자들이란 군대 대열에서 낙오된 병사들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떤 대형을 흐뜨리게 하는 자들입니다. 교회의 목표란 분명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흐뜨리는 자나, 악성적인 게으름이나, 빈둥 빈둥거리는 자들을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음이 약한자들을 안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낙심해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먼저 죽어 버린 형제로 인하여 낙심중에 있는 자들을 안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위는 사도 바울이 한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임을 증거함으로 안위를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힘이 없는 자란 육체적인 것이겠습니까? 영적인 것이겠습니까? 영적인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힘이란 세상적인 힘입니다. 돈이나 권세나 명예같은 것이 힘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력한자 연약한자를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두곳의 말씀만 봉독합니다. 로마서 14:1-23, 고전 8:1-13절입니다. "봉독"
먹는 문제, 날자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구약의 음식 정결법을 지키거나 또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 대하여 힘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하는데 왜 너는 이것을 하지 못하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 제물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을 위하여서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을 구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신 것처럼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단지 형제에 대하여서만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아닌 자들에 대하여서도 오래 참는 것입니다.
끝으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들 대하여 항상 선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안에 여러 가지 핍박이 있었습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핍박도 있었고, 교회안에서의 핍박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7-21절입니다. 16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ㄱ)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ㄴ)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