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스님] 오직 믿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염불하면
"내 일생 아무 것도 내놓은 게 없어요.
산중에서 짐승마냥 토굴에서 살다가
이제 죽을 때가 돼 대중처소에 와서 젊은 스님네들
괴롭히고 있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저 도량이 나름 좋은 곳이니 기도나 하고 내려 가세요."
숨은 도인이라 일컬어지는 월인 큰스님,
그저 홀로 수행하시며, 간절하게 마음을 닦는 이들에게만
길을 보여주시는 스님은 한사코 인터뷰를 만류하셨다.
한잔의 물을 권하시며 "맛이 어떻느냐?" 고 하시면서
스님은 물맛을 아는 것 자체는 스스로가
물을 마셔봐야 알 일이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칼칼하게 일침을 놓으셨다.
그러나 기자는 스님의 환한 미소에 힘입어
끝내 부질없는 질문을 몇 가지 드리고 말았고,
스님 또한 다행히 자비로운 법문을 해 주셨다.
- 스님, 6.25 때 불탄 월명암 대웅전을
손수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산속, 그 때만 해도 공비가 출몰한다 하여
꺼려했던 이곳에 오신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지요?
월명암은 대둔산 태고사, 백양사 운문암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수도처로 손꼽히는 도량입니다.
부설 거사 일가족 네 명이
동시에 성불한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불교 정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직후였습니다.
정화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태백산에 있었는데
정화 소식은 듣고 백일기도를 드렸지요.
그 때 마음이나 지금 마음이나 한결같은데,
신심이 복받쳐서, 우리 한국 불교가 이제야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극 정성 백일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화가 어느 정도 일단락 되는 마당에서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정화라는 큰 불사가 끝나고 나서 이제는
세상의 모범이 되는 수행자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데
수행납자의 본분보다는 명리를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동그랗게 모여앉아 서로 좋은 절에 가기 위해
큰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질려서
나는 그 때부터 일평생
주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대각사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화엄 스님(현재 김해 동리사 조실)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당시로서는 매우 큰 돈을 주면서
토굴이라도 마련하라 해서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6.25 때 전부 불살라져서 아무 것도 없었던 이곳에
자리잡게 된 것은 거리가 멀어 찿는 이도 드물고,
도량자체가 네 성인이 날 저도로 힘이 있고,
무엇보다도 감나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감 따먹으면서 수행하면 되겠구나 싶어 앉게 되었는데
금새 소문이 나서 법당만 짓고
훌쩍 다른 토굴로 옮겼습니다.
공연히 인연 있는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도 않고,
내 공부도 안 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불법을 잘못 전하면 오히려
죄만 짓는다는 생각이 컸기에
한 토굴에 삼 년 이상 산 적이 없습니다.
- 스님, 전전생부터 선근을 쌓아야 출가할 수 있다 합니다.
스님께서는 꽤 나이가 들어 출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인연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경술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수치스런 해에 태어났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나라도 망했고,
우리 집안도 망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의병대장을 하셨는데
집안 재산 다 팔아서 의병대를 꾸려 나가시느라
재산을 다 날리게 되었고,
뜬금없이 외가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위로 형이 둘이 있었느데 집을 나가
생사를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외가살이를 하자니 어린 마음도
사는 게 참으로 고달프다는 생각을 했지요.
12살 먹어서는 산에 올라가면
마음이 한없이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나는 앞으로 이 세상에서 살지 않고,
산중에 가서 도를 닦겠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다짐하며,
'밝은 하늘이여, 이 자리에 이 뜻을 냈으니
이 뜻이 영원히 멸하지 않게 해주소서'
하고 기원을 드리곤 했지요.
그게 첫 인연이 된 듯합니다.
어릴 때 먹었던 그 마음이 싹이 되어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뒤늦게라도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홀어머니만 아니셨더라면 출가 시기가 훨씬 빨랐을텐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자 그길로 출가했습니다.
- 경봉 큰스님께서 인가하셨고,
여러 스님들이 평생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용맹정진하시는 스님의 수행력을 흠모한다 들었습니다만.
다 허튼 소리입니다.
경봉 스님을 찿아 뵈었더니
공부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병입니다.
칭찬을 해주시지 않고 호령을 하고
두드려 잡아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큰스님이 인정을 해주시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만심이 생기더란 말입니다.
마음공부 하는 이에게 아만심은 독약입니다.
내가 잘났다 하는 아만심이 늘어나면 나태해져
결국 생사해탈을 할 수 없고
업장만 보태다가 가기 싶상입니다.
특히 정定에 들었을 때 갖가지 기이한 경지가 나타나는데
그 경지를 묘하다 하여 집착하는 것을
아만정(我慢定)이라고 합니다.
참선 수행자가 아만정에 빠지면
더 이상 공부의 진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라고 하신 뜻을 잘 알아차려야 합니다.
- 스님, 한 평생 참선수행하셨는데 몇 년 전부터
염불선을 강조하시는 연유가 궁금합니다.
두 길이 아니예요. 다 한 길입니다.
다만 참선은 대승자설입니다.
어설프게 참선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그 근기가 휼륭한 사람만이
참선수행으로 해탈할 수 있습니다.
참선은 최상승법으로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대번에 미(迷)의 세계를 넘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선은 그렇듯 대근기를 위한 수행법으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당치 않은 법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발광들을 하고 있으니 딱한 일입니다.
기틀이 얕은 사람은
아무리 해도 공부의 진전이 없는데
제 분수도 모르고 참선하다 무기력해져
산문을 나서는 이들,
공연히 부처님 흉내만 내면서
시주물만 축내는 어리석은 이들이 많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불교 정화 이후로 대략 40년이 지났는데
길다면 참으로 긴 세월입니다.
그런데 그 지루한 세월 동안
도인이 몇 명이나 나왔습니까?
대략 선방 수좌를 비구 1,000명, 비구니 1,000명으로
잡는다 쳐도 그네들 중에 깨달았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내 생명을 부처님 전에 바치고 사는 늙은 중이
이러한 사실을 무심코 봐 넘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세상이 점점 헛 것에 빠져 사는데
승단도 그에 물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하근기는 아닐테고
그 중에는 상근기도 있을 터인데
이처럼 안 나오는 것을 보면 불가사의해요.
그런데 염불선은 하기도 쉽고 가기도 쉬운 길입니다.
오직 믿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염불하면
마음을 깨닫고 누구든 왕생극락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그 많은 참선자들이 염불을 했다면
도인이 몇십 명은 나왔을 것입니다.
또 대부분의 신자들도 염불선이 근기에 맞는 수행법입니다.
- 염불선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 해 주십시오.
염불선은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서 참선하는 법입니다.
그 수행법에 대해서는
내가 구구절절이 얘기해 주는 것보다
중국 관정 법사의 책을 참조로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관정 법사가 7년간 육신을 벗어놓고
극락세계를 직접 다녀온 일을 쓴
'극락세계유람기' 를 내놓아서 유심히 보았는데,
얼마 전에 정토선에 대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놓은 책을 읽고 아주 기뻤습니다.
모처럼 좋은 법문이 나와 무척 다행한 생각이 들었지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는데
관정 법사가 혜(慧)가 터진 모양입니다.
길을 몰라서 허덕이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관세음보살께서 말씀하시길,
선禪과 정定을 동시에 수행하고 전심으로 염불하면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정토선임을 일러주시고,
그 수행법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갑과 을 두 반으로 나누어 염불하되,
갑반이 아미타불을 두 번 외울 때 을반이 묵념하여 듣고,
을반이 아미타불을 두 번 외울 때 갑반이 묵념하여 들으면
힘이 안 들고 끊임없이 염불할 수 있으며,
귀가 영민해져서 귀안이 스스로 염불하게 되고,
마음 속의 염불과 입의 염불이 일치해지면
자연히 불성이 나타나게 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지혜가 생긴다' 고 하셨다는
관정 법사의 법문은 진실입니다.
진리를 모르고, 관세음보살을 직접
친견하지 않고는 그런 법문을 할 수 없어요.
더군다나 그런 선지식은 인과가 분명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거짓으로 말할 리 없지요.
관정법사가 아니
관세음보살께서 일러주신 방법대로 하면 됩니다.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귀가 통하면 마음이 통하기 마련입니다.
지극정성 믿는 마음으로 염불하면 됩니다.
아미타불 이 한 마디의 불호가
마음 속의 만병을 고치고 오랜 동안 쌓아온
업장을 녹이고 자기 안에 있는
본래 부처의 성품을 찿아주는 지름길입니다.
염불하면 설혹 이 생에 성불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와 같은 여러 가지 이익을 얻게 되고
임종시에 극락왕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확고부동해야 합니다.
생각생각마다 아미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염불이
바로 자성(自性)이 하는 것이며 자성을 밝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마음을 깨닫는 법!
부처가 되는 법이 한 법만 있는 게 아니고,
참선과 염불이 다 깨달음에 이르는 법인데
말세에는 염불선이 우리들의 근기에 맞으니
보다 쉽고도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 스님, 평생 토굴에서 수행으로 일관하시면서도
종단에 대한 애정이 참으로 많으신 듯 합니다.
종단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종단이 호의호식하고 세속적인 명리에 집착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물질이 많아지면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고려 말엽의 현상을 생각하면 미루어 짐작학 수 있을 겝니다.
종단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권세를 누리게 되면
자기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맑히는
진정한 종교의 역활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종단이나 아만이 늘면 점차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물질만능주의 세상이라 해도
종단은 그리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배슬여빙(拜膝如氷)이라도 무연화심(無戀火心)하며,
아장여절(餓腸如切)이라도 무구식념(無求食念)이라.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불(火)생각을 하지 말고,
주린 창자 끊어져도 먹을 생각 말지어다.' 라는
원효 대사 발심수행장의 말씀을 뼈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배가 부르면 도심(道心)이 약해집니다.
물욕에 물들이지 말고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 수행해서
기필코 생사윤회를 벗어나야겠다는 각오로
수행에 임할 것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인생난사요, 불법난봉이라.
인간몸 받기도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받은 사람 몸이고 어떻게 만난 부처님 법인데
쓸데없이 허송세월 할 수 있겠습니까?
- 스님, 불법(拂法)은 곧 심법(心法)이라고 하는데
사실 마음이 무엇인지,
마음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을 알면 공부가 다 된 것이지요.
참선이고 염불이고 사실은
그 마음(주인공)을 정리하고 알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묻고 답하고 있는데
이 묻고 답하는 것의 본체가 무엇인가?
미음을 한 번 찿아보세요.
먹고 입고 쓰고 잠자고 있는데 무엇이 먹고 입는가?
잠을 자면서까지도 일초 일순간도 안 여의고
항상 이 마음이 같이 있기 때문에
잠을 자는 것과 죽은 송장은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자리는 온갖 상(相)이 없고
일체가 끊어진 자리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허공과 같이 이 마음은 깊고 묘하기 때문에
아무리 말로 가르쳐 줄래야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일체가 끊어진 이 자리를 증득했다는 것도,
그 자리를 봤다는 것도 억지 소리입니다.
스스로 인증은 할 수 있어도
육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가 알 뿐이지 봤다는 소리를 하면
그는 이미 사도에 빠지는 것이지요.
또한 성품이 공(空)함을 요달하지 않으면
아무리 좌선해도, 염불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품을 봤다 하면 본 것만 집착해서
견성(見性)이 구경(究竟)인 줄 아는데
그 말 자체가 어긋난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성품이 공空한 줄을 요달하지 않으면
공부해야 소용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스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불자들이 살아가면서 꼭 지니고 실천해야 할
법문 한 자락 부탁 드립니다.
다른 소리 들을 것도 물을 것도 없고
무엇보다 마음 공부를 해야 합니다.
팔만대장경 말씀의 요체는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있습니다.
마음을 언제 어느 때나 선하게 쓰고
스스로 제 마음을 맑혀 본성을 알아차리면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어떻게 쓰는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즐비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잘 정리하고,
마음을 바르게 길들여서 그 마음을 어질고 자비롭게 쓰는 불자,
아상은 놓아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진실한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 너무 바깥으로 치우쳐서 모양만 내려고 애쓰고,
상(相)만 가지고 세상을 움직여서 큰 일입니다.
일구월심 염불공덕 짓고 마음공부 잘 하셔서
이러한 세상에 제동을 걸고,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어가는 당당한 불자 되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감사히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