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3시 대구문학관에서 '낭독의 공동체가 열렸다.
중견 시인 이태수와 젊은 시인 최백규와의 가을 북콘서트(사회 : 이승욱 시인)는
서로 다른 세대의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살펴보고 시민과 함께 공감하는 자리였다.
큰아우 별장에서
이태수
큰아우도 작은아우가 돌아간
먼 세상으로떠나가고
오늘은 비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 진다
먼 거리에 따로 있는
아우들의 유택이 낙엽 사이로 어른거리고
철부지였던 옛날들도
창가에 다가와 잠시 머문다
열한 살 소년가장이던 나는
작은 아우의 이름도 지었지만
언제나 집안 기둥 노릇은 큰아우가 했다
궂은일들 도맡아 하면서 바라지하고
장년엔 남다리 고향 일에 앞장서곤 했다
그가 없는 고향 별장에 앉아
안타까이 창밖을 바라본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큰아우는
술병으로일찍 세상을 뜬
작은아우를 못마땅히 여겼을 뿐 아니라
내게도 핀잔이 잦았다
그런 큰아우가 몹씁병으로 먼저 가다니
가는 줄도 모르고 가다니
술잔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 이태수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문학세계사, 2022, P26~27)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최백규
너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꽃가지 꺾어 창백한 입술에 수분하면 교실을 뒤덮는 꽃
꺼지라며 뺨 때리고 미안하다며 멀리 계절을 던질 때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 한 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땐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 최백규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창작과비평사, 2022, P30)
최백규의 리듬은 힙합적이다. 성대 결절이 오기 전까지, 그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꿈꾼 가수 지망생이었다. 그가 사랑한 BOBBY가 힙합신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처럼, 그의 문단 출현은 파격적이다. 초기 시적 자아는 다겹의 메타포이다. 언어의 소실점에서 화자는 까무룩 지워진다. 어떤 진술은 현대사회의 로그인에 접속된다. 난해성은 그가 추구한 시대성의 반역이다. 일상의 착란이자 표징이다. 에고ego는 세계와의 불협화음이다. 전도된 주체이자 순수의 파편이다. 그의 언어는 소리를 만진다. 은유된 기성 체제의 억압을 비튼다. 로그화된 사회를 비판한다. 그의 언어는 ‘다름’과 ‘차이’의 발견이자 부조리의 해체다. ‘안’과 ‘밖’의 경계이다. 그는 자크 데리다(프랑스 철학자 1930~2004)의 해체에 경도된다. 의미와 무의미의 중첩된 예술의 모호성을 흡수한다. 해체는 서구 형이상학의 일종의 자기비판이다. 전체성,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表象), 중심과 주변의 이원론을 부정하며 다원론(多元論)을 지향한다. 작품 바깥에서 작품 내부의 의미를 규정하는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고에 반대한다.(김동원 글 / 편집 수록)
서정抒情과 추상抽象
최백규의 첫시집『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의 두 가지 주제는 복고적 시풍의 현대적 재해석과 죽음의 깊은 사색이다. 시「입하」는 시간의 무늬를 잘라 공간의 심리로 채색한다. “목련 그늘 옆에서 네가 허묘를 파고 있다” 이 놀라운 첫 행은 서정抒情 언어에추상抽象을 입혔다. 풀에 묻혀 폐허가 된 무덤을 파고 있는 너는‘꽃귀신(아이가 죽어서 된 귀신)’이다.「입하」는 태양의 황경 45도 때의 일이다. 귀鬼의 음지령陰之靈이, 신神의 양지령陽之靈으로 바뀔 때의 사건이다. 대상을 향해 무의식적 충동으로 돌진한다. 아무도 파 내려가지 못한 시의 밑바닥을 향한 그의 진검은, 서늘한 심리적 촉감을 낳았다.
목련 그늘 옆에서 네가 허묘를 파고 있다
착한 아이야 여기 몸을 가지런하게 벗어두고 떠났구나
어린 가지에 걸린 낮달이 해지듯
나는 시름없이 누워 피가 도는 입술을 문 채 앞으로 식어갈 바람 따위를 헤아려본다
슬하의 산등성이가 뼈와 살을 털고 흰 영혼을 몰아쉴 때까지
백지를 넘기며 시푸른 목탄 냄새나 맡고 싶다
좋은 날마저 하품하듯 마르고
툭 하니 돌을 골라내는 손을 보면 헛웃음이 샌다 새끼를 치는 고라니가 처서 즈음을 건너다보고
그 깊은 눈동자 뒤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다
돌아가자 목이 잠기고 안색이 흐릿하니까 정말로 목련나무가 마냥 져버렸으니까 우리 이제 그만 모두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자
이곳은 내륙인데 여러 물새가 새의 모양을 하고 해안선 너머로 터뜨려진다
숨이 따뜻한 너와 지상에서 만나 아름다웠다
―최백규, 「입하」전문
최백규의「입하」 속에는 ‘분리 불안’과 ‘내면 아이’가 비친다. “착한 아이야 여기 몸을 가지런하게 벗어두고 떠났구나” 이 시행은,대상과 언어 사이에서,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불안이다. 시는 시인의 온몸을 관통한 통점이다. 하여 “허묘(墟墓)”를 파 내려가는 아이의 공포는 극도로 행간을 긴장시킨다. 최백규의 이번 시집의 특징은 병든 ‘아버지’의 죽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프다. 그는 “시름없이 누워 피가 도는 입술을 문 채 앞으로 식어갈 바람 따위를 헤아려”보는 것이다. “슬하의 산등성이가 뼈와 살을 털고 흰 영혼을 몰아쉴 때까지” 백지 위를 서성이며 아버지 무덤을 떠나지 못한다. “새끼를 치는 고라니”는 홀로된 슬픈 어머니의 암유다. 그녀는 “깊은 눈동자 뒤에서 무언가 // 무너지고 있”는 주체가 된다. “목련”꽃처럼 아버지도 “져버렸으니까”, 시인은 이제 아비의 혼령을 놓아주자고 한다. “집으로 가자” 이 청류형은 압권이다. ‘산 자의 집은 모두 무덤’이란 역설의 시법이다. “숨이 따뜻한 너와 지상에서 만나 아름다웠다”란 시구는「입하」의 명구다. 최백규는 외로운 기억과 슬픈 흔적을 교직하여 서정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냈다.(김동원 글 / 편집 수록)
현과 나
이태수
현이는 노각을 좋아하고
나는 풋풋한 오이를 좋아한다
현이는 국을 좋아하지만
나는 장아찌와 젓갈을 좋아한다
현이는 고기를 좋아하고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이는 김치를 즐겨먹고
나는 마늘과 고추를 즐겨먹는다
현이나 나나 별난 성미라
마음에 안 들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도 현이도 소식이면서
편식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예술을 선호하지만
현이는 거기다가 운동까지 선호한다
현이가 나를 닮았다지만
닮지 않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현이가 핀잔을 들을 때는
할아버지를 닮아 그렇다고 해
만망스러울 때도 적잖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건 왜일까
현이가 어떻게 여기는지
아직은 물어 본 적이 없지만
물어 보고 싶지도 않다
■ 어린 둘째 손자
- 이태수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문학세계사, 2022, P26~27)
애프터글로우
최백규
신을 배운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보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다
세상 모든 곳이 다 오락이어서
캐릭터들이 죽는데 플레이어가 동전을 계속 넣었다
어느 주말 오후 흰 캔버스를 세우고 멍하니 그리워했다 있는 것들만 죽여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웃으며 안았다 손끝으로 상대방의 생명선을 끝까지 따라가 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같이 한다는 비극을 믿었다 우리가 금방 죽을 거라 했다
어젯밤 꿈에 눈이 부어서 오늘도 젖은 하루를 살았다 창밖엔 숲 이외의 것들만 조용히 번져서
우리의 기후가 같을까 무서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아무 일 없이 골목을 걸었다
와락 쏟아지다 터뜨려지는 파스텔이다
어두운 식탁에 앉아 찬 음식을 오래 씹어야만 하는 나이
무심히 낯선 여름이 굴러가고
두려웠다
지옥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안녕과 안녕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바늘 끝 위에 몇 명의 천사가 쓰러질 수 있을까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때쯤 결심한 것 같다,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아름답게 살자 남은 인생을 모두
이 천국에게 주자
- 최백규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창작과비평사, 2022, P38~39)
확장, 혹은 우주
최백규 시인은 21세기에 새롭게 쓴『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의 가족이었다가『나쁜 피』의 사랑이었다가『입 속의 검은 잎』의 죽음의 수사였다가 드디어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의 한여름이 되는, 그런 통과제의를 온몸으로 통과해내느라 그리 기다란 시인이 되었나보다. 뜨겁고 눅눅한 한여름의 장마와 열사를 군더더기 없이 감각해내기에 최적화된 자세였을 것이다. ―최백규 시집『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2022, 창비) , 정끝별 시인의 추천사 중에서
우선, 시「지구 6번째 신 대멸종」은 스펙터클하다. 지상의 언어를 통해 환경 파괴의 주범을 이야기한 셈이다. 보이는 세계가 실재가 아님을 갈파한다. 진실한 “죽음”은 사실의 “봄”보다 더 신비롭다. 우주는 멸종을 통해 멸종을 막는 방식의 모순형용oxymoron이다. 양립할 수 없는 두 변을 관통한다. “꽃의 추락”은 시의 블랙홀이다. “새”는 상승하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떠돈다. 어쩌면 이 시는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를 버려야 함을 지시한지도 모른다.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꽃이 추락하는 날마다 새들은 치솟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날렸다
네 평 남짓한 공간은 개의 시차를 앓고
핏줄도 쓰다듬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면 손목은 파도의 주파수가 된다 그럴 때마다 불타는 별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늙은 항성보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지구라면 사각의 무덤 속에는 더러운 시가 있을까
흙에서 비가 차오르면 일 초마다 꽃이 지는 순간 육십 초는 다음 해 꽃나무
퍼지는 담배 향을 골목에 앉아 있는 무거운 돌이라 생각해보자
얼어붙은 명왕성을 암흑에 번지는 먼 블랙홀이라 해보자
천국은 두 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숨이라 하자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우주가 녹아내릴 때 최초의 중력으로 짖을 수 있도록, 모두의 종교와 역사를 대표하도록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최백규, 「지구 6번째 신 대멸종」전문
1,500년 후의「지구 6번째 신 대멸종」은, 지구를 괴롭힌 인간의 원죄 의식이 깔렸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시의 빅뱅을 누설한 셈이다. 의미와 무의미의 비밀을 캐낸 셈이다. 이런 유무有無의 확신은, “손목”이 “파도의 주파수가 된다”는 ‘환幻’을 믿을 때 가능하다.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없다는 지혜를 터득할 때, “불타는 별들”이 보인다.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우주가 한 편의 명시’임을 알게 된다. 표면적으론「지구 6번째 신 대멸종」은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심층은 별들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빛이 휘고 운석이 부딪치는 모든 행위는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떨림과 울림으로 승화된다. 하여 “천국은 두 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숨”이 된다.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모호함이 오히려 더 멋진 시적 표현이 되었다. 그렇다. 두 발을 디딘 지상이야말로, 궁극에 시인이 “돌아가고 싶은 세상”임을 증거 한다.(김동원 글 / 편집 수록)
장하빈 시인(왼쪽) / 최백규 시인(가운데) / 김동원 시인(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