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만 2년이 지났다.
무지하게 긴 시간이지만 그래도 버텨내고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옳은 길인지 어떤지 분별이 되지 않을때도 많다.
그동안 다녀갔던 아이들..
승수,5개월쯤
하은,2달안되게.
은서.1년 6개월
백준.1년 6개월째
혜원,1년 6개월째
창현,3개월쯤
명조,8개월
수현,2달
시온,1년째
건영.1년
유진.한달
희진.한달
예원.한달
남궁호수.두달
호연.두달
준선.두달
유일.3개월
학선.한달
또 다른 예원.한달
아영 두달
선영.방학때만
중국에서도 오고 광주에서도 오고 충남예산에서도 서울에서도 전남 나주에서 안산에서 서울 수원에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선교지도 돌아보고
이런 성향 저런 성향의 아이들...
모두다 집에서는 최고의 아이들인데 여럿이 있다보면 집보다 못한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와서 많이들 배우기도 하고
배우면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어떤땐 무엇이 옳고 그린지 가끔 헷갈릴때가 있다.
영어를 오래하다 보면 국어에 문제가 생기고 수학에 문제가 생긴다.
단기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다니고 튜터를 하고 주말에는 여행을 하고
장기인 경우에는 주일엔 교회를 다니고
초딩들은 꾸준히 매주토요일날 어린이 합창단에서 노래했던 일들이 기억에 난다.
주일밤에는 큐티를 할수 있었던 것이 내가 지탱할수 있는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여럿이 살다보면 내 마음대로 다 할수 없을 때가 많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양보도 해야 하고
때론 욕심도 버려야 하고
좋은 자리 좋은 음식 내어 놓아야 하기도 하고
안타까운건 내 귀중한 물건들을 잃어 버릴때
아이들도 속상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잃어 버리는게 있다면 누군가 손을 댄다는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무지하게 민감해진다.
유일이가 전자사전을 잃어 버려서 가지고 가지 못했다.
은서의 닌텐도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예원이의 카메라는 4일후 다시 찿았고
지갑에서 돈들이 분실되기도 하고
시온이의 mp3도 찿지 못했고
혜원이의 전화기도 찿지 못했다.
이런일들이 날 힘들게 한다.
크고 작고의 문제를 떠나 남의 물건에 손을 댄 다는 자체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기 때문이다.
올 여름...
다른 어느때보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두번이나 해야 했던 이사..
아떼들이 모두 가버려서 학선어머님이랑 일을 하느라 힘들기도 하고
물건들이 없어져서 너무나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일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직 쉬를 가리지 못해
가끔씩이면 실수를 하는 아이때문에도 너무 힘이 들었다.너무나 지쳤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물론 돈을 받고 돌보았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당연히 케어해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필리핀 물가가 싼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홈스테이를 할려고 시작했던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들 공부를 위해 수저하나 더 놓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다른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남편은 혼자 한국생활을 하시고
큰 딸 선영이도 돌봐주지 못하고
함께 있는 혜영이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아이들의 안전과 매일 3끼의 한국음식과 또 꼭 해야만 하는 공부의 효과때문에
나름 지혜를 모은다고 했지만
지금은 다운상태이다.
가끔 무엇을 위해 이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와 범모 혜영이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올 여름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찔하고 두렵다.
사람이 모여 산다는게 어렵고 힘든일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얻는것도 아주 많다.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어머니라는 사실..
매주마다 시장을 몇번씩 다닐때마다
최고로 좋은 고기를 고르고 생선을 고르고 야채를 고르고 과일을 고른다.
거의 매주 마다 김치를 담그고 정성을 쏟는다.
함께 웃고 먹고 놀고 공부하던 시간들...
모두들 좋은 일들만 기억하기로 하자..
이곳을 통해 돌아간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이루고
10년후 20면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여기 머물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늘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를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위대한 최고의 퀸 소프라노 가수..
다시는 이런 가수가 태어날수 없다고 할 정도의 가수이야기를 들으며
억만장자 오나시스의 후회
이 세상에 돈이 문제입니까?
어떤것이 생애의 행복일까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의 행로를 살펴 보세요.
억만장자 오나시스는 무대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하다가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oreintelligentlife.com%2Ffiles%2Fmariacallas.jpg)
그러나 8년이 되기 전에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나서 이혼하고
재클린에게 다시 장가 갔습니다.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 "내가 실수를 했다."하며
자기 가슴을 치며 고민을 하다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니
이혼도 못합니다.
재클린이 한 달에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도 얼마 못살고 죽었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ro.corbis.com%2Fimages%2FU1873468.jpg%3Fsize%3D67%26uid%3D%7B04cef691-b521-4136-959b-79bcb3683463%7D)
끝까지 이혼에 합의 않던 재클린은
엄청난 오나시스의 유산을 거의 차지 했지요.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하며 오나시스는 죽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가정주부로서는 크게 미흡했습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가정 살림 잘하고
따뜻이 가족 돌볼 줄 아는
알뜰, 살뜰한 주부가 최고 랍니다.
- 모셔온 글을 다시 썼습니다 -
붉은 장미꽃처럼 정열적으로 살다 간
그리스가 낳은 위대한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
붉은 장미꽃처럼 정열적으로 살다 간
그리스가 낳은 위대한 가수마리아 칼라스의 노래 . . .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from Carmen - Bizet (Maria Callas)
난 아내로써 엄마로써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음에 뼈저리게 공감한다..
아이들아!!
모경에서 행복하게 지냈을 거라 믿는다..
모두들 건강하고 다시 만날때까지 평안하자..
첫댓글 그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저녁이면 건영이가 오네요. 많이 보고 싶고 설레네요. 구주임님이 우리 맛난것 사주신다고 하네요. 빨리 혜영이랑 여기서 예전처럼 고기구어 먹고 싶네요. 그때가 잠깐이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나봐요. 자꾸 생각이 나네요. 애 데려다 주시느라 피곤하시죠? 오늘 저녁 푹쉬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