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은 동아시아가 종래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상징적인 해이다. 이 해에 중국은 제2차 아편전쟁으로 북경이 함락됐고,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입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한쪽은 서양에 무릎을 꿇고, 다른 한쪽은 서양을 배우러 간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적 근대화를 성취한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역사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이 해에 독자적인 사유세계를 개척하고 있었다. 토착적인 ‘하늘’ 관념을 바탕으로 “모두가 하늘이다”는 평등적 세계관을 담은 동학이 탄생한 것이다. 이 사건이 지니는 사상사적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1,500년 이상 중국에서 철학을 빌려[述] 쓰다가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철학을 ‘만들어’[作] 보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자를 빌려 쓰다가 한글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이 새로운 사상, 새로운 철학은 조선과는 다른, 그러나 지금과는 가까운 시대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한국적 근대’의 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동학에서는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의 ‘다시 개벽’이라고 하였다. 이 문명전환의 선언과 더불어 하늘로 거듭난 민중들은 통치의 대상에서 역사의 주인으로 우뚝 서고, 차별과 폭력과 착취 대신에 모심과 살림과 나눔을 추구하는 도덕문명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양반과 상놈이 맞절을 하고 만물을 하늘처럼 섬기는 일종의 ‘도덕민주주의’를 시도한 것이다.
“폭력을 없애고 백성을 구제한다”[除暴救民]는 평화사상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 새로운 실험은 당시에 부국강병을 추진하던 일본의 서구적 근대와 충돌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동학농민혁명이다. 근대 국가의 폭력에 저항했던 농민들의 보국안민(輔國安民) 운동은 이후에 일제강점기가 되면 “위력(폭력)의 시대가 去하고 도의(도덕)의 시대가 來한다”는 독립선언과 삼일운동으로 이어졌고, 해방 후에는 민주화운동으로 부활하였다. 특히 지난 촛불혁명은 일체의 폭력을 거부한 평화혁명이었다는 점에서 1860년의 동학에서 시작된 도덕민주주의가 마침내 꽃을 피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86년에 미국에 망명해 있던 김대중은 하버드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민주주의는 서구의 산물이기 때문에 한국은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질문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 유산으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김대중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국에서 앤서니 기든스 교수와 나눈 대화에서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나무, 풀, 동물, 물고기, 날짐승, 공기, 흙)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전 지구적 민주주의(global democracy)를 실현하고 싶다”고 하였는데(김학재, 「김대중의 통일‧평화사상」), 이것은 동학에서 추구한 경물(敬物)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여기에서 ‘물(物)’을 지구[天地] 전체로 이해하면,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도 경물사상에 바탕을 둔 지구민주주의의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촛불혁명의 경험은 분명 한국인의 의식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개선은 제2의 건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마저 준다. 성급한 판단일지는 모르나, 머지않아 남북이, 비록 체제는 달리하더라도 ‘코리아’와 같은 새로운 국명을 써야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지구적 근대와 4차산업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근대가 만개하고 인터넷으로 만물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1860년의 다시 개벽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비록 시민사회에서 인문학은 활성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동서양의 고전을 공부하는 교양교육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시대적 변화에 대처하는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기보다는[作] 종래의 것을 학습하는[述] 공부의 차원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식 또한 지난 80년대식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은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배타적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시대는 변했건만 방식은 구식인 것이다. 4차산업혁명 역시 독일과 일본에서는 ‘인더스트리 4.0’, 중국에서는 ‘중국제조 2025’와 같이 나름대로 자국의 상황을 반영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만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상태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의 학문이 아직도 한국이라는 현실에 뿌리를 둔 ‘실학’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학문의 준거가 바깥에 있거나 핵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비록 예술 분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창의와 공공, 그리고 민주의 가치들이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래와 춤에는 단순한 저항과 반항을 넘어서 노력과 사랑과 연대를 강조하는 한국인의 도덕지향성과, 남의 것을 따라 하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리버럴 아츠 정신, 그리고 이런 청년들을 미숙한 어린애로 취급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미래의 ‘아티스트’로 정중하게 대하는 기획사의 성숙한 태도 등이 베어 있다. 아마도 150년 전에 동학이 구현하고자 했던 모심과 살림의 민주주의도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도덕민주주의를 모든 분야에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난 2천년 동안 우리에게 길들여진 수동적 사고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사상을 수입해서 해석하는 철학의 방식, 서양의 이론을 빌려와서 설명하는 학문의 방식에서 한 차원 넘어서서, 우리의 사상과 이론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창조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러한 사고훈련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1860년에 새로운 하늘을 열겠다고 ‘다시 개벽’을 주창한 한국의 민중들은 분명 새로운 시대의 개척자들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종래의 유교를 고수하는 척사파나 서양의 제도에 의지하는 개화파와는 달리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서부개척자들이나 제국주의 열강처럼 남의 땅을 빼앗는 폭력적 개척을 감행한 것도 아니다. 이들 개벽파가 추구한 평화적이고 도덕적인 개척정신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월간 공공정책》158호. 2018.12.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2018.12)_공공정책158.pdf